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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Jul 12. 2022

유축하던 내게 남편이 말했다

단순명료한 결론

태어난 후 하루 뒤


나는 임신을 했을 때 고생을 꽤 많이 했다. 초기에는 입덧이 아주 심했다. 처음에는 다들 하는 것이니 그러려니 했는데 중기가 지나도 입덧이 없어지지 않고 25주 지나도 입덧이 계속 되어서 제대로 먹지 못하니 우울함이 쌓였었다. 그래서 늘 눈물을 달고 살았고 짜증이 많았다.


또 임신 후기로 갈수록 갈수록 몸이 안좋아져서 몸무게도 약 5kg 밖에 늘어나지 않았고 요실금 증상이 심해서 생활에 불편함이 많았다. 병원에서는 아이는 건강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날 위로했지만 위로가 잘 되지는 않았다. '왜 임신은 해가지고' 라고 늘 속으로 투덜거렸고, 아이를 원망한 적도 많았다. 철없는 엄마였다.


나의 짜증을 정통으로 받아내야 하는 사람은 바로 남편이었는데 남편은 매일같이 계속되는 나의 눈물바람과 짜증과 예민함을 무던히 받아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다. 


임신 막달이 되자 병원에서는 나에게 제왕절개를 권유했다. 몸도 너무 안좋고, 골반도 좁은 편 같고 요실금도 심하니 제왕절개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괜히 망설였다. 그래도 자연분만이 아이에게 좋다는데... 내가 너무 빨리 포기하는 것 아닐까. 게다가 내가 다니는 병원은 산모들이 대부분 자연분만을 많이 하는 곳이라 자연분만 하기에 시설이 좋은 곳인데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연분만을 생각하면 겁나기도 했다.


임신 내내 아이에게 투덜거렸으면서 막상 이런 결정의 순간에는 모성애가 치솟았는지 제대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의사에게 분만 방법을 결정을 하고 통보를 해야 하는 날까지 생각이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병원 의자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결정일까 혼자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날 툭툭 쳤다. 남편이었다.


당시 나는 혼자 병원을 다녔다. 남편은 회사에 나가야 하고 나는 혼자 움직이는 게 편해서 임신 내내 혼자 병원을 다녔는데 그 날은 남편이 반차를 쓰고 병원에 온 것이었다. 내가 놀란 표정으로 남편을 보자 남편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결정 못할 것 같아서 내가 대신 결정해주려고 왔어." 그러고서 남편은 날 이끌고 진료실로 들어가더니 수술 날짜를 잡아버렸다.


진료실을 나오면서 나는 너무도 가뿐한 기분을 느꼈다. 실은 내 마음은 이미 제왕절개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결정해버리는 건 너무 아이에게 나쁜 엄마 아닐까 하고 망설이고 있었는데 남편이 대신 결정해준 것이 고마웠다.


그리고 2018년 9월 5일 나는 제왕절개로 예쁜 아들을 낳았다. 아들을 낳고 보니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작게 2.8kg  으로 태어났다. 나는 괜시리 내가 임신 때 잘 먹지 않고 고생을 해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임신 때 아이를 미워하고 원망한 것이 생각났고 죄책감이 몰려들었다.


아이를 낳고 삼일차부터 모유수유를 시작했는데 아주 쉽게 생각했던 이 일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웠다. 


일단 나는 모유수유 하기에 적합한 모양의 가슴이 아니었다. 그리고 안에서는 모유가 불어나는 듯 가슴이 단단하고 빨개지는데 밖으로 배출은 잘 되지 않았다. 처음이라 쳐도 모유양이 턱없이 적었고 가슴은 견딜 수 없이 화끈거리고 아팠다. 아이는 계속 내 가슴을 거부했다.


며칠을 모유 수유 때문에 눈물바람을 했다. 아이에게 꼭 모유를 먹이고 싶었다. 내가 임신 때 아이에게 좋은 태교를 해주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었고 그 당시 내가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이 모유수유 같았기에 꼭 이것을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유축을 틈날 때마다 열심히 했다. 간호사들이 갖다준 유축기를 옆에 두고 몇시간 마다 젖을 짜냈다. 유축을 하는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서 쉬익- 쉬익- 하는 유축 기계 소리를 들으면서 앉아있노라면 절로 기분이 가라앉았다.



아이를 낳고 며칠 후 새벽이었다. 알람을 맞춰놓았었다. 아이는 신생아실에 있었고 나는 알람에 일어나서 유축기를 가져와서 유축을 시작했다. 남편은 옆에 간이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혼자 유축을 시작하는데 그날 따라 모유가 턱없이 적게 나왔다. 아주 적게 똑 똑 떨어지는 모유를 보고 있자니 나 스스로 한심하기도 하고 가슴이 너무 뜨겁고 아프기도 했고 괜히 울적한 기분이 들었다. 산후에는 쉽게 기분이 가라앉는다는데 나도 그런 것 같았다.


남들 다 한다는 모유수유도 못하는 내가 아이는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생각을 하자니 한도 끝도 없이 바닥을 쳤다. 유축을 하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혼자 훌쩍거리면서 유축을 하고 있는데 내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는지 남편이 깼다.


남편이 잠시 나를 보더니 유축기와 모유를 빼앗아가버렸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남편을 보았다. 남편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그만해." 내가 어이없어서 물었다. "뭘?" 남편은 대답도 안하고 내가 유축한 모유를 가지고 신생아실로 걸어갔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모유를 전달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에요. 앞으로 모유 안먹입니다."


그리고 남편이 돌아와서 날 보면서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너 좋아하는 맥주나 마셔라."  며칠동안 고군분투 했던 일이 이렇게 끝나버렸다는게 어이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사실 끝내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유유부단하여 결정하지 못한 나 대신에 결단을 내려준 남편에게 고맙기도 했다. 


후에 돌아보건데 저 남편이 결정해준 저 두가지 일은 너무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자연분만을 하기에는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고 처음부터 제왕절개를 했기에 진통하는 과정을 안겪어도 되어서 회복이 빨랐었다. 그래서 다른 산모들보다 아이를 훨씬 빨리 돌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유수유를 그만두고 난 후 한동안은 죄책감이 들었으나 분유를 주기 시작하면서 육아가 훨씬 쉬워졌다. 밤에 수유하는 일을 남편이 대신해줄 수도 있었고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누구라도 날 대신할 수 있어서 편했다. 또한 막상 먹이고 보니 분유와 모유의 큰 차이가 느껴지지 않게 아이가 잘 자라 주었다. 얼마 지나니 모유수유를 못한 죄책감 같은건 싹 없어졌다. 


아마 남편이 아니었다면 나는 끝내 무엇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면서 고민만하며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점점 더 우울하고 슬퍼졌을 것이다. 


때로는 복잡하고 예민한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단순한 남편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종종 아이를 낳았을 때 저 기억을 떠올리며 남편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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