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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Jul 17. 2022

존경하던 평론가에게 주례를 부탁하고 받은 메일

교수님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드리며


때는 5년 전 2017년 여름이었다. 당시 나는 28살의 앳된 예비 신부였다. 11월에 결혼하기로 날짜를 잡아놓고 여름쯤이 되니 결정해야 할 것들이 천지였다. 결혼식장부터 시작해서 사진 촬영, 집 마련, 혼수준비 등등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친구 결혼식에 가서 부케를 받는 기회가 생겼다. 나도 11월에 결혼을 하기 때문에 친구 결혼식의 면면을 유심히 보면서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결혼식 주례사를 듣고 나서 '아차, 나도 주례를 정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 때부터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누구에게 주례사를 부탁하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었다. 사실 그리고 난 이 고민의 답을 알고 있었다. 나는 주례를 부탁하고픈 그 '누군가' 가 분명히 정해져있었다. 이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남몰래 나 혼자 희망하고 있던 일이었다.



이젠 화질도 흐린, 20살 때의 나


그 때로부터도 수년 전, 2010년 경 대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다. 나는 한 학기 정도 잔병치레를 많이 하고 병원에 자주 다닌 적이 있었는데 휴학을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서 별 수 없이 결석을 자주 하면서 한 학기를 형편없는 성적으로 마친적이 있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던 그 때 별 기대없이 들어갔던 평론 수업에서 '남겨진 사람들' 이라는 주제의 강의를 듣고 굉장히 감명을 받았었다. 마침 시기적으로 나에게 적절한 강의여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 강의를 듣고 난 후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의 성함을 인터넷에 쳐보니 굉장히 유명한 평론가셨다. 그 교수님이 쓰신 책들, 평론들을 찾아서 며칠동안 열심히 읽었고 글에서도 깊은 감동을 받았었기에, 그 이후 나름대로는 수업에도 성실히 참여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나름대로 한다고 했던 것이지 다른 학생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 강의는 추후에도 내 기억에 오랫동안 남았다. 그리고 나는 몸을 회복하고 난 후 일상으로 돌아오는 데에 교수님께서 강의에서 하신 말씀을 많이 떠올리며 힘을 냈던 기억이 있다. 교수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아니었으나 나 혼자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의미있는 날 좋은 말씀을 듣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얼마간을 끙끙 앓듯이 고민을 하다가 결국 교수님의 메일 주소를 학교에서 찾아내어 메일을 쓰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메일 수신확인이 안되니 이 메일이 쓰고 계신 것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다. 결국 나는 교수님께서 근무하고 계시는 학교에 전화를 걸어 조교에게 "옛 학생이 메일을 보냈으니 메일을 좀 읽어달라고 전해주시라" 고 부탁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무모한 용기였던 것 같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모자이크로


용기는 있었으나 사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교수님과 나는 그 때 강의 이후로 어떠한 연락도 접점도 없이 모르는 사이로 지냈기 때문이었다. 또한 강의에서 내가 받았던 인상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교수님께서는 주례 같은 행사에 나서고 싶어하지는 않으실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그토록 유명하신 분께서 나같은 일개 옛 학생의 결혼식에 굳이 참여하시어 주례까지 하시는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사실 마지막 생각에 내 생각이 많이 머물렀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날 즈음 나는 한 통의 메일을 받게 되었다. 



사실 답을 받으리라고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 메일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내 얼굴이 기억나진 않으시지만 이름은 귀에 익다는 말씀도 여운이 남았다. 그리고 답장을 받은 메일은 당연하게도 정중한 거절의 내용이었으나 나는 전혀 실망하지도 서운하지도 않았다.


이토록 미숙하고 무모한 부탁을 받았음에도 나를 기억해주시려 애쓰신 내용, 무시할 수도 있는 말도 안되는 부탁임에도 이토록 정중하게 거절해주신 부분들이 모두 내 마음에 깊은 감동으로 남았다. 새삼 '저런 유명한 분이 내 메일에 답이라도 하시겠어' 라고 생각한 부분이 어리석고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해 11월 나는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끝내 누구에게도 부탁하지 않았고 주례없는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과 내가 서로 적은 편지를 읽고 양가 어른들께서 덕담을 해주셨다. 주례없는 결혼식 이라는 문화가 많이 퍼져있기도 했었고, 주례는 교수님이 아닌 다른 누구에게 부탁하기 싫은 내 욕심이기도 했다.


얼마전 결혼식 영상을 다시 보다가 어설프고 무모했던 그 때를 기억하며 나는 잠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마음으로나마 교수님께서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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