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하는 브랜드 네이밍]
요즘 논문 때문에 발등에 불이 떨어져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모른 채 살았다. 원래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성격인데 하루 스무 시간을 책상 앞에 붙어 지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사실에 놀라웠다. 하루 3~4시간 자고 공부하던 고3 수험생 이후 처음이었다. 집중을 해야 하다 보니 하던 일도 멀리하고 오직 논문 쓰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런 와중에 오랜 친분이 있는 변리사님이 지인의 브랜드 개발 프로젝트를 제안해 왔다. 좋은 브랜드를 위해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내게 부탁을 했다. 처음에는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 거절을 했지만 변리사님의 요청을 끝내 거절할 수는 없었다.
새로 개발할 제품은 캠핑용 텐트와 용품 브랜드였다. 상표 등록은 주력 제품인 캠핑용 텐트 22류와 캠핑용 가구 20류를 포함해 무려 10개 류에 등록 가능한 브랜드를 개발해야 했다. 보통 3 개류 이상만 되어도 상표등록이 쉽지 않기 때문에 이번 프로젝트는 일반적이거나 웬만한 브랜드로는 결과물을 낼 수 없음을 말했다. 그만큼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나의 일은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즐거움이 있다. 오늘은 캠핑브랜드를 맡고 있지만, 어느 날은 화장품 브랜드도 만들고, 카페 브랜드도 만든다. 그러다 어느 날은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는 기계나 식품 브랜드를 만들기도 한다. 늘 다른 프로젝트의 일을 하기 때문에 제품 연구와 더불어 시장 조사를 하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도전이다. 그래서 늘 새롭고 즐겁다.
OT를 받고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2주였다. 그 안에 시장조사를 하고, 브랜드 전략을 세우며 브랜드 네임을 개발해야 했다. 내가 잘 아는 제품이라면 시장상황 분석도 쉽고 브랜드 네이밍이 비교적 쉬울 수 있었겠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새로운 분야라 우선 많은 학습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일을 시작하는 며칠 동안을 경쟁 브랜드와 시장 상황, 소비자 트렌드를 알아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시장조사를 하다 김진국 문화평론가의 ‘왜 편한 집을 두고 텐트를 고집할까?’라는 글을 접하게 되었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터라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무척 궁금했다. 원래 인간은 사냥과 채집으로 단련되었고, 우리 몸에 새겨진 사냥꾼으로서의 야성이 남아 저녁에 텐트에 모여 불을 피우고 음식을 나누는 ‘양복 입은 원시인’이라는 방증이라고 했다. 그리고 캠핑으로 텐트를 치고 요리를 하는 것을 장막을 세우는 건설자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심리적 제왕이라고 표현했으며, 자신의 요리를 만들어 내는 창조자임과 동시에, 캠핑의 그 순간만큼은 직장인 ‘을’이 아닌 ‘갑’의 지위를 누린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던 캠핑과 달리 새롭고 재미있는 접근이었다. 또 어떤 젊은 청년은 캠핑을 통해 진정한 독립과 자유를 느끼고 부모님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되찾는다고 했다. 언젠가 ‘노매드랜드‘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광활한 자연과 길 위에서 삶을 찾아 나서는 그들의 삶도 오마주 되었다.
한편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 개의 고원'이라는 책에서 '유목론(Nomadology)’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유목론은 기존의 고정된 사고와 경계를 넘어서는 사고방식으로 특정한 장소에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동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으로, 물리적 이동을 넘어 고정된 구조와 사고를 해체하고 자유롭고 창조적인 존재방식을 추구하는 철학적 개념이다. 이는 현대의 디지털 노매드나 캠핑 같은 삶의 방식에도 나타나고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유동성과 저항의 정신을 강조하며, 단순한 야외활동이 아니라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유와 가치를 탐구하는 유목적 여정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과 달리 캠핑 장비를 갖추는 일에 더 열정적인 성향임을 알았다. 나는 캠핑보다는 집을 더 좋아하고, 차라리 호텔이 낫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캠핑이 가지는 특별한 경험과 가치가 있음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함에 있어 무엇보다 제품에 대한 대표님의 확고한 철학은 브랜드 개발 방향을 보다 명확하게 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순조롭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물을 만난 듯 즐겁게 일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역시 나는 브랜드를 개발할 때 가장 즐겁고 빛나는 순간임을 다시 느꼈다. 2주 간의 시간이 이토록 즐겁기도 흔치 않은 일이었다. 최종 발표날, 무엇보다 열심히 쏟아내었던 나의 열정에 대표님은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고, 나의 기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제안했던 후보 안에서 기업명도 바꾸기로 결정했고, 제품명도 채택이 되었다. 물론 상표 검색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내가 브랜드를 개발할 때면 나는 그 제품이 되고, 회사의 대표가 되며, 때로는 소비자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프로젝트에 미친 듯이 잠겨 들어야 원하는 브랜드를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캠핑 유튜브 영상을 보며 2주간 캠퍼가 되었고, 그 대표님이 되었다. 또 소비자가 되어 그들과 함께 캠핑을 다녔다. 고객과 동일시하며 그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과정에서만이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브랜드 네임이 탄생한다.
이제 곧 태어날 새로운 브랜드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도 같다. 2주간의 여정은 내게도 새로운 가치를 깨닫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논문에 묻혀 지내던 나를 다시 세상 밖으로 끌어낸 이 프로젝트는 캠핑처럼 자유와 열정으로 가득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이 브랜드가 걸어갈 길에 큰 행운이 따르길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