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낮의 우울

by 공영인

자신 없으면 자신 없다고 말하고 가끔 넘어지면서 살고 싶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이 싫다.

무리해서 뭔가를 해내야만 할 것 같은 삶에 지쳐가는 중이었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게 좋은 거다.

마찬가지로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게 좋은 거였다.


힘들다고 얘기하니 힘든 나를 알았고

많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많이 생각하는 시간에

많이 생각하는 것이 버거워지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빌려보는 것이 좋다.


책은 많이 생각해야 할 만큼 힘든 사람에게,

그리고 너무 힘들어서 생각할 힘조차 없는 사람에게

위로와 변화를 가져다주는 마법이 있다.



'나는 송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을 보고나 내 품에 안겨 잘 때 슬프면서도 행복하다.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슬프고 해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행복하다. 그러니까 내가 송이를 바라볼 땐 언제나 슬픔이 먼저고 그다음이 행복인데 송이도 그랬으면 하는 것, 송이가 자신을 바라볼 때 처음엔 좀 슬프더라도 마지막은 좋았으면 하는 것... 그게 내 유일한 바람이다. '

- 이주란, 『한 사람을 위한 마음』 中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 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 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그건 슬픈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깨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김연수, 『청춘의 문장』 中



인생에 슬픔이 없을 수 없다. 슬픔 또한 소중한 내 인생의 일부이다. 그저 그 사이에 행복 또한 함께 스며들어있다면 그것도 괜찮은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삶 가운데 행복이 있다면 행복한 삶일 수 있는 것이다.

행복한 삶은 삶의 모든 순간순간이 전부 행복만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 안에는 여러 모습들이 존재한다.

설사 그 모습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들이 아닐지라도 그것 역시 나의 일부분임을 알아야 한다.

그 부분을 소중히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깨달아야 한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구멍이 '뚫려버린' 것이 아니라

날 때부터 가운데에 예쁘고 동그란 구멍이 있는

이 모양의 이 도넛이 바로 나라는 존재 그 자체라는 것을.




내가 열심히 산 이유는 내가 그냥 열심히 하는 멋지고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의 '열심', 그 바탕에는 나를 사랑하지 않음에서 따라오는 낮은 자존감과 자기부정이 있었다.

내 삶에 대한 의심과 회의에서 도망치려 했던 것이다.


잘못 꿰어진 시작단추는 힘들게 힘들게

끝 매듭을 잘 지어도 예쁠 수 없다.


여러 모습 중 행복만을 잡아야 한다는 욕심과 조바심.

구멍을 메워야만 한다는 집착과 강박.


그것을 버리고 자유로워지면,

나를 나 자체로 인정하고 사랑하여

진정 여유로워지면


작은 행복을 크게 느끼며 웃을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

가끔 행복해도 행복한 것 아닐까.


때로는 너무 열심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가끔 넘어져도, 그리고 애써 바로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김홍도- 마상청앵 다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