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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Feb 11. 2024

남아프리카 길에서 만난 천사

호의를 호의로 받을 줄 아는 용기


부웅! 쿵.

아뿔싸. 방지턱 표지판을 못 봤다. 달리던 속도 그대로 방지턱을 넘었고, 범퍼 아랫부분은 바닥을 그대로 찍었다.


"어! 또 떨어졌겠다! 엄마! 운전 실력이 좀 떨어졌어요?"


지금 차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요엘이 얼른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운전 실력까지 탓할 건 뭐람.

며칠 전 남편과 막내 요엘이 은별, 다엘 수영 끝나고 패치 갔을 때도 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이미 돌아왔어야 하는 시간에 남편은 오지 않았다. 예상 시간보다 한참 지나 집에 도착한 남편은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집에 와 미주알고주알 말하기 시작했다. 한 여름 땡볕아래, 바닥에 누워 자동차 정비공 코스프레를 하며 힘겹게 임시 처치 후 카센터에 다녀왔다고 했다. 교체해야 할 부품을 임시로 때워 둔 거다. 워낙 낮은 차체 탓에 방지턱에서 속도를 조금 줄이지 못하거나, 경사진 언덕에서 평지로 내려올 때마다 아랫부분이 늘 닿을까 조심스러운 차다.


자동차 아래 자체 부품 중 철판이 떨어져 나와 액셀을 밟으니 땅을 긁는 깡통소리가 났다. 경사로에서의 방지턱이라 마저 올라가야 하는지, 뒤로 후진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일단 비상등을 켜고 뒤에 오던 차에게 지나가라 손짓했다. 그리고 후진해서 평지까지 내려온 뒤 한쪽 모퉁이에 차를 세웠다.

한글학교 끝나고 바로 아이들만 태우고 지인 집에 초대받아 가는 길이었기는 데 참 난감했다. 초행길 네비 켜고 열심히 달리던 중이었다. 목적지를 2분 앞두고 잘 왔다 스스로 칭찬하며 속력을 내고 있었던 터였다. 지금 당장 어디로 가야 하는지 뭐 부터해야 하는지 망설이던 중에 남편에게 전화부터 걸었다.


"어떻게 해! 아 또 떨어진 것 같은데, 나 지금 어떻게 해야 되지?"

"내가 어떻게 가. 누가 날 데리러 와야 되는데, 지금 누가 가능하지?"


차가 한대뿐이고,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도 없다. 차 끌고 나오면 집에 남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외부일을 볼 수 없다. 혼자 통밥을 굴리며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대각선 방면에서 흑인 성인 남자 한 명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차 아래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문제가 있다고 말해줬다. 나는 창문을 열고,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있다고 말했고,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저거 와이어 다 잘라서 트렁크에 싣고 일단 집으로 가서 정비소로 가면 돼요."

"그렇게 하면 운전하는데 아무 문제없나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일단 그거부터 잘라요. 잭 있어요?"


잭은 자동차를 들어 올리는 간이 리프트를 말한다. 차에 그게 있는지도 모르는 나는 무조건 없다고 했다. 임시 방책을 알려주는 흑인 아저씨한테 혹시 모를 위험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러자 흑인 아저씨는 자기가 집에 가서 잭과 커터를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순간 감사한 마음도 들었지만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도와주면 얼마를 줘야 하는지도 생각 중이었다.


"오! 엄마 하나님이 사람 보내주셨나 봐요."


차에 이상이 생기자마자 간절하게 기도했는지 별이 내게 말했다. 3년 전에 한국에서 친정 부모님이 오셨을 때도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타이터가 퍼져 위험천만했던 상황이 있었다. 그때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타이어가 터지자마자 지나가던 백인 아저씨가 차를 세우고 직접 타어어 탈착의 모든 과정을 손수 다 도와줬던 적이 있다. 그때가 떠올랐다. 그렇게 짧은 순간,  잠깐의 추억을 되새기는 사이 흑인 아저씨는 잭을 가지고 왔고,  차를 들어 올릴 테니 나보고 얼른 차 아래로 밀어 넣으라고 했다. 그러나 잭의 높이와 차체의 높이가 미세하게 맞지 않았고, 더 위로 들어 올려야 했다. 혼자서는 차를 들어 올리기 역부족이었다. 가서 사람을 한 명 더 데리고 오겠다고 했다. 그때, 지나가던 백인 3인 가족이 차를 세웠다. 중년 여성이 무슨 문제가 있냐며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내게 물었다.


