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23. 2024

흑인 아이들과 돌멩이 공기놀이

 아이들과의 놀이




몇 주전 주일 예배가 끝나고 한쪽 귀퉁이에서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대부분은 시커먼 남자아이들이었다. (보통 청소년을 시커먼 남자아이라고 표현한다. 그 표현을 쓰자니 실제로 피부가 까만 아이들이라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되는 건 아닌가 싶지만, 이 아이들이 단순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는 시커먼 아이들이기에 이 표현을 쓰고 싶다.)


돌멩이를 한 움큼 모아 놓고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얼핏 보니 공기놀이를 해도 따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 놀이하는 틈을 타고 들어가서 잘 보라며 잡기 좋은 돌멩이 5개를 추려냈다. 좋은 걸로 고르려는 걸 눈치챘는지, 내가 여러 개의 돌 중에 하나씩 속아내자 옆에 있는 아이들이 잡기에 좋아 보이는 돌을 골라 주었다. 그리고 5개를 손에 모아 몇 번 떨어 바닥에 흩뿌렸다. 돌멩이 하나를 위로 던지고 그 사이 바닥의 돌을 얼른 집어 공중에서 떨어지는 돌멩이도 받아냈다. 그렇게 4개를 다 집고 마지막에 나 어렸을 적 "꺾기"라고 불렀던 5단계를 보여줬다. 왕년에 공기놀이  좀 했던 나로서는 쉽게 5개의 돌멩이를 손등에 올리고 호기롭게 꺾어 5개를 떨어뜨리지 않고 다 잡아냈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거의 묘기 수준이었는지 신기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너도 나도 질세라 공기놀이를 시작했다. 1단부터 5단까지 초 집중해서 던져내는 것을 보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무리 중의 한 남자아이가 연속으로 다섯 번을 5단계 꺾기만 한번 도 떨어뜨리지 않고 성공했다. 나를 보는 눈빛은 거의 봤지? 내가 이 정도야! 하는 신호를 보내듯 반짝거렸다.


손에 장난감 쥔 아이들을 아주 간혹 본다. 소형자동차다. 4바퀴 중 2개는 빠져버린 자동차.

대부분의 아이들은 나뭇가지나 어디서 부러진 파이프, 나무로 만든 새총, 먹다 남은 과자 봉지를 뭉쳐 만든 작은  공 정도를 가지고 다닌다. 그러니 흙, 돌멩이, 나무를 가지고 자연 친화적인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곤 몸으로 격하게 치고 밀고 때리고 당기며 놀이한다. 가끔 놀이인지, 싸우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때로는 진짜 어른같이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하고 겁이 난다.

얼마 전에는 동네 사는 한 아이 엄마가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OOO 어디 있냐며, 한 아이를 찾았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찾는 아이를 불러줬는데, 얼굴을 보자마자 그네들 말로 막 뭐라고 하면서 아이 얼굴을 삿대질하고, 목을 조르듯 아이를 못살게 굴어 목에 손톱자국이 나기도 했다. 그 광경을 보면서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그들의 말도 알아들을 수 없어 얼음이 된 채로 상황을 바라보기만 했던 답답한 일이 있었다. 사건의 내막은 따로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어른이 아이를 그렇게 대하는 모습을 주변 다른 아이들도 다 지켜봤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그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필터 없는 광경을 보고 자라겠구나 싶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들이 보고 자란 어른과 같은 모습, 같은 행동을 하는 게 이상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뭐 다를까 싶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상처 난 목에 밴드를 붙여 주고 "Sorry. Sorry. Are you okay?"를 말하며 등 몇 번 두들겨 주는 게 다였다.  


여하튼, 이 지역의 아이들은 종종 자기네와 다른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내 머릿결을 만진다던가, 얼굴이나 피부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한국어를 어떻게 말하는지 알려달라고 물어보기도 하고, 궁금한 단어를 물어보고 말해주면 따라 하기도 한다. 자기들이 추는 춤을 따라 춰보라며 선보이고, 따라 추면 웃긴다고 웃는다. 그대로 똑같이 따라 하지 못하는 모습이 우습나 보다. 그래도 그렇게 피부를 맞대고 놀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게 참 귀한 경험이라는 건 분명하다. 가끔 무표정하게 있거나, 아이들을 보고 살갑게 대하지 않으면 나에게 와서 "화났어요? 왜 기분 안 좋아요?"라고 묻는 아이도 있다. 얼른 표정을 바꾸거나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하면 그저 웃기다는 듯 웃으며 돌아서기도 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무얼 가르쳐주어야 하나 고민이 생기게끔 만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아이들, 버르장머리라고는 배워먹지도 못해 괘씸하지만, 어딘가 측은한 모습인 아이들, 누구 하나 안아주면 우르를 몰려와 자기도 안아달라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주변에 모이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 생각보다 많이 수줍고 부끄러워 새로운 경험을 꺼려하는 아이들까지. 겉모습은 다르지만 속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그저 돌멩이를 공깃돌 삼아 몇 번 놀아 주니, 그다음 주 나를 보고 꺾기 동작을 하며, 엄치를 치켜들고 자기가 해냈다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웃음이 배시시 났다.

 



 https://blog.naver.com/with3mom/223413787085

https://blog.naver.com/with3mom/223413747658


매거진의 이전글 양봉사가 선물로 준 프로폴리스 립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