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바오 적응기
*제목에 첨부한 사진이 너무 징그러워 조금 가렸습니다.
어렸을 때 스테인리스 쓰레받기로 쥐를 내려치면서 잡는 장면을 봤던 경험이 있다.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 쓰레받기로 내리쳤을 때 피가 사방으로 튀면 병균이 옮는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무서운 것보다 더러운 게 더 싫었다. 쥐야 워낙 동네에 많았어도 어디선가 나타나 빠르게 지나가면 간담이 서늘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시절, 서클실에 쥐가 출현했던 때가 있었다. 쥐덫 찍찍이를 놓긴 했는데, 선 후배 동기들 모두를 통틀어 끈끈이에 들러붙은 쥐를 쓰레기통에 넣는 것조차도 서로 등 떠밀기도 했었다. 무슨 용기인지 선뜻 내가 나서서 덫에 잡힌 쥐를 꺼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심지어 그걸 들고 친구들에게 훠이 훠이 돌려 보여주면서 겁을 주며 장난친 뒤 쓰레기통에 넣었다. 나는 그랬다. 남이 하기 힘든 것, 싫어하는 것도 고민은 좀 됐지만 기꺼이 했던 때가 더러 있었다.
다바오 시내 중에서 그래도 안전한 빌리지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번번이 집이 취소되고, 적당한 집이 없어 포기하고 있을 무렵, 맘씨 좋은 집주인을 만났다. 우리가 책정한 월세로는 들어올 수 없는 빌리지인데 집주인이 수리를 하던 데까지만 둘 테니 월세를 깎아 주겠다고 했다. 월세의 경우 집주인을 직접 만날 기회가 적다고 들었고 중개인이 붙는다. 이 집주인이 꽤나 부자에 유명한 사람이고, 절대 직접 거래 안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집주인과 다이렉트로 계약을 했다는 사실이 주변에 이슈가 되었다. 사람이 한 동안 안 살았던지라 손댈 곳이 더러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우리는 은혜라고 밖에는 말이 안 된다. 이제 밤 잠은 불안하지 않게, 무서워하지 않고 잘 수 있겠구나! 생각에 안심이 됐다. 심리안정이 얼마나 삶의 질에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한 확실한 경험을 하는 시간이었다.
무튼 남아공에서 나올 때도 덜렁 가방 10개, 한국에서 다바오로 올 때도 가방 9개만 들고 온 터라 우리는 가전, 가구라고는 한국 전기밥솥뿐이었다. 그렇게 집에 들어와서 신혼살림을 다시 차리는 기분이지만, 뭔가 굉장히 어렵고 힘든 마음으로 하나씩 채우기 시작했다. 정착금만 거의 삼사천 만원 들어간 것 같다. 가진 돈은 그동안 코칭하면서 벌어 둔 돈과 후원금 등으로 채워서 물 쓰듯 손가락 사이로 새나가버렸다. 가진 돈 이외에도 근근이 채워져 나가고 있다. 여기서 살 수 있는 거 맞아?를 서로 재치 물어보고 확인하는 중이다.
아직도 뭔가 채워 넣으려면 멀었지만, 주변의 도움 및 새롭게 장만한 물건들로 잘 수 있는 침대와 이불, 밥 해 먹을 수 있는 도구, 샤워할 수 있는 도구 등 기본 살림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녹음을 할 때면 집안이 텅텅 비어 울리는 소리가 그대로 녹음된 탓에 회원들이 종종 "코치님 어디세요?"라고 물어오기도 한다.
고요하고 평안하게 안정적으로 정착해 나가나 싶은 어느 날 밤 마치 또 도둑이 들었나 싶을 정도로 요란하게 소리가 났다. 쥐들의 반란이다. 천장에서 댄스파티가 벌어졌다. 집주인은 분명 이 집에 쥐가 없다고 했는데, 한 마리가 아니다. 적어도 열 마리는 되는 것 같은 소리였다. 천장이 그리 단단하지 않은 것 같은데 저러다 무너지면 쥐가 와르르 떨어져 내려오는 게 아닌가 싶은 상상까지 했다. 보통 고양이를 키우면 쥐가 없다는데, 우리는 둘째 다엘이가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키울 수 없다. 어쩌면 필리핀 땅에 고양이가 많은 이유가 대체 뭔가 싶었는데, 쥐 때문이란 합리적 납득을 했다.
남편은 유튜브에서 쥐를 쫓는 고양이 소리와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고주파 소리를 틀어 두고 소리가 들릴 때마다 쥐를 쫓았다. 그 소리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소리를 틀면 좀 조용했다가 다시 나타나곤 했다. 추측해 본 결과, 아마도 사람이 살지 않는 옆집에 출몰하는 쥐가 우리 집으로 넘어온 나뭇가지를 타고 넘어오는 것 같았다. 심지어 창 밖으로 옆집 나뭇가지에 쥐가 컬터 앉아있는 것을 보았으니 심증이 물증이 되는 순간이었다.
고민하다가 아나이(anay: 필리핀에서 쓰는 말로, 흰개미) 방역 업체에게 연락했다.
"쥐도 잡아주나요?"
"그럼요. 내일 아침 10:30분에 갈게요."
그 말 한마디에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이제 쥐들 너희는 다 죽었다 싶어 학수고대했다. 방역 직원이 집을 왔고, 둘러보더니 쥐똥 흔적을 발견했다며 끈끈이를 놔주겠다고 했다. 흔한 끈끈이 아니고, 성능 좋은 끈끈이라며 비눗물이랑 노란 끈끈이를 손으로 같이 판에 펴 발라 천장 빈 공간 곳곳에 두었다. 그 끈끈이는 쥐를 부르는 냄새라고 했다. 직원이 목요일에 와서 덫을 놓고 토요일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목요일 밤, 금요일 밤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목요일 밤, 천장에서 여전히 소리가 들렸다. 너네 이제 잡혔구나 싶었는데 살짝 사부작 거리더니 더는 소리가 없었다. 잡힌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금요일 밤, 내 생전 쥐가 