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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Jul 14. 2022

유치원 가던 아들의 짜증 "알아서 할게!"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우리 부모님은 언제나 말씀하셨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하는 것보다 뭐든 빠르게 했다고 말이다. 기는 것도,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글자를 배우는 것도 늘 빨랐다고 한다. 사실 그렇게 어린 시절까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기억이 나는 어린 시절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확실히 조숙하고 영리한 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들을 낳았을 때 내 아이도 그럴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이게 얼마나 오만이었는지 깨닫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백일 쯤 되면 아이들은 뒤집기를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지나면 배밀이를 하고, 기기도 하고 스스로 앉기도 한다. 다른 아이들이 당연한 듯 그렇게 하는 일을 내 아이는 아주 느리게 했다. 병원에 가도 조금은 발달이 느린 편이라는 소견을 듣곤 했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키우는 동안 늘 아이의 발달과 성장을 세세하게 지켜보고 평가하곤 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쳐지진 않는지, 뒤쳐진다면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늘 초조하게 생각했다. 움직이는 것도 다른 아이들보다 느렸던 내 아들은 말 트이는 것도 굉장히 느려서 4살 때에야 말을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말이 트이기 시작하니 아이는 순식간에 다른 아이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갑자기 유려한 문장으로 자신의 생각을 줄줄 말해서 나를 놀랍게 하기도 했다. 겁이 많아서 주저하던 놀이터 기구 같은 것들도 어느순간 능숙하게 잘 타서 기특하기도 했다. 이제야 다른 아이들과 비슷해지는구나 네살에서 다섯살로 넘어가던 쯤에야 안심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5세가 되어 유치원을 보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면서 나는 고민에 빠졌다. 아이가 과연 유치원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소수정예로 아이를 돌봐주던 어린이집과는 달리 유치원은 학교와 같이 선생님과 학생으로써 지시를 따르고 교육을 받아야 하는 곳인데 내 아이가 그런 곳에서 적응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점이 많아 보였다. 유치원 원서를 넣는 날까지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나 맞벌이 부부인 나로써는 유치원에 당첨되었기 때문에 보내는 수 밖에는 없었다. 보내긴 보내야 하는데 적응 문제로 참 걱정이 많아서 아이를 들들 볶았다. 매일같이 아이에게 옷 갈아입는 법, 스스로 밥 먹는 법,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법, 선생님께 인사하는 법 등을 강박적으로 가르치면서 유치원에서 잘 생활해야 한다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했다.


그리고 등원하기 전에 교복을 받는 날 유치원 담임선생님을 처음 만나서 나는 거듭 인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많이 부족합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내 아이가 정말로 다른 아이에 비해 부족할까 걱정했고 그런 부족한 아이를 선생님께서 잘 보듬어주시길 바랬던 것 같다. 아이에 대한 걱정,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미안함 등이 공존하면서 괜히 혼자 울컥했다.


그 때 유치원 담임 선생님께서 하신 한마디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다섯살은 누구나 부족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 말을 몇 번이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조금은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를 기관에 보내자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이를 등원시키고 며칠 정도는 혼자 안절부절 못하며 아이가 과연 밥은 잘 먹는지, 친구들과 잘 지내는지, 선생님 말씀은 잘 듣는지 걱정이 많이 되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잘하는데 내 아이만 뒤쳐지고 있는건 아닐까 부족한 아이를 원에 괜히 보낸건 아닐까 혼자 전전긍긍했다.


그러다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셨다. 아이 담임선생님께서는 그동안 아이가 유치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또 아이의 특성이 무엇인지 나에게 설명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교우관계가 좋고  생활 습관이 잘 잡혀 있고, 장점이 아주 많은 어린이입니다. 교사가 보기에 정말 잘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나는 안도와 동시에 부끄러워졌다. 다른 누구보다 아이를 믿어줘야 하는건 나인데, 가장 믿지 못한 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매일같이 유치원 보내기 전에 독촉을 하고, 당부를 빙자한 잔소리를 늘어놓고, 버스를 타고 가는 아이를 보면서도 저 아이가 오늘 잘 해낼까 해내지 못할까 그런 걱정만 했다. 


이제 다섯살. 충분히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헤쳐나갈 수 있는 나이인데 아주 어릴 때 발달이 조금 느렸다는 기억 때문에 아이를 너무 불신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반성했음에도 그 다음날 아이를 버스에 태워보내는 길에 또 잔소리를 했다. "오늘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밥 잘 먹어야 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선생님이 하라는거 잘하고..." 내가 며칠을 매일같이 똑같은 소리를 하니 아이가 질린 듯 했다. 아이가 나에게 짜증스럽게 말했다.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다섯살 배기한테 그 이야기를 듣는데 어찌나 웃음이 나던지!  조금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기쁘기도 했다. 그래. 어차피 이제 아이가 하기 나름이다. 유치원부터 시작이다. 초등학교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아이가 다 헤쳐나가야 할 일이다. 


나는 이제 초조해하고 불안해하기보다는 아이를 믿어주기로 했다. 내가 할 것은 전전긍긍 초조해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아이를 전폭적으로 믿어주는 것 그리고 때때로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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