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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주 Jul 12. 2022

다섯살 아들의 외박

내가 미치지 못한 사랑에 감사하며...



다섯 살 난 아들이 어느날 시댁에 놀러갔다가 시간이 맞지 않아 하룻밤을 자고 오게 되었다. 시어머님 말씀이 울지도 않고 잘 잤다길래 ‘하루긴 하지만 다섯 살 밖에 안된 아이가 외박을 하다니 대단하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별달리 그 일에 생각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 일주일 지난 후 아들이 나에게 말했다. “오늘도 할아버지네 가서 잘래.” 난 예상치 않은 말에 당황했다. 마침 옆에 있던 남편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아이가 나에게 ‘할아버지네 가자’ 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음날이 토요일이고 아이는 매주 토요일날 남편과 함께 시댁을 가기 때문에 나는 그 얘기를 하면서 아이를 달래려고 했다. “어차피 내일 가서 하루종일 놀다 올 거 잖아. 오늘은 엄마랑 자자. 할아버지 피곤하셔.” 그래도 아이는 막무가내였다. 사실 아이가 쓸데없는 일을 조르는 편은 아닌 성향인지라 우리 부부 모두 당혹스러웠다.      


마침내 남편이 “어휴. 그럼 전화해서 한번 물어보자” 하고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기에 이르렀다. 시부모님께선 흔쾌히 아이를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날도 아이는 할아버지 할머니 중간에서 잠을 잤다. 

     

그렇게 시작된 외박이 그 다음주에도, 그 다음주에도 금요일마다 계속되었다. 오늘이 금요일이다 하면 아이는 으레 할아버지 네에서 자는 것으로 생각하고 시부모님께서도 우리가 아이를 시댁에 데려다 줄 여력이 안 되면, 중간에서 만나서 데려가시거나 우리 집에 데리러 오시기까지 하셨다.      


물론 아이가 금요일 밤에 시댁에 가서 자면 나는 굉장히 자유롭고 내 시간을 즐길 수 있어서 좋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축구하시는 할아버지 끝나기를 기다리던...


다섯 살 난 아이와 자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 전에 양치며 화장실 소변 같은 것도 다 챙겨야 함은 물론이고, 자는 동안에도 마구 뒹굴면서 자는 아이에게 틈틈이 이불 덮어주어야 하고 설핏 깨기라도 하면 토닥이면서 다시 재워야 한다. 아직 어린 아이라서 자다가 깨는 일도 꽤 잦다. 나도 가끔 아이랑 자는 일이 힘든데 육십 대 이신 시부모님께서는 오죽할까 싶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애가 자꾸 가서 자는데 불편하지 않으실까” 하고 조심스레 물으면 남편은 “저것도 한 때지 뭐.” 하고 만다. 사실 그렇기도 하다. 요즘엔 초등학생만 되어도 사춘기다 뭐다 조부모님과는 멀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걱정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시댁에 가는 아이 모습을 볼 때면 흐뭇한 미소가 나오기도 한다. 어렸을 때 조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아직까지 직업적으로 바쁘게 사시면서도 매주 금요일마다 우리 집 근처로 오셔서 손자를 데리고 가시는 시부모님의 사랑에도 감사한다.      


그러면서 생각하곤 한다. 내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엄마가 되었지만, 아직도 내가 미치지 못한 사랑이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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