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하는 늑대 Oct 25. 2024

드디어 분갈이

https://groro.co.kr/story/12357



 드디어 미루고 미뤘던 대망의 1차 분갈이를 완료했다. 일식이가 자라 올라올 때 나중에 분갈이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이식이가 불쑥 커져 일식이를 넘어서면서 어! 조만간 분갈이해야 되겠는데 하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아직 미루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삼식이가 혹시 자라 올라 올라나 기대를 하는 도중 생각지도 못한 사식이가 안녕! 하고 인사하기에 이제 더 이상 분갈이를 미룰 수 없구나 싶어 화분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면밀하고 꼼꼼하게 여기저기 다니면서 알아본 건 아니다. 아내가 생필품을 사러 다이소에 갈 때면 같이 따라가서 그저 곁가지로 대충 훑어보며 이 정도 화분이면 되겠다 하는 정도로 준비했다. 이후로 한 두어 번 더 따라다니다 저 정도 화분이면 되겠다 싶어 가격까지 확인했다. 다이소답게 1,000~3,000원을 넘지 않았다. 아주 나이스했다.(이런 표현이 바른 표현은 아니지만 그냥 쓰고 싶어 씁니다. ㅎ)


 이렇게 마음을 먹고 사고자 하는 화분까지 다 확인을 하고도 분갈이를 미뤘다. 그렇다. 난 뭘 잘 미룬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미뤘던 모든 일들을 바로바로 했다면 아마 난 성공을 해도 진즉에 했을 것이다. 그런데 뭐 이렇게 생겨 먹은 걸 어쩌나... 그냥 그렇게 살아야지. 더 미루려다 혹시 흙 속이 전부 뿌리로 뒤엉켜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에 실행에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 다른 식물의 분갈이를 미루고 미루다 기존 화분 흙 속이 온통 뿌리로 뒤엉켜 있던 걸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기억이 스치자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사람으로 치면 좁아터진 집구석에서 발을 다리를 접고 몸을 웅크리고 겨우 잠을 청하는 꼴인데 평생 못 살아서 작고 좁은 집을 전전했던 스스로의 과거를 되짚어 볼 때 안 될 일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바로 다이소에 군인이 돌격하듯이 화분을 사러 갔다. 애초에 다이소에서 괜찮은 화분을 바란 건 아니었다. 그런데 가격만 나이스하고 딱히 마음에 드는 화분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눈이 높은 것도 아닌데 영 마음에 차는 게 없었다. 크기도 어중간하고 색깔도 영...


 꾸역꾸역 이거면 됐다 싶은 걸 겨우 집어 들다가 기존의 화분과 거의 같은 모양과 기능을 갖추고 있는 화분을 뒤늦게 발견했다. 색도 뭐도 예쁜 구석은 거의 없었지만 어차피 처음에 집어 든 화분도 이거다 싶은 화분은 아니었기에 그럼 차라리 기능적인 측면만 보자 하고 통기성을 우선시해서 만들어진 플라스틱 화분을 집어 들었다. 더불어 처음엔 그로로가 준 집에 남아 있는 흙으로 적당히 채우려 했는데 새로 산 화분 크기가 생각보다 있어 부족할 거 같아 ‘관엽에 좋은’이라는 표현이 붙은 배양토도 함께 샀다.


 집에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하루 더 미루고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어제 토요일에 드디어 분갈이를 했다. 분갈이는 순식간이다. 미뤘던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순식간에 끝났다. 30분도 안 걸린 거 같다. 그렇다. 매사 미루던 일은 막상 시작하면 순식간에 끝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늘 미룬다. 구제불능이다.


 집에 들어와 옷을 다 갈아입고 방바닥에 신문을 깔고 분갈이를 시작하다 아차! 밖에 있는 모종삽을 안 들고 온 걸 생각했다. 나가기 귀찮은데... 손으로 대충 꺼뭉이가 원래 살고 있던 화분을 조물조물하다 안 되겠다 싶어 나가지는 않고 나무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나무젓가락으로 흙과 화분 사이를 푹푹 쑤셔 가며 틈을 만들어 꺼뭉이를 들어 옮겨 심었다. 내가 끊어 먹은 게 아니라면 생각보다 뿌리가 풍성하고 길게 뻗어 있지는 않았다.


 집에 남아 있던 그로로를 통해 받은 흙을 깔고 새로 사 온 관엽에 좋은! 배양토로 보충을 하고 기존 화분의 흙을 담아 고르게 펴준 뒤 꺼뭉이를 자리 잡았다. 가운데로 잘 몰아서 흙으로 주변을 채우며 지지해 주고 분무기로 물을 뿌려주며 다져 나갔다. 분갈이하는 도중 혹시 꺼뭉이가 힘들까 싶어 이전에 주고 남아있던 영양제도 마저 줬다. 어느 정도 됐다 싶을 때 토끼들도 이사를 시키고 마지막으로 역시 분무기로 물을 흠뻑 주고 다시 베란다로 옮겼다.


 문제는 베란다 턱에 올리기엔 이제 화분이 조금 컸다. 아직 올라가긴 하는데 왔다 갔다 하는 곳이라 자칫 실수로 화분을 엎을까 걱정이 됐다. 일단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두기로 했다. 어차피 날이 더 추워지면 다시 자리를 찾아야 했다. 그때까지 원래 자리에 두면서 분갈이한 화분에 잘 안착하기를 바라며 마무리했다. 벌써부터 다음 분갈이에 대한 귀찮음이 몰려와 이왕 하는 거 그냥 더 큰 화분에 할 걸 하는 마음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본 잎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