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가 준 선물. 왜 나를 줬을까?
사진을 찍고 보니, 귀신같다. 처녀 귀신.
다행히도 나 스스로 아줌마 귀신같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저 놈의 머리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버티는 중인데, 정리가 시급하다. 하필 머리끈도 가지고 나가질 않아서 어쩔 수 없었던 하루, 아쉽다. 한 가지 좋았던 건 현지인이 나보고 25살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서 엄청 기분이 좋았다. (TMI) 별이는 어느새 나보다 더 커버렸다. 그리고 아주 예쁘게 잘 크고 있어서 감사하다.
아이들은 4학기 중 1학기를 끝내고 짧은 방학이 시작되었고, 벌써 일주일이 흘러가고 있다. 방학 첫날, 오랜만에 남아공 친구와 만났다. 그리고, 처음 가보는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인스타에 본 핫한 요하네스버그의 장소. <Prison Break Market>이었다.
그곳에는 베이커리류의 디저트가 많다고 해서 먹을 겸, 구경할 겸, 기분전환 할 겸 갔는데, 예상치 못한 장소가 있었다. 살짝 기대 이하이기도했지만, 어쩐지 새로운 공간은 늘 설렌다.
얼마 전 별이 생일 선물도 못 챙겨줘서 미안하다며, 별이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다던 슬린도. 몇 개월 만에 만났지만, 자주 만난 듯 익숙하고 편안하게 만남을 가졌다. 슬린도의 선물 덕에 우리는 셀프 촬영장으로 입장했다. 예쁘게 꾸며진 셀프 스튜디오를 보는 순간, 이 나라에도 아기자기 예쁜 곳, 신기한 곳이 참 많은데 진짜 몰라서 못 가는구나 생각이 또 들었다. 잊을만하면 드는 생각이다.
플리 마켓 같이 쫙 늘어선 건물 안의 상점 곳곳을 구경하다가 그토록 찾던 프로폴리스 상점을 만났다. 남아공에서 파는 플로폴리스 중에 100%가 없을 뿐 아니라 일반 약국에서도 찾을 수 없던 프로폴리스였다. 정갈한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상점 안에서 우리를 반겼다.
"이거 100%에요? 보통 애들은 100% 안 좋다고 하던데, 어떤가요?"
"양을 조절해서 먹이면 되죠. 손등에 조금 뿌려서 맛을 보세요."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목에 좋은 프로폴리스, 감기와 독감, 코로나 등 목에 이상이 있거나 면역에도 좋은 프로폴리스이기에 집에 상비용으로 가지고 있고 싶었다. 온 가족이 이비인후과 쪽으로는 약한지라 가격이 조금 나가고 살 생각이었다. 목에 떨어 뜨리는 드롭뿐 아니라, 스킨케어용, 입술에 바르는 밤도 있었다. 상품 구경을 하기보다 어르신과 이야기를 하면서 어떤 물건을 살지 고민하고 있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명함도 받고, 프로폴리스 100% 드롭도 구매했다. 마지막에 인사하고 돌아오려는데 어르신이 나를 불렀다.
"선물이에요"
내 손바닥에 립밤을 올려주면서 가져가라고 했다. 약 1만 원 정도 되는 립밤, 살까 말까 고민했지만 일부러 눈길은 주지 않고 대화에 집중했는데, 내 마음이라도 안 것처럼 립밤을 내줘서 어리둥절했다. 받아도 되는 건지 고민하면서 어르신의 눈을 들여다봤다. 감사한 마음에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는데 자꾸 미소가 지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내게 베푼 호의, 그 이상이었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내 입술이 신경 쓰였나 봐. 말라버린 입술이 자꾸 거슬렸나......."
남편에게 이렇게 말은 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닐 것도 같았다. 여태 프로폴리스를 찾아 다니가 오아시스 만난 것처럼 이제야 찾았다며 호들갑 떠는 우리 부부를 보며 동양인에 대한 측은함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입구에서 잔뜩 술에 취한 백인 여자가 우리 보고 "니하오마!" 라며 깔깔거리고, "암 낫 차이니즈!"라는 말에 그럼 어디서 왔냐며 물었었다. "사우스 코리아"라고 했더니, 자기들 언어인 아프리칸스로 옆에 있는 남자를 주먹으로 툭툭 치면서 "거봐. 내가 맞았잖아. 쟤네 중국 사람이야. 캬캬캬캬" 거리는 여자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안타깝게도 별이가 아프리칸스를 제법 하기에 다 알아들었다. 그렇다고 한들 가서 따지고 싶지도 화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왜인지 그 사람이 측은해 보였다.
마치 내가 그 순간 Prison Break Market의 이름처럼 탈옥하고 싶은 마음에 불끈하지 않고 잘 참아서 받는 선물 같았다고나 할까? 약간의 억지스러운 해석이지만, 때때로 외국에서 살면서 호의를 베푸는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잠시 틈을 내서 근교에 나가 보낸 시간이 따뜻했다. 이제 점점 날이 추워진다. 아침저녁으로 벌써 몸이 움츠러들고 이불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날이 추워져도, 서로 나누는 마음의 온기가 따뜻한 계절이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