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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Mar 24. 2024

탕수육은 찍먹이지!

https://groro.co.kr/story/8980



 책을 잘 읽었다. 오만 년 전에... 기억에 의하면 중학생 시절 어느 시점부터 명확하지 않은 이유에 의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오래전 일이라 그런가 싶은데 여하튼 왜 갑자기 책을 읽기 시작했는지 그 동기는 아무래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생각이 나지 않는 동기가 무색할 정도로 당시엔 책을 잘 읽었다. 소설을 예로 들면 단편을 읽는 건 일도 아니었고 장편 그리고 대하소설까지 거침없이 읽었다. 기억나는 대하소설이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과 [아리랑]이었다. 도서관 한 구석에 박혀 앉아 책만 읽고 살아도 행복하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런 경험에 의해 스스로를 책을 상당히 잘 그리고 많이 읽는 사람이라고 착각을 하기 시작한 거 같다. 돌아 생각해 보면 책을 잘 읽었던 시기는 '화악'하고 순식간에 타오르는 볏짚 같았다. 그럼에도 그 순간이 강렬했는지 실질적으론 별다르게 책을 읽지도 않았으면서 그 이후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책을 잘 읽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더불어 책은 읽는 건데 읽는 것에 더해 부수적으로 책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다. 내용을 보고 읽는 책이라는 개념 이외에 책 자체를 하나의 아이템으로 갖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상당했다. 주변에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새 책의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 새 책을 함부로 펴거나 책장 끝을 접지 않는 사람, 책을 보는 건지 모시는 건지 애매한 사람. 내가 딱 그랬다. 책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밑줄도 긋고 메모도 하는 거라고 하는데 난 절대 그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주主인 내용이 중요한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객客인 책이라는 물건 자체도 상당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뭐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조금은 그런 강박에 가까운 생각과 행동이 느슨해지긴 했다. 느슨해진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봐야 결국 책이고 책은 보는 게 중요한 거지 책장에 그럴듯하게 꽂아 놓는 아이템이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였다고 할까? 더불어 결정적으론 책을 잘 읽는다는 착각에서 빠져나와 드럽게 책을 읽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역시 언제부터인가 아마 착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전부터 책을 안 읽고 있다. 아이러니는 그러면서 같지도 않은 글 나부랭이를 쓰면서 다른 사람들이 읽어 주길 바라고 있고 그런 글을 지금도 꾸역꾸역 쓰고 있다. 그런데 뭐 세상이란 게 자기부정도 하고 긍정도 하고 모순에 올라타기도 하고 궤변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뭐 그런 곳이 아닌가...



 하나 나름 다행인 건 사 모으던 책을(읽으려는 마음을 갖고 사긴 하지만 결국 그럴듯하게 꽂아 놓으려는 욕심이 더 컸던) 더 이상 사지 않고 도서관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돈도 아끼고 넘쳐 나는 책장에 의해 아내 눈치를 안 봐도 되고 이래저래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가 발생했다. 꼭 풍선처럼 이 쪽을 찍어 누르니 저 쪽이 부풀어 오르는 격이었다. 딱히 제대로 읽지도 못할 책을 사 모으지 않고 도서관을 이용하는 거 까진 좋았다. 허나 지 버릇 개 못 준다고 역시 또 딱히 읽지도 않을 책, 도서관에 가서 신간을 보기만 하면 눈이 돌아 이거 저거 잔뜩 빌려 왔다. 빌려 온 책을 반찬투정 하는 아이처럼 이 책, 저 책 깨작깨작 ‘찍먹’만 하다 결국 책장에 꽂아 뒀다 반납하는 게 반복 됐다.



 뭐랄까, 중독 같기도 하고 병 같기도 했다. 피지도 않아 잘 모르지만 담배를 끊으려는 사람처럼 다음에 도서관에 반납하러 가면 신간 그만 좀 빌려와야지 다짐을 하고 또 해도 신간코너에 꽂혀 있는 빳빳한 책을 보면 다짐이란 단어의 뜻을 알기는 아는 건지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눈이 돌아 어느새 책을 빌리는 모습을 매번 발견하곤 한다. 가장 최근까지도 일관성은 있는 성격이라고 해야 되나 역시 읽지도 않을 책, 신간이라는 이유로 빌려 들고 새 책 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1인당 최대 대여권수인 10권을 채우지 않는 정도다. 정말 많이 자제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아니 변화라기보다는 책이라는 반찬을 투정하듯 깨작거리는 모습을 조금 더 극대화해 보기로 한 것이다. 아니 뭐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책은 계속 조금씩이라도 빌려 올 거 같은데 그럼 뭐 할 거 없으면 뒹굴뒹굴 거리며 제대로 찍먹을 해 보자 싶었다.



 적게는 3권에서 많게는 5권 정도를 순서 상관없이 권당 한 두 꼭지를 번갈아 읽었다. 한 책을 5분에서 10분 정도 읽다가 집중력이 흐려지면 바로 덮고 다른 책을 또 같은 방법으로 읽다가 역시 지루해지면 또 다른 책으로 갈아타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읽다 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개 중에 더 많이 읽는 책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럼 책을 돌려 보는 와중에도 그 책이 더 읽고 싶어 져 그 책을 읽는 순서가 되면 집중력이 향상하는 의외의 효과를 보게 된다.



 이렇게 며칠 만에 책 한 권을 읽게 됐다. 그렇게 책 좀 읽으려고 옛날의 문학소년 버금 같던 모습을 찾으려고 한 모든 시도가 무색할 정도로 이렇다 할 노력도 없이 책 한 권을 뚝딱 읽게 됐다. 한 권만 집중해 끝까지 읽어야지 하는 것보다 더 빨리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부담이 덜 했다. 이 책 읽다 지루하면 다른 책 읽고 또 지루하면 다른 책 읽고 이러다 보니 특별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어~ 하다 보면 1시간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책을 읽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무슨 무슨 독서법’ 이딴 걸 싫어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책이라는 걸 그냥 읽으면 되지, 뭔 또 방법이 있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나름 방법이란 게 있기는 있겠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사실 너무나도 당연한 게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엔 하찮아도 다 방법이란 게 있게 마련인데 인간이 하는 여러 행위 중 머리를 상당히 많이 써야 하는 독서를 하는 데 있어 방법이란 게 없다는 게 더 말이 안 되는 거 같긴 하다.



 아무튼 우연한 기회에 의해 발견한 나름 독서법 아닌 독서법을 통해 책을 조금 덜 부담스럽게 읽을 수 있게 됐다. 더불어 책은 가급적이면 다양한 주제와 분야의 책을 3권에서 5권 정도 마구잡이로 골라 읽는 게 또 하나의 팁이라면 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참고로 탕수육은 찍먹, 부먹 가지리 않고 잘 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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