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불같이 사랑하고 뜨겁게 연애하는 커플이 있었다. 그들은 사귄지 1년이 넘어 조금은 이른 결혼을 꿈꾸게 되었고, 서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정의 모습에 대해 생각을 나눴다. 그 과정에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완전히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는 지극히 자신이 소중하고 개인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소중해서 나를 희생하기 싫으며 그래서 아이를 갖기도 싫었다. 또한 아이를 책임진다는 것에 굉장히 큰 의미를 두고 있어서,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 있어선 회의를 넘어 두려움까지 갖고 있었다.
남자는 많이 달랐다. 다정한 어머니와 아버지를 둔 그는 자신도 그와 같은 부모가 되고 싶어했고 아이를 셋 정도 낳아 왁자지껄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했다. 결혼을 생각할 때 아이들과 신나게 놀아주는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레 상상하곤 했다.
결혼을 생각하던 두 사람이 이 문제에 있어 부딪히게 된 것은 당연했고 두 사람은 결국 이별을 택했다. 서로 원하는 것이 너무 달라 공존할 수 없다는 결론에서였다. 여자는 얼마간 굉장히 괴로워하다가 이내 그 남자를 잊었고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을 사귀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 부부의 연애 히스토리다.
그 해 봄 헤어짐을 겪고 한동안 괴로워하다 이내 다른 사람을 만나 데이트를 하고 원래 사귀던 남자친구의 존재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가고 있을 즈음 어느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했다. 마음이 쿵쿵 뛰었다. 바로 몇 달 전 헤어졌던 그 남자친구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부러 차갑게 '여긴 왜 왔느냐' 고 말했다. 그는 대뜸 나에게 '결혼하자' 라고 엉뚱한 프로포즈를 건넸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말이었다. 그것 때문에 헤어지게 됐는데 이제 헤어진 마당에 결혼을 하자니?
차에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네가 없인 안돼. 그러니까 네가 원하는 결혼을 하자.' 라고 했다. 하루 정도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했던 나는 결국 당시 사귀고 있던 사람을 정리하고 옛 남자친구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아마 헤어져 있던 중에도 내 마음은 그에게 향해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2017년 11월 우리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기 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어쨌든 남편은 내 뜻에 대부분 따라주었고 아이 문제에 있어서도 더 이상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어쨌든 남편에게 너무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젊으니 괜찮지만 나중에 나이가 든다면 나로 인해 아이 시도조차 못했던 것에 아쉬움을 가질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도 한발 양보 (?) 를 했다. 신혼 1년 동안 피임을 하지 않고 지내보고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나도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면 우린 이제 약속했던대로 영원히 딩크로 살자 고 정리했다. 솔직히 그 얘기를 하면서 1년동안 아이가 그리 쉽게 생기겠느냐는 어이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나는 생리 주기가 불규칙한 편이고 산부인과 진단도 임신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다음달 해 본 임신테스트기에서 두줄이 선명하게 나왔다. 임신이었다. 남들은 어렵다는 임신이 이토록 쉽게 되었으니 기뻐해야 하는데 나는 사실 별로 기쁘지 않았다. 내 꾀에 내가 빠졌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기뻐하는 남편이 얄밉게 느껴지기도 했다.
임신 기간 동안 고생을 많이 했다. 임신을 알게 된 후 얼마 후부터 입덧을 했다. 남들 다 하는 입덧이지만 나는 특히 유난스러워서 하루에도 몇 번씩 변기를 붙잡고 토를 했고 임신을 해서 살이 찌기는 커녕 초기에는 살이 3kg 이나 빠졌다. 매일 먹지 못해서 울상을 짓고 다녔다. 땡기는 음식이 있어서 못먹으면 굉장히 서운했는데 황당하게도 겨울에 복숭아, 자두 같은 여름 과일이 땡겨서 그걸 사달라고 남편에게 막무가내로 조르기도 했다.
