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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된 내 시계가 아들 시계가 되다

내 것이 남의 것이 될 때

by 글로다짓기 최주선


남아공의 8년의 시간을 정리 중이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기록의 흔적, 추억을 보며 깔깔거리다 아련했다가를 반복한다. 서랍 안쪽에서 꽁꽁 싸매둔 박스 하나를 꺼냈다. 열어 보지도 않을 거면서, 착용하지도 않을 거면서 왜 가지고 다녔나 싶을 정도로 묻은 때만 눈에 보인다. 시계줄은 오래돼서 껍질이 바스러지고 만지작 거리다 시계 줄 고정 끈이 끊어져 버렸다.

"이거 버릴까? 다엘이 하려나? 이런 스타일 이제 좀 좋아할 거 같은데?"

남편에게 다엘이 줄까를 물어보면서도 그래도 스와치인데 약간의 흠집이 있지만 다엘이가 좋아할 것 같았다.


시계 줄을 갈고, 배터리를 갈아 끼운다고 매장을 찾았다. 남아공 살면서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는 스와치 매장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목적 있는 발걸음이었기에 저벅저벅 들어갔다. 가격이 얼마가 되어도 바꿔주겠다고 다짐하고 들어갔는데 줄하나에 380 란드, 한화로 약 35000원 정도 된다는 말에 흠칫 주춤거렸다. 시계 배터리만 해도 100 란드, 한화 약 8000원 정도였다. 어차피 바꿀 거 빨리 주고 싶은 마음에 바꿔달라고 했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새것처럼 단장되었다.


시계줄을 바꾸고 다시 시계가 움직이는 걸 보면서 얼른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시계 줄을 갈기 전에 찍어둔 오래된 시계 사진을 보면서 저 시계는 몇 년도 몇 월 6일, 5시 26분에 멈춰있을까 알 수가 없다며 중얼거렸다. 기계를 산 지 적어도 20년은 됐는데, 몇 년을 착용하고 넣어 뒀는지 기억도 안 난다.

2025년 6월 10일 낮 12시 10분에 다시 시계가 돌아간다.


"오! 다시 살아났어. 이제 내 추억에 다엘이가 다시 새로운 추억을 입히겠네?"


은근 기분 좋았다. 내가 쓰던 물건을 아이에게 줄 수 있다니, 의미 있다. 한국에서 남아공 올 때 가져온 지도 모르고 있던 오래된 내 시계가 다엘이 손목에 있다는 사실이 뭔가 내 추억이 다시 살이 꿈틀거리는 느낌이랄까!


이번에 떠나는 참에 짐 정리를 몽땅 했다. 짐 정리를 하기 전에도 조금씩 시즌이 바뀌고 아이들은 자라 작아진 옷가지가 나올 때마다 조금씩 짐을 정리해 왔다. 그럼 옷, 가방, 신발 등 모두 흑인 빈민가에 있는 교회로 가져갔다. 쫙 펼쳐두고 바자회도 하고, 그냥 무료로 주기도 했다. 바자회로 사봐야 한화로 100원, 500원 정도 주고 사가는데 후줄근한 것도 있지만, 멀쩡한 물건도 많았다. 이고 지고 사는 게 뭐 좋다고 못 버리고 웅크리나 싶어 과감하게 내놓은 물건도 있었다. 매 주일 교회에 가면 내가 내놓은 신발이며 옷가지들을 입고 온 사람들을 본다. 우리 아이들이 입었던 옷을 입고 온 아이들도 있다. 눈에 익은 물건들이 다른 분위기가 되어 보일 때면 기분이 묘하다.

나는 목에만 두르던 스카프는 제 주인을 찾았나 보다. 머리에 두건을 많이 쓰는 아프리칸들에게는 스카프가 멋진 두건이 되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작았던 옷은 다른 아이가 딱 맞게 입었다. 내가 더 이상 신지 않던 신발은 다 떨어진 신발을 신고 다니던 누군가의 새 신발이 되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우리 아이들이 그 옷을 입고 돌아다녔을 때의 잔상과 추억이 머리를 스쳐간다. 내가 쓰던 물건의 흔적이 아련하게 지나간다. 뭔가 모르게 가슴이 이상하다.


물건은 생명은 없지만 수명은 있다. 또, 물건에는 추억이 있다. 이번에 꽤 많은 추억은 흩뿌렸다. 내가 살 때는 금값에 샀던 물건들은 헐값에 팔렸고, 덤으로 딸려갔다. 아쉬움 가득한 마음도 있지만, 길에 놔뒹굴지 않고 필요한 곳에 가서 잘 쓰인다면 아깝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덜렁 가방 여섯일곱 개만 남기고 모든 짐이 다 나간다. 아프리카의 삶에서 남는 게 달랑 가방뿐이 아니라서 감사하다. 잠시 시간이 나 앉아서 이렇게 생각을 쓸 수 있는 것도 역시 감사다. 내 것이 남의 것이 될 수 있음에도 감사하다. 나의 아프리카에서의 모든 삶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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