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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하는 늑대 Nov 03. 2024

대학교 1학년

https://groro.co.kr/story/12514



 난 98학번이다.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표현이지만 부연해 본다. 스무 살의 나이로 1998년에 대학생이 됐다. 1997년에 경제위기에 의해 IMF로부터 긴급자금을 지원받아야만 회생할 수 있는 국가부도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이던 때였다. 하지만 나에게 국가부도나 경제위기 그리고 IMF는 다른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별 관심이 없었다.



 아직 어려서 관심이 없다고 하기엔 고등학교 3학년 그리고 대학교 1학년의 나이가 조금 무색하긴 했으나 국가부도의 위기를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할 나이도 아니었다. 최소한 나에게는. 더불어 우리 집은 원래 못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경제적인 위기가 크게 와닿지 않았던 거 같기도 하다.     

 IMF가 터지기 직전까지 우리나라는 폭발하는 성장기를 맞아 그야말로 니나노~를 외치며 흥청망청 했었는데 우리 집은 그런 흥청망청을 할 여력이 애초에 없었다. 부모님이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 말아먹을 재산 자체가 없었고 괜찮은 기업에 다녀 정리해고 대상이 될 만한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 IMF는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금 모으기 운동은 기억난다.



 사실 그보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공부를 안 하기 시작해서 고등학교 3학년 때 정점을 찍어 결국 원하는 대학교를 가지 못한 내 현실이 더 비참하고 씁쓸했기 때문에 국가부도고 경제위기고 나발이고 내 관심 속에 들어올 수 없었다. 여하튼 그런 어마무시한 역사적 흐름 속에 난 대학생이 됐다.



 원하지 않는 대학교의 대학생. 하지만 그 누구도 탓할 수 없는 결국 내가 만들어낸 결과로써 대학교였다. 그럼에도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막상 대학교에 가고 보니 뭔가 설렜다. 대단할 거 없는 원하지도 않던 대학교였지만 여하튼 대학생으로서 흔히 말하는 캠퍼스의 낭만 같은 게 그냥 마음으로 흘러들어 왔다. 뭐 이렇다 할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고등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와 지잡대고 뭐고 간에 대학생이라는 사실 자체가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했다. 그리고 봄이었으니까 더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문득 가을에 학기를 시작하는 다른 나라의 학생이었다면 그런 설렘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대학교 1학년 때 생활이 특별히 기억나는 건 없다. 물론 할 건 다 했다. 입학하기 전 OT부터 시작해서 입학식, 개강파티, MT, 축제 그리고 술자리, 술자리, 술자리 등등등... 1학년 때 미팅이나 소개팅 등을 했었나 하고 가만히 생각을 해 보는데 딱히 기억나는 게 없다. 하긴 했을 거 같긴 한데 뭐 특별한 일은 없었던 거 같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와중에 불현듯 했던 미팅 하나가 생각나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했던 건지 대학교 1학년 때 했던 건지 긴가민가 하다. 좋은 결과가 있을 뻔했으나 결국 그냥 뭐 아 하하하하하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이 역시 따지면 실패담이기 때문에 나중에 기억이 나고 기회가 닿으면 한 번 글로 옮겨 보도록 하겠다.)



 오히려 그런 일련의 사건들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1학년들이 주로 교양과목 수업을 들었던 강의동과 뒤뜰에 있던 작은 분수대와 매점의 모습이 새가 하늘에서 바라본 한 장의 조감도처럼 머리에 각인돼 있다.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 강의동 뒤로 나가 분수대에 앉아 노닥거리며 간혹 누군가가 생일이면 분수대에 빠트리니 뭐니 하면서 난리가 나는 모습을 보곤 했던 그 순간이 더 기억에 남는다. 더불어 바로 옆이 매점이라 틈만 나면 과자나 음료수 등을 사 먹으러 갔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늘 점심을 그 매점에서 사 먹었다. 대단할 건 없는 흔해빠진 돈까스나 우동 등이었지만 늘 맛있게 먹었다.



 쓰다 보니 시험기간만 되면 한 두 과목 공부도 하기 싫고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그저 학점이나 채우면 되는 그런 과목은 신나게 커닝을 했던 기억도 난다. 철학 관련 과목이었던 거 같은데 시험 당일에 책상 전체에 커닝을 할 교재의 내용을 거의 복사 붙이기 하듯이 써 놓고 시험지에 그대로 옮겨 적은 기억도 난다. 웃기지도 않게 그 과목의 성적은 좋았다. 잘하는 짓인지 이래도 되는 건지 별 상관이 없었다. 딱히 의미도 없는 교양과목 성적만 나오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원하지 않는 대학교 그러니까 대단할 것도 없는 성적이지만 그 성적을 활용해 소위 ‘안전빵’으로 지원을 한 대학교이기 때문에 엄마는 모르지만 장학금도 받았다. 나름 국립이라 등록금이 그렇게 비싸지는 않았지만 입학을 하면서 일단 납부한 등록금은 장학생으로 얼마 뒤 거의 전액을 돌려받았다. 뭐 결과는 예상대로 옷 사고 술 마시고 이래저래 그냥 다 써 버렸다. 엄마 미안. 물론 이후로 대학교를 졸업하기 직전까지 거의 늘 알바를 통해 용돈을 충당하긴 했다. 엄마 몰래 장학금을 털어 먹고 미안한 마음으로 용돈은 내가 충당하자 해서 시작한 알바는 아니었지만 뭐 여하튼 그랬다.



 이미 다 지나간 시간이고 일이라 이제 와서 이래저래 이야기해 봐야 아무 의미도 없지만 후회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원하지 않는 대학을 갔고 가장 열심히 공부를 했어야 하는 고등학교 3학년을 신나게 놀았으니 뒤늦게라도 공부를 다시 해서 수능을 다시 보든가(실제로 두어 번 더 보긴 했다. 이 야이기 역시 다음에 기회 되면 풀어 보겠다.) 생각하는 진로와 조금 더 가까운 과로 전과를 하든가 아니면 편입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냥 그렇게 보냈다. 바다에 떠  다니는 부표처럼 그냥 둥둥 떠 다녔다.



 포기를 한 건지 후회를 한 건지 에라 모르겠다 그냥 놀자 한 건지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앞에 이야기한 게 전부 다인 거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거 같기도... 그냥 잘 모르겠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언가 조금이라도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는 행동을 했을까? 글쎄... 아니 그보다 어차피 돌아가지도 못하는 거 생각해 봐야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재미는 더 없으니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랬던 내 과거도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낸 하나라고 생각하면 딱히 바꾸고 싶은 생각도 없다.



 일단 당시를 떠올리면 재미있게 잘 보냈던 거 같다. 아무 생각 없이 보낸 걸 수도 있는데(맞는데) 결과적으로 좋으면 된 거 아닌가? 더불어 지금의 내 모습이 그리 싫지도 않으니 뭐 그때의 기억은 그냥 그렇게 남겨 두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가정이라고 해도 어차피 돌아가지도 못할 과거 생각할 시간에 차라리 지금 더 나은 삶이 되기 위해선 뭘 하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게 더 발전적인 거 같다. 그렇다고 당장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 아니다. 문득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강의동 뒤뜰에 분수대와 매점이 그대로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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