임신 중기 쯤 되었을 때는 몸이 많이 안좋아지고 요실금도 심해져서 매일 남편을 붙잡고 아이가 원망스럽다며 울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증상도 견디지 못하는 내가 과연 엄마가 될 수 있겠냐며 매일같이 한탄을 했다. 남편은 그런 나의 짜증을 군소리없이 모두 받아주었다. 임신 기간 동안 남편은 딱 봐도 핼쓱해질 정도로 나 못지 않게 고생을 했었다.
그리고 결혼한 다음 해 9월. 나는 아이를 낳게 되었다.
놀랍게도 아이를 낳자마자부터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늘 신혼처럼 살아야 된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던 나였는데 남편은 뒷전이고 아이에게 온 사랑을 다 주었다. 늘 아이 생각 뿐이었고 아이를 기르는 일에만 정성을 다했고 남편에 대해서는 아이 아빠 이상으로 크게 생각지를 않았다.
생각해보면 미안한 일 투성이였다. 먼저 아이 갖지 말자고 해놓고, 임신을 하자고 그러더니, 임신을 했을 때는 매일같이 괴롭히고 신혼처럼 살자 징징거려놓고는 아이를 낳자마자 남편은 완전히 찬밥 취급인 것이다. 나의 이러한 변화에도 남편은 언제나 그저 옆에 있어주고 나를 최대한 도와줄 뿐 별다른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육아에 있어 새로운 감정들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짐스럽고 힘들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육아는 너무도 재미있었고 매일이 색달랐다. 난 의외로 아이가 커가는 면면들을 보면서 보람을 많이 느끼는 엄마였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임신 때 힘들었던 것은 새까맣게 잊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돌이 지나고 두돌이 가까워져 올 무렵 나는 이제 '할만하다' 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날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둘째 가져볼까?" 한번도 내 말에 토를 달지 않던 남편인데 그 말을 듣자마자 어이없다는 듯 웃으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환장하겠네."
남편은 그동안 쌓인 게 많은지 나에게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아이를 갖지 말자고 난리를 치더니 결혼해서 불쑥 아이 갖자고 먼저 해놓고 임신을 하고 나니 매일 별의 별 소리를 다 하고 아이를 낳기 전에는 신혼처럼 살자고 해놓고 아이 낳자 마자 남편이고 사랑이고 다 팽개치고 아이만 보고 이제는 계획에도 없던 둘째까지 갖자고 하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듣고 보니 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아이가 하나 정도 더 있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마음이었다. 그래서 남편에게 며칠간 한번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도 생각해볼테니 당신도 생각이나 해보라고 또 통보를 했다. 남편은 그 말에 한숨을 푹 쉬었다.
남편이 며칠 후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나는 우리에게 수호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물론 나도 둘째를 갖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살기에 아이 하나면 정말 안정적이고 모든 면에서 잘 맞는다고 생각해. 그럼에도 네가 둘째를 갖고 싶다면 내가 무슨 권한이 있겠니. 가져야지. 그치만 나는 수호 하나로 정말 만족하고 무엇보다 이제 네가 고생을 더 안했으면 좋겠어. 임신 때 고생 많이 했잖아."
사실 나도 하나가 적당하겠다고 생각을 정리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말을 듣고 더더욱 외동으로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아이가 다섯살인 현재까지 우리는 아이는 하나로 끝내자고 거의 못을 박은 상태다.
그 때 남편이 얼마나 진지하게 말했었는지 그 표정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더 이상 내가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에서 그 어떤 말보다 진한 사랑을 느꼈다. 그 날 '남자' 로써는 이제 감흥이 없다고 느꼈던 남편에게서 새로운 설렘을 받았던 것 같다.
애정표현은 잘 하지 않고 부끄러워하는 나지만 언젠가는 남편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에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줘서 고맙고, 비록 둘째는 갖지 못했지만 내가 둘째를 제안했을 때 날 우선으로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