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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쌤 Jun 21. 2024

작은 농부의 웃음소리

문화센터 콩 농사 체험에서 발견한 행복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항상 새로운 발견으로 가득하다. 5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영아를 대상으로 한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수업은 아이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활동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하이라이트는 '콩 탐색'이었다. 가벼운 타악기를 두드리기도 하고 모형 콩이 가득 채워진 풀장에서 소꿉놀이도 하며 아이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탐험했다.


 강사님의 안내에 따라 아이는 돌쇠 의상을 입고 작은 농부로 변신했다. 작은 손으로 콩을 심고 물을 주고 수확하는 시늉을 했다(물론 내가 아이 손을 잡고 그런 시늉을 했지만). 그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며 문득 콩 농사를 하며 이도록 즐거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감회가 새로웠다.


 우리 집은 수십 년 동안 과수원을 운영하면서 자투리 땅에 콩 농사를 지어왔다. 콩을 수확하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콩을 뽑고 타작하는 일은 특히나 힘든 작업이었다. 콩을 전문적으로 재배하는 농가에는 대부분 자동화된 기계를 사용하지만, 우리 집은 여전히 손으로 콩 타작을 했다. 당시에는 일제 얀마(YANMAR)사 콤바인을 사용해 벼, 보리, 콩을 모두 수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지하게 비쌌고 우리 집은 사과밭과 벼농사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어 놓았기 때문에 콩 수확은 오로지 수작업으로 해야 했다.


 이론적으로는 콩깍지를 털지 않은 채로 도매로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팔면 시세가 반 타작으로 꺾여 우리는 알알이 까서 소매로 처분했다. 시장에는 수입산 농산물로 속고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때문에 국내산 서리태와 땅콩은 인기가 많아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하지만 일손이 많이 드는 작물이어서 최근에는 서서히 줄이고 들깨를 심고 있는 추세다. 이마저도 결국에는 자동화되어 있는 벼농사로 전환할 것 같다.


 더욱이 근래에는 일손이 부족해 거의 방치하고 있던 포도밭 600평은 갈아엎고 물을 받아 벼농사로 전환했다. 그리고 수확하지 못한 고구마밭은 눈물을 머금고 트랙터로 다 갈아엎었다(할머니는 정말로 우셨다). 그래서 앞으로 콩을 얼마나 더 심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콩 농사 놀이를 하는 아이를 보며 우리 가족들이 이 모습을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참으로 궁금했다.


 아이의 작은 손길이 닿는 곳마다 콩이 넘쳐 났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순간순간이 소중했다.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농부를 보며 나는 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깨달았다. 오늘도 나에게 보람찬 하루였다.


 콩 농사 체험은 아이에게 재미있는 놀이였고 나에게는 지난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었다. 콩을 심고 수확하는 과정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기에 작은 농부로 변신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뿌듯함과 함께 기쁨을 느꼈다. 아이의 웃음소리는 힘든 농사일의 기억을 달래주는 따뜻한 위로였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고단할지라도 이 아이가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준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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