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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로다짓기 최주선 Apr 23. 2024

결혼 15년 만에 침묵 신기록 세우기

결국 칼로 물 베기




싸웠다. 아니, 싸운 것도 아니다. 그냥 바로 침묵에 돌입했다. 남편의 태도에 화가 났다. 웬만해서는 혼자 나가서 걷거나 돌아다는 일이 없다. 남아공 7년 살면서 단 한 번도 혼자 밖에 나가서 걸어 다닌 적이 없다. 아! 한 번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들 픽업을 위해서 바깥에서 일 보다가 약 30분을 걸어서 집에 갔던 일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자처해서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1시간을 걸었다. 남편 없이. 사실 너무 좋았다. 그냥 이 길 저 길 한 번도 안 들어가 본 길을 들어갔다가 나왔고, 남의 동네를 구경하면서 멀리 다녀왔다. 남아공의 낮이 무척 위험해서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알고 있었던 5,6년 전의 생각은 바뀌었다. 몇 번 다녀보니 낮에는 이 동네는 돌아다는 게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여전히 위험하니 가능하면 걸어 다니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위험하지 않다기보다는 그냥 위험한 상황만 안 만나면 괜찮다. 산책하는 사람도 더러 있고, 낮에 귀중 품 없이 트레이닝 차림으로 걷고 뛰면 누가 건드리는 사람이 없다.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지역에 비하면 이 동네 주택가 사이로는 산책 정도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걷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지역에 살지 않는 게 감사할 따름이다.


좀 떨어져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둘 다 바깥으로 출근을 하는 게 아니니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대부분 같이 움직인다. 그러니 하루 24시간 붙어 있는 셈이다. 그래도 공간을 분리해서 나는 방, 남편은 거실에 책상을 두고 서로 각자의 공간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곤 한다. 함께 오랜 시간 있으면 생기는 문제는 같이 하는 게 많기도 하고, 혼자 잘 다니지도 않으니 싸우기라도 했는데 같이 일을 봐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무척 불편하다. 잘 안 싸우기도 하고, 가능하면 싸울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지만 종종 감정이 상하는 건 도리가 없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곤 한다. 그리고 얼른 푼다.


이번에는 달랐다. 보통 싸워도 하루 넘기는 게 최장기간이었는데, 4일이나 지속됐다. 남편을 만나고, 결혼한 후 1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밝힐 수는 없지만, 사소했다. 그리고 유치했다. 나흘동안 한 집에서 지내면서 서로 스치듯 왔다 갔다 단 한마디 말을 안 하면서도 온 신경을 남편에게 가있었다. 어쩌면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먼저 풀어 주고 싶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난 건 난데, 자꾸 신경이 쓰였다. 이렇게 좀처럼 불편한 상황과 마음을 못 견디는 건 늘 나다. 그래서 늘 먼저 장난으로 다가가 퉁명스러운 듯 풀어주곤 하는데,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킹 사이즈도 아닌 퀸 사이즈 침대에서 서로 털끝 하나 안 건드리고 잘 수 있다는 사실은 결혼한 후 몇 번의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번 나흘의 시간 동안은 참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각방을 쓰는 게 아닌데도 나흘의 침묵이 가능하고, 아무런 터치가 없이도 살아지는구나 싶었다. 이렇게들 지내다가 마음이 더 식고 서로가 꼴 보기 싫으면 이혼까지 생각하겠구나 생각도 들었다. 나는 방, 남편은 거실이었고, 잠잘 때만 침대에서 잤으니 거의 각방이 맞기는 하다.

그렇게 나흘이 흘렀다. 차가 한 대 밖에 없고, 대중교통도 없어서  결국 한 차에 타고 이동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단 한 마디도 안 했다. 말하고 싶지도 대꾸하고 싶지도 않았으니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지만, 불편한 마음은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나흘간, 책상에 앉아 있을 때 방문을 열고 들어오면 발소리, 문 닫는 소리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였다. 잠시 스칠 때마다 서로 옷깃이나 닿을까 몸을 살짝 뒤로 젖히듯 지나가든지 혹은 쏜살같이 지나다녔다. 서로 똑같았다. 바람이 어디서 부는 것도 아닌데 찬기운이 느껴졌다. 사람의 감정이란 참 신기하기만 하다. 나만 화가 난 게 아니었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쌩쌩거리며 온 집안을 얼음장을 만들었지만 나흘의 시간 동안 삼 남매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 아빠와 한 식탁에서 밥을 먹을 때도, 아이들이 모여서 재잘거릴 때도 평소와 같지 않았음에도 크게 티 나지 않았나 보다. 모른 척한 게 아니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만하면 성공인가 싶었다. 아이들에게 적어도 "지금 엄마 아빠가 싸웠거든! 사이가 안 좋거든! 그러니까 너네가 알아서 좀 해!"라는 사인은 주고 싶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어머! 자기야. 별이 도시락통 놓고 갔어!"

아침에 별이가 도시락 통을 놓고 가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너무 놀라서 말을 해놓고도 아뿔싸 싶었다.

'아놔... 나 먼저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무슨 똥고집인지, 어제까지 아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절대 먼저 말 안 할 거라고 다짐을 했었다.

"내가! 최장기록 5일? 아니 7일을 채워보마! 어디 먼저 말 걸고 안 배기나 보자." 라며 말이다.

 

그리고 도시락 통을 가져다주러 같이 갔고, 학교 오피스에서 도시락 통은 안 받아 주겠다며 매점에 돈을 넣고 아이 보고 사 먹으라고 하라며 일러줬다. 원래 도시락은 안 받는 걸 알지만 혹시나 해서 간거였다. 웬만해선 준비물을 안 빠뜨려야 하는 게 맞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남편과 대화를 해야만 했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나흘 차였던 오늘, 바깥일을 같이 봐야 했다. 쇼핑몰에 내려 걸어가는 남편 뒷모습을 보니 측은해 보였다.

"에휴, 뭣이 중한데."


나는 먼저 남편 손을 잡았다. 내가 손을 잡자 남편이 손을 더 꽉 잡아줬다.

그리고 나는 한 마디 던졌다.


"그래서, 나랑 말 안 하고 지내니까 좋아? 어디 내가 7일 채워볼까?"


남편은 고개를 돌리며 크크 거리며 배시시 웃었고, 그냥 우리의 나흘의 침묵기록은 유야무야 정리가 되었다. 그리곤 나흘 전의 사건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일을 보고, 차를 마시고, 장을보고 해결해야 할 일을 처리했다.

그렇지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구나.


그냥 자존심이었다. 고집이었다.

어느 한쪽이 굽히지 않고는 절대 좁혀질 수 없는 게 팽팽한 실이다. 사람 관계가 그렇단 생각이 많이 든다. 누가 되었든 관계는 팽팽하면 절대 좁혀질 수가 없는 법이다. 오늘도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한 가지를 깨닫는다.


그래서 그게 뭐가 그렇게 중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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