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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영인 Aug 09. 2022

김홍도- 마상청앵 다시 보기

<미술작품 묘사>

김홍도(金弘道 1745~미상)의 ‘마상청앵’(馬上聽鶯·말 위에서 꾀꼬리 소리 듣다, 보물 1970호)




작고 여린 초록 새 잎 매달린 가는 버들가지가 살며시 흔들린다. 

실타래 같은 수양 버들잎 새벽안개와 엮어 따스한 비단 바람 수놓았다. 

수줍고도 우아한 몸짓에 작은 잎 웃음소리 새어도 놀라는 이 없다. 

황금빛 꾀꼬리 한 쌍 어지러이 날아다니다 비단 바람 타고 버드나무 위에 앉아 쉰다.




멀리서 울려오는 말발굽 소리 들리지도 않는지 꾀꼬리 두 마리는 버들잎과 함께 평화로이 노래한다. 

봄의 정취에 취한 작은 악사들의 합주에, 가까워진 발소리는 그저 박자를 맞춘다. 

말을 탄 선비와 채찍을 들고 말을 모는 시자가 유유히 다가온다. 

굳게 다져진 흙 땅 위에 먹이 번지듯 납작 엎드린 둥근 잡초가 길을 안내하고, 

맞은편 언덕에 모인 풀잎 가족들이 이들을 맞이한다.




선비의 철선묘로 떨어지는 넉넉하면서도 억센 백의는 말의 부드러운 털과 대조되어 온화하고도 강인한 풍채를 드러내고, 버드나무의 두터운 아래 자리에서 풍기는 연륜과 조화를 이룬다. 

선비는 흐트러짐 없이 길을 가다 예고 없이 마음을 관통한 꾀꼬리 노랫소리에 반쯤 펼친 부채를 손에 꼭 쥔 채 나무 위로 시선을 빼앗긴다. 

부지런히 가던 말은 급히 앞다리를 바로 모아 걸음을 멈춰 서고, 시자도 선비 따라 몸을 돌려 고개를 젖혀든다. 




달아남 없이 여유를 만끽하며 자유로이 노래하는 꾀꼬리 두 마리가 선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정갈 히 자리를 버티고 있는 듯, 그러나 무언가만을 기다리며 굳게 닫혀있던 문은, 

그 세월의 덧없음을 깨닫기라도 하였는지 봄기운 스민 자연에 고리를 풀고 활짝 자유의 바람을 맞이한다.




선비는 눈앞에 드리워진 버들가지 한 가닥으로 시선을 옮긴다. 

선비의 발밑에는 땀 흘려 오르던 지난날 언덕길의 진흙이 박혀있지만, 

지금 그의 눈동자에는 바람결 따라 행복하게 춤추는 버들잎의 여리고도 강인 한 외양이 맺힌다. 

아련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마주 걷던 다른 이도 이들 눈을 따라 

버들가지 위 높은 하늘을, 그 드넓은 자유를 잠시 동안 마음에 담았으리라. 

오가는 이 몇인지, 노래하던 꾀꼬리 두 마리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르도록 붉은 빛깔 물들어가던 하늘에는, 이곳 지나던 이들의 비움과 다짐의 소리가 여전히 여백 가득 울려 퍼진다. 

그리고 이내 소리 없이 따스한 온도만 남아 버드나무 아래 깊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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