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천득 <인연> 을 떠올리며
나는 부모님에 대해 글을 잘 쓰지 않는데 그것은 전에 언급한 바도 있지만 부모님에게 성장과정에서 받았던 서운한 마음을 다 풀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언제나 나를 존중해주셨고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셨으나 자식으로써 '사랑' 을 받는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늘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나에겐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부모님은 남동생과 나를 대우하는 데에 별로 차이가 있지 않으셨지만 나는 부모님께서 남동생을 더 사랑한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마 지극히 나만을 아껴주시는 맹목적인 사랑이었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피천득의 <인연> 이라는 수필집을 읽었다. 그 수필에는 모두가 알다시피 피천득 작가의 막내딸 '서영이' 가 자주 등장한다. 그 책에서는 피천득 작가의 '서영' 에 대한 존경과 사랑이 절절히 담겨있는데 나는 그 글을 보면서 약간 엉뚱한 생각을 했었다. 내 아빠도 나를 이렇게 사랑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피천득 작가는 두 아들이 있음에도 막내딸인 '서영' 만을 수필에 자주 등장시키고 눈에 띄게 사랑, 어쩌면 편애를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마 내가 아빠에게 바란 감정은 남동생과 나를 동일하게 사랑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이 나만을 편애해주시길 바라는 이기적인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아이와 남편과 함께 집을 갔는데 아빠가 내 글을 잘 읽고 있다면서 운을 틔웠다. 우리 아빠와 나는 종종 문학이나 대중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럴 때 나는 아빠의 생각을 듣기 보다는 내 생각을 주로 말하는 편인데 아빠는 내 감상을 들으면서 '그렇게도 생각하는구나' 하고 존중해주시고 때로는 나의 시선에 대해 '참 멋진 고찰이다' 라고 감탄을 해주시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내심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빠가 나를 치켜올려 주는 것이 부끄러워서 하던 말을 빠르게 마치기도 한다.
그 날 아빠는 내 브런치 글을 읽었는데 문득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 을 떠올렸다면서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가족끼리 있는 자리라지만 너무나도 과분한 비유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다행이도 대화의 흐름은 내 글에서 피천득 작가의 <인연> 이라는 수필집에 대한 감상으로 넘어갔는데, 아빠는 이 책을 상당히 의미있게 읽었다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책이다' 라고 평가하셨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예전에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당시 나의 감상을 떠올렸다. 차마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너무나도 이기적인 욕심이었다. 나는 아빠의 서영이가 되고 싶었다. 아빠가 나를 생각할 때 피천득 작가가 서영이를 생각하듯이 아름답고 지적이며 세상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유일무이한 존재이길 바랐었다. 너무도 이기적인 생각인지라 나는 절대 그 말을 꺼내지 않고 내 마음에 조용히 묻어두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직도 아빠의 사랑에 갈증을 느끼는 것은, 나에겐 아빠가 그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인가 영화제를 보고 있는데 이창동 감독이 감독상을 받았다. 그 장면을 보고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가 영화감독이라면 저 상을 받았을거야." 그 때 아빠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정말 좋은 칭찬이라고 나에게 말해주었었다. 나는 정말이지 아빠가 영화감독이라면 영화대상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또 언젠가 아빠가 일하는 곳에 갔을 때 아빠가 듣고 있던 라디오와 책을 보면서 내가 말한 적이 있다. "아빠가 공부를 많이 했다면 정말 유명한 작가나 방송인이 됐을지도 몰라" 그러자 아빠는 그 때도 부끄러워하면서 "우리 딸에게 그런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다" 라고 하셨었다.
지금도 내 글을 읽는 아빠는 나에게 가장 소중한 독자이다. 아빠가 나에게 종종 말해주는 내 글에 대한 감상은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다. 아빠는 나에게 절대적이고 유일무이한 사랑이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이기적인 감정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서영이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