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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 Apr 07. 2024

까칠한 전산팀 그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

  - 안녕하세요. ㅇㅇ팀 서툰 과장입니다.


  전산 부서에 도움을 받을 일이 있어 전화를 걸었다.


......


  그런데 웬걸. 수화기 너머의 상대방은 묵묵부답이었다. 통화상태가 좋지 않은가?


  - 여보세요?


  그제야 쌀쌀맞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L 대리였다. 그녀의 어투를 듣자마자 곧바로 거북한 감정이 일어났다.




  ***

  그것은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불편함이었다.


  마치 신입 때 뭔가 실수라도 한 뒤, 그걸 수습하고자 타 부서에 전화를 했을 때의 느낌이랄까. 그것도 성격 까다로운 선배에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덧 입사 15년 차의 과장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선배보다는 후배가 더 많은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한참 후배를 통해 그런 불쾌한 기분을 상기하게 되는 걸까.


  나는 이 해괴한 상황이 곤란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의 끝에는 역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고 보면 회사는 일정 부분에 있어서 직원들의 분노를 먹고 성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L 대리는 시종일관 귀찮고 짜증 난다는 듯이 대꾸했다. 놀랍게도 나는 아직 내 용무를 밝히기 전인데도 말이다.


  - 보내신 문서 봤어요. 전산 시스템에서 오류가 계속 나던데 그쪽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인가요?


  - 그건 본인이 조치하라고 방법까지 다 써놨는데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가 쏴 붙이듯 대꾸했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참 예의 없다고 느꼈다. 차라리 상대가 선배였다면 이쯤에서 나도 응전을 했을 텐데, 후배가 이렇게 나오니 이건 이것대로 참 난감한 노릇이지 뭔가.



  - 그 <방법>이란 걸 어디에 쓰셨나요?


  - 어디? 어디요? 문서지 어디긴 어디예요!



  L대리는 화를 못 이기겠다는 듯 그렇게 말했다. 그럴수록 나는 더 침착하게 물었다. 이럴수록 어른스럽게 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감정을 억르면서.



  - 보내주신 문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던데, 어느 문서 말인가요?


  - 제가 보내드린 문서는 하나밖에 없습니다. 검색해 보세요. 그럼 끊겠습니다.


  - 아니, 이봐요. 내가 잘못 알고 있더라도 물어보면 설명해 줄 수도 있지 않아요?


  - 하...


   

  결국 그녀는 자기가 보낸 문서 제목만 다시 한번 불러주고 전화를 끊었다.




  ***

  뭐 이딴 게 다 있지?

  전화를 끊고 나서 내 가슴에는 한바탕 불길이 일었다가 사그라들었다. 나는 과거 내가 신입시절이었을 때 이해 못 했던 선배들을 떠올리며 참았다.


  왜 이 당연한 걸 모르지?


  속으로 그렇게 답답해했던 선배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이다. 혹시 나도 그런 선배가 된 것은 아닐까. 그런 반성을 하며 그녀가 말한 문서를 다시 찾아보았다. 그렇게 찾은 문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 결과,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였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녀가 장담했던 해결책은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곧바로 그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록 말이다.




  ***

  내 전화번호를 블랙리스트로 기억해 두고, 피하기라도 하는 것일까. 참으로 알 수 없는 그녀의 속마음이지 뭔가. 


  누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회사 밖에서도 그렇게 냉랭하고 까칠한 성격일까? 아니면 만만찮은 회사 생활을 하며 터득한 그녀만의 생존법일까? 그렇다면 그녀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다는 것일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에 대한 일말의 동정심마저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아무튼 그녀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은데 말이다.



  야,
너 문서 잘 못썼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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