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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쓴다. 250830

천조만 큼

by 이야기하는 늑대

https://groro.co.kr/story/16153



쉬는 토요일을 3주째 맞이하고 있다.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다 공감하겠지만 쉬는 날 집에 있으면 힘들다, 아니 안 된다. 무조건 나가야 된다.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어디든 이동하는 시간 그리고 해당 장소에서 노는 시간, 다시 돌아오는 시간, 돌아와서 정비하는 시간 등을 보내야 하루가 빨리 간다. 그렇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 되면 잡혀서 세상 오만 놀이는 다 해야 된다. 그런 걸 어렵지 않게 생각하는 부모들은 상관이 없지만 난 최소한 그런 부모는 못 된다. 태생이 게을러 틈만 나면 드러누우려는 나에겐 정말 힘든 일이다. 병원 놀이 하면서 환자라고 누워 있는 것도 한두 번이다. 지금도 글을 써야 하는데 같이 자자고 막 불려 들어가는 중이다. 재우고 나와 다시 써야겠다.



자기 전에 엄마아빠 놀이를 한 번 하고 겨우 잠들었다. 내가 아빠고 아내가 엄마이면서 아이가 딸인 현실을 살고 있으면서도 엄마아빠 놀이를 자주 한다. 뭐 여하튼 그렇게 재우고 나도 잠들고 해서 2시간 여 만에 다시 나와 글을 쓰고 있다.



인근에 있는 휴양림을 다녀왔다. 기억에 의하면 아이가 지금보다 더 꼬꼬마 시절에 그러니까 놀이기구를 혼자 전혀 탈 수 없던 시기에 한 번 왔던 곳이다. 기억이 가물가물했는데 도착해서 그 특이한 진입로를 달리는 순간 아! 여기하고 생각이 났다. 주차를 하고 휴양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부러 점심을 먹고 카페도 한 곳 들렀다 왔다. 날이 더운 여름이라 아무리 나무가 울창한 휴양림이라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더웠다. 기억에 의하면 휴양림 안에 꽤 큰 놀이터가 있었다. 그 놀이터에 가려고 사실 기억을 더듬어 다시 온 것이다.



놀이터까지 가려면 한 500여 미터를 걸어야 했다.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아이를 끌고 꾸역꾸역 놀이터까지 갔다. 놀이터 전경이 드디어 드러나자 아이도 그제야 힘든 기색을 다소 감추고 놀이 기구를 향해 걸어갔다. 이미 뛰어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때 여기 왔었다고 사진도 찍었다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몇 개의 놀이기구를 탔다. 그런데 여름은 여름이었다. 이미 시간이 오후 5시가 다 됐음에도 더웠다.



아이가 조금 커서 그런지 은근히 논쟁 아닌 논쟁을 벌일 수도 있게 됐다. 아이가 자라고 있구나 하는 기특한 생각이 들면서도 이거 벌써 이러면 나중에 만만치 않겠는데 하는 생각을 하며 아이랑 투닥거렸다. 투닥거림의 끝은 늘 당연하게도(?) 아빠인 내가 사과를 해야 했다. 간혹 엄마의 중재에 의해 서로 사과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도 그랬다. 그리고 난 다소 미안해서 놀이기구를 타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가 씩 웃으며 물었다.



“아빠 딸이야?”(이 아이가 내 딸이라는 사실 그러니까 그전에 내가 결혼한 사실 등이 문득문득 신기해 농담처럼 자주 묻는 말이다.)

“아빠가 많이 사랑하는 거 알아, 몰라?”

딸이 답했다. 만 4세이면서 6세 반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다.

“많이 사랑하는 거 알아~. 만만 큼 사랑하지?”

다시 답했다.

“그럼, 만이 뭐야? 천만만 큼! 아니, 억. 아니, 천억만 큼. 아니다. 조만 큼, 천조만 큼 사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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