"타이어 이상인가요? 도와줄까요?"

"어... 타이어 이상은 아니고요. 차 아래 뭔가가 떨어져 나왔는데 움직일 수가 없어요. 저기 남자분이 도와준다고 했는데, 지금 사람을 부르러 갔어요.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흑인 아저씨가 도와준다고 했으니, 나는 도움 받으면서도 어리바리하게 넋이 반쯤 나가있었다. 길에서 그것도 남편도 없이 나 혼자 아이들을 태우고 낯선 길을 가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만난 상황이라니, 어이없는 실소만 나왔다. 그럼에도 이렇게 도움의 손길이 찾아와서 참 감사했다. 세상이 삭막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물어만 봐줘도 고마운 마음인데, 백인 부부는 기어이 차를 후진해서 우리 차 옆에 댔고,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차에서 내렸다. 백인 아저씨는 흑인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니 직접 소매 걷고 나섰다. 작업복도 아니고 젠틀해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가 셔츠에 면 반바지를 멋지게 차려입은 채 한낮기온 35도를 육박하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무릎을 꿇고, 등을 대고 누웠다니! 자기 일도 아닌 일에 이렇게 까지 적극적으로 나서 주니 고맙지만, 내 마음이 가시밭이었다. 누군가의 호의를 호의 그대로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될 것을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슬리퍼 밖으로 나온 발가락이 타버릴 것 같은 날씨였기에 더욱 그랬다. 아마도 흑인에게 바가지를 씌거나 외국 여자가 아이를 셋이나 데리고 길에서 우왕좌왕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던 모양이다. 백인 아저씨는 직접 장비로 차를 만지면서 흑인 남성에게 물었다.



"얼마 받을 거예요?"

"아무것도요!"


흑인 아저씨가 대답했다. 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일하던 흑인이 그 상태 그대로 내게 와서 도움을 주고 있으니, 백인 아저씨는 내가 부른 사람인가 보다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대가 없이 도와주는 흑인 아저씨에게도, 백인 아저씨에게도 감사할 뿐이었다. 약간의 긴장은 됐지만, 무서움보다는 고마운 마음이 더 컸다. 그때, 저 건너편에 작은 승용차 한 대가 차를 세우더니 비상등을 켰다. 젊은 백인 여성이 내리더니 내 쪽으로 다가왔고, 상황을 둘러보더니, 다시 돌아가 트렁크에서 작은 장비 가방을 챙겨서 걸어왔다.


"뭐 도와드릴까요?"

"이미, 다 하고 있어요. 괜찮아요. 고마워요!"


내가 할 말을 먼저 와서 같이 있던 백인 아주머니가 대신 이야기 해줬다. 그렇게 유유히 그 젊은 백인 여성은 가던 길을 재촉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외국인의 난처한 상황에 발 벗고 나서주는 사람이 있어서 따뜻했다고 말이다.

 

'아, 나 이렇게 신세를 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에는 온통 나 어떻게 이 신세를 갚지 생각에 계속해서 속으로 "I owe it to you. How can I pay this debt."이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급기야 입 밖으로 꺼냈다. 아저씨는 떼어낸 부품 두 개를 나에게 주며 트렁크에 넣으라고 했다. 내 말에 백인 아저씨는 손사래 치며 뭘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머지 장비를 정리하는 사이, 나는 아내 분에게 가서 말했다.


"오늘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신세를 졌네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지요? 혹시 괜찮으시면, 제게 전화번호 하나 주시겠어요? 제가 언제 커피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습니다."  


아내 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왜 안 되겠어요. 좋지요.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중국은 아닌 것 같고 아시안 같긴 한데... "

"한국이요."

