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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J Aug 21. 2021

영어는 원어민에게 배워야 할까

#3 나의 영어학교 LINC

캐나다에서 만난 나의 첫 영어 선생님.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60대 초반의 할아버지였다.

캐나다는 워낙 이민 2세대들이 사회 전반에 걸쳐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니 교사도 그중에 한 부분 이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2세대가 아닌 1세대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영어 교수를 하다가 난민으로 캐나다에 이주한 이민 1세대.

나는 영어를 꼭 원어민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아시아 문화권의 교육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서 나에게는 익숙하고 편했다.

게다가 나는 그에게서 이민 1세대로써, 그것도 난민(refugee)으로써 캐나다에서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다.

우리나라 6~70년대에 독일에 이민을 가서 외화를 벌어들인 재외동포의 이야기처럼 낯설지 않았고, 녹녹지 않은 해외살이의 경험담에 공감할 수 있었다. 비록 나는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지 않지만 해외에 살면서 느끼는 마음은 다 똑같은 것 같다.


난민은 모국의 국적을 포기하고 귀화하는 것을 뜻한다. 내가 태어나 살아온 조국을 포기하고 난민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새로운 다른 나라 땅에서 그가 난민으로써 겪었던 많은 일들은 나에게 값진 간접경험이 되었다.

어떻게 난민으로 시작해 학교 선생님이 되었을까. 그것도 영어 사용국가인 캐나다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선생님.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국립대학교 영어 교수였단다. 나라의 정세가 위태로우니, 나라가 나와 가족의 안전을 지켜줄 수 없다는 상황이 떠날 이유를 만들어 주었단다. 그에게가 아닌 그의 아내에게 말이다.

아내를 무척 사랑하고 아끼는 그는 아내를 위해 모국을 떠나면서,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와 그 가족이 다시는 모국에 돌아갈 수 없다는 의미라는 것을 안다.


그가 처음에 캐나다에 와서 한 일은 호텔 Door man.

호텔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그가 건네는 인사나 스몰 톡을 구사하는 그의 영어실력에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단다. 갈색 피부의 이방인의 입에서 자연스러운 영어가 나오니 신기했을 꺼란다.

이후에는 밤을 새우며 치즈공장에서 일을 하고, 오전에는 영어교사가 될 수 있는 자격증을 공부하며 지냈다고 했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을 몇 년간 해 온 것이었다. 자격증을 따고 얼마 되지 않아, 호텔에서 Door man으로 일할 때 만났던 교육계 관계자와 인연이 닿아 LINC학교의 파트타임 선생님으로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렇게 단 몇 줄로 그의 이민사를 요약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그의 수 년동안의 노력에는 많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을 것이다.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 꿈을 이루어냈다. 멋지다.


그가 이루어낸 성과로 그의 직업은 영어 선생님이지만, 그가 가진 모국인의 외향은 달라지지 않는다.

미국으로 교사 워크숍을 다녀오게 되면, 국경을 쉽게 통과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그의 신분은 테러와 관련 가능성이 있는 중앙아시아인의 외모로 판단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기 위해 평소에도 지갑에 항상 영어교원증을 넣고 다닌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신분증도 그의 신분을 증명하기엔 부족한지 일행과 분리되어 추가 조사를 받곤 했다고 했다. 오죽하면 캐네디언 동료 교사가 보다 못해 그를 보호해 주려고 항상 그의 뒷라인에 줄을 서서 증인처럼 대변을 해준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이런 일화를 담담하게 전하지만, 그가 처한 상황에서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민자는 결국 내 나라가 아니면 신분의 보장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몇몇 국가 출신의 이민자들은.


얼마 전부터 들려오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안타까운 소식들이 나의 첫 영어 선생님이었던 그를 상기시켰다. 그는 지금 어떤 마음일까.

그가 수업시간에 모국에 대해 말할 때는 항상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이민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향수' 말이다. 요즘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나고 있는 참담한 상황을 뉴스로 접하면서 나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으로부터 들어왔던 그곳의 모습이 함께 떠올랐다. 그가 모국을 떠나기 전까지 지냈다는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안락하게 지냈던 시절의 추억담. 그의 이야기는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나올 법한 멋진 밤하늘과 중동지역에서 만날 수 있는 광활한 사막에서의 오아시스마저 연상케 할 만큼 평화로움으로 가득했다.

그의 모국에는 이슬람 원리주의와 탈레반 테러집단이라는 위협과 공포가 있지만, 그곳에서도 수천 년 동안 내오는 그들의 전통과 문화가 있고,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는 도시가 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영어를 입 밖으로 소리 내어 표현하도록 자신감을 심어준 선생님.

누구든지 꿈을 꾸면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

원어민이 아니지만 원어민이 아닌 이민자였기에 더 배울 것이 많았던 선생님이다.

이제 은퇴하고 더 이상 교단에 서진 않지만, 그를 거쳐간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에게도 그는 영어 선생님 이전에 캐나다 이민 선배로 마음에 오래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리워하는 예전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모습의 아프가니스탄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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