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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Mar 23. 2024

회사에서 감히 친구를 만들겠다고?

  ***

<청담 부부>


  영화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을 가리키는 재밌는 별칭이다. 그만큼 그들은 유명한 연예계 커플(?)이다. 나는 최근 라디오에서 그들의 우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듣게 되었다.


  계기는 1999년 <태양은 없다>라는 영화에 함께 출연한 것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자그마치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영화 <태양은 없다>를 봤던 것이 25년 전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두 배우의 우정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

  그러고 보면 연예계에는 꽤 자주 그런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무명이라 해도 좋을 뮤지션이나 배우가 알고 보니 어느 톱스타의 오랜 친구였다더라. TV쇼를 통해 듣게 되는 그런 이야기는 제법 흔하다.


  <어떻게 저런 관계가 가능할까?>


  나는 그런 호기심과 함께 부럽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았다. 사회에서 만났음에도 끈끈한 우정을 갖게 되는 관계 말이다.




  ***

  나는 직장생활 15년 차를 넘어가고 있다.


  직장을 옮긴 적도 없었고, 부서 이동은 있었지만 줄곧 한 건물에서만 일해왔다. 즉, 입사를 하며 알게 된 동기와 사무실 동료들과의 인연도 15년은 됐다는 뜻이다.


  만약 그들을 초등학교를 입학하며 만난 친구라고 한다고 한다면?


  초중고 시절을 함께 보내고 나서도 3년이 남는다. 자, 그렇다면 그중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과 자주 모임을 갖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술자리를 넘어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거나 가족끼리 캠핑을 가기도 했다. 심지어는 계를 만들어서 해외여행까지 가는 동료들도 있다. 한편 누군가는 이사를 하며 돈문제를 겪는 동료에게 수 천만 원을 선뜻 빌려주기도 했다는 사실을 들은 적도 있었다.


  내게 수천만 원의 돈까지는 필요 없다.


  단지 이따금씩 가슴속에 담아둔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정도면 충분하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는 친구라곤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취업을 하며 타지로 거처를 옮긴 탓에 학창 시절 친구들은 명절 때에나 만날 수 있는 신세였다.


  그럼에도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옆 부서 <윤 과장>이었다.



  ***

  우리는 입사 동기였다. 윤 과장이 나보다 한 살 많았지만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는데, 그와 나의 행적은 평행이론처럼 닮아 있었다.


  무엇보다 그 역시 나처럼 입사를 하면서 평생 살아왔던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사는 곳에서 배우자를 만나 자리를 잡았다. 우린 이 생면부지의 도시에 속을 터놓을 친구라곤 없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런 공통분모가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우리 두 사람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개인주의자들이었지만, 아주 가끔 술잔을 기울이며 깊은 속내를 털어놓곤 했다.




  ***

  그래서 윤 과장에게 더 큰 배신감이 들었던 것 같다.



  아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그가 이사를 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것도 1년 전에 말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1~2번은 꼭 만나서 티타임을 가졌다. 그만큼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못할 이야기까지 공유하던 사이였다.


  - 이사할 때 되지 않았어요?


  더 괘씸한 것은 내가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음에도 그는 <그러게 말이에요. 한 번 옮기긴 해야 하는데...>라며 둘러댔다는 사실이다.


  - 그냥 그렇게 됐어요. 미안해요.


  그는 멋쩍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 별 일 아닌 거 나도 잘 안다. 그래서 더 이해할 수 없었고, 화가 났다. 무엇보다 실망스러웠다. 15년을 이어온 우리 관계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

  윤 과장은 변하지 않았다. 그는 이후로도 시시껄렁한 일들을 숨기고 있다가 나에게 곧잘 발각되었다.


  도대체
왜 그따위 것이 비밀이야?

 하나같이 그런 의문이 들만큼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에게 기대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고, 그 방증으로 우리의 티타임 횟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 나와요. 차 한 잔 합시다.


  그에게서 호출 메시지가 와도 달갑지 않았다. 그와 보내는 시간이 그야말로 아무 의미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자기 집에 강아지를 입양해 왔더라도 입을 굳게 다물었을 사람이다. 평생 가슴속에 품고 갈 비밀이었기에 말 못 했다고. 나원참, 누가 돈을 빌려달래, 청담부부가 되쟤.


  회사에서 마음에 맞는 친구 만나기란 정말 허황된 꿈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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