"오 우리 딸이 그렇게 말했는데, 중국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일본도 아닌 것 같은데, 아마도 한국 사람 같다고요." 그리고 번호 이름에 "브루스 카"라고 저장하라고 했다. 아저씨 이름이 브루스라며 브루스 윌리스를 기억하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그렇게 도움을 받고 인사를 하고 헤어졌고, 흑인 아저씨에게도 "도와줘서 정말 감사해요!"라고 인사했다. 나머지 본인 장비를 정리한 채 다시 본인 일을 하러 갔다. 보통 흑인들이 도움을 주면 큰돈이 아니어도 아주 작은 수고비 정도를 챙겨준다. 그들도 당연히 도움을 주면 얼마 정도를 팁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료로 도와주는 사람은 잘 없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그래야겠다고 생각하고 가방에서 얼마를 빼놓았었다. 백인 아저씨 가족에게 감사 인사 후, 흑인 아저씨에게는 인사만 해야 하는지, 돈을 줘야하지는지, 주는 게 예의인지 아닌지 고민을 하다가 그냥 와버렸다. 백인 아저씨가 직접적으로 다 일을 해결했지만, 흑인 아저씨가 먼저 와서 도와줬고, 장비도 빌려줬는데 나는 백인 아저씨에게만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생각하고 보니 흑인 아저씨에게 커피 값이라도 줄걸 그랬다는 생각에 못 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 사람이 어디 사는지 나는 집을 안다. 낯선 동네이고, 혼자 운전하고 간 건 처음이지만, 멀지 않은 곳이라 어디쯤인지 기억할 수 있다. 지금 마음 같아서는 다음 주에 뭐라도 사다 주고 고맙다고 인사해야 되나 싶은 마음이다.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 당황스러운 순간에 도움의 손길이 있어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일면식도 모르는 사람들이 난처한 상황에 놓인 외국인을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일이 당연한 것도 아닌 걸 안다. 나도 누군가 어려움에 처해 있으면 도와주려고 한다. 물론 상황과 환경을 봐가면서 하기도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하지만 뙤약볕 아래 아스팔트에 몸을 누이고, 가던 길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는데, 누군가를 위해서 '잠시 멈춤'할 수 있다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오늘 일을 겪고 글을 쓰며 세 가지를 생각했다.


한 가지는  지난번에 이미 한 차례 일이 일어났을 때, 임시방편이 아니라 제대로 정비했다면 오늘 같은 일이 없을 거란 생각이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임시방편으로 해결하더라도 뒤탈이 없도록 해결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물론 내 일이 아니고 남편일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안전과 직결된 일에 대해서는 돈을 아낄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서둘러야 한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혹여서 뚫린 차체 부분에 문제가 생길까 세게 밟을 수 없었다. 뒤에서 바짝 붙어 따라오는 차 탓에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했지만 최대 안전운행을 하며 집으로 왔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상대의 호의는 호의로 감사히 받고, 감사 인사는 충분히 하면 된다는 것이다. 나는 나 때문에 불편한 상황 혹은 겪지 않아도 될 상황에 처하도록 두는 걸 못 견딘다. 마음이 불편해서이다. 내가 요청하지 않았지만, 나의 상황을 보고 호의로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을 더 깊이 가지면 된다. 그리고 표현하면 된다. 나는 다음 주에 연락해서 두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한다. 그냥 지나칠 수 도 있고, 그런 도움 받는 게 아주 예외적인 일만도 아니니 그저 서로 돕고 사는 세상 따뜻함 마음만으로 지나칠 수도 있다. 일단, 나는 이런 스치는 만남도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만남을 갖는 것에 대한 설렘도 있기에 일단 따로  연락해보려 한다.


마지막으로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날 때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같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그런 상황에서 차를 끌고 지인 집까지 갈 수도 있었다. 그 지점부터 2분 거리였으니 못 갈길은 아니었다. 언덕이라 조금 조심스럽긴 했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목을 집중시키고,  어쩌면 부품에 추가 손해를 입혔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멈췄고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떻게든 도움을 요청해서라도 그 상황을 정리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천사들이 나타나 도와줘서 위기 모면에 도움이 되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났을 때는 늘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하나의 사건이 생기면 생각한다.

앗싸! 글감.

그리고 아이들도 남편도 내게 말한다.

"오늘 이걸로 글 쓰겠네?"

일상의 모든 일은 모두 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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