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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Jul 18. 2022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쓰고 그린다

아이 엄마도 소중하지만 나도 소중하기에


때때로 아침에 등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볼 때면 감개무량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때가 있다. 지금은 다섯살이고 모든 일을 혼자서 척척 해내는 아이지만 처음에 낳았을 때는 '내가 굉장한 사고를 쳤구나'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보는데 눈 앞이 캄캄했다. 안기도 겁나는 작은 아이를 어찌 키운담? 덜덜 떨면서 아이를 안아봤던 처음 그 때를 생각하면 거만한 생각이지만 '나도 엄마로써 꽤 해냈지' 하는 뿌듯함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오기에 쉬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매일 한계를 느꼈고 내 마음이 좁아 혼자서 어두운 동굴같은 우울을 걷기도 했다.


때는 3년 전, 아이의 돌잔치를 마쳤을 때이다. 키우느라 수고했다는 주위 사람들이 칭찬을 건성으로 들으며 나 혼자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아이는 잘 키워놓긴 했는데 대체 나는 무엇일까? 1년 동안 오로지 아이에게만 매달렸다. 아이에게 사랑을 주고 아이를 키워내고 육아에 있어선 남들이 한다는 건 그래도 발끝이라도 미치려고 아둥바둥 애썼다. 그렇게 1년 지난 어느날 거울을 보니 몇 년 전 나 혼자 있을 때 반짝반짝하던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지쳐서 축 늘어진 표정, 부해져버린 몸매와 얼굴, 아이를 안느라 자세마저도 구부정해져서 십년은 더 늙은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내 마음속에서 날 괴롭히는 부분은 누구나 나를 '수호 엄마' 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수호 엄마 외에 도대체 '나' 는 누구인가. 그 생각을 하니 '나' 라는 존재는 온데간데 없었다. 그래서 얼마간은 도대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 나, 나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아직 어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낮잠 자는 2시간 정도가 내 유일한 자유시간인데 그 때 나가서 일을 할 수도 없고 사실 낮잠자는 어린 아이를 두고 나갈 수도 없었다.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하다가 내가 사실은 예전에 글도 좀 썼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2시간이면 무언가를 쓰고 그리기엔 충분한 시간이지! 나는 쳐박아뒀던 아이패드를 꺼내서 어설프게 그림을 그려보았다.



그냥 그림은 물론 아이패드 사용하는 것도 익숙치 않은 나라서 첫 그림을 완성하기 꽤 어려웠다. 하지만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고 나니 다음 이야기가 그리고 싶었고 웹툰의 형식으로 몇 컷을 그리고 나니 내 이야기를 그림과 글로 담아내는 것이 신선하고 재밌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 사실 별다른 재능이 없기도 하고, 또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재주가 그리 신통치가 않아서 가끔 끄적이는 것 외에 그림보다는 글로써 나를 표현하는 것에 더 치중하게 된 것 같다. 그래서 한동안은 블로그에 육아 일기를 쓰면서 가끔 그림을 곁들여 올렸었다.


물론 내 일상이 전부 육아이기에 그림과 글 역시 육아 내용이 월등히 많았지만 나는 그리고 쓰는 그 동안에 완연한 '나' 로써 존재한다고 느꼈다. 완성된 그림과 글을 다시 볼 때면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그 안에는 수호엄마 외에도 그냥 한 인간으로써 나, 백승주가 들어있다고 느낀다.



그래서 저번에는 어설프게 채색하는 법도 살짝 배웠고 그림 스킬도 나름대로 늘려서 인스타그램에 웹툰 연재를 야심차게 시작했으나, 현재 아이패드가 말썽이라 연재는 멈춰 있다. 그러나 아이패드를 고치면 다시 열심히 그려볼 생각이고, 또 그림 외에도 글로써 나를 표현하는 일들도 계속 해나가려고 한다. 


물론 나는 프리랜서 작가로 글 쓰는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그 외에도 나를 담아내는 글을 쓰는 일도 계속 해보고자 한다. 수호 엄마로써 내가 해야할 일도 많지만, 나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기에 나는 계속해서 쓰고 그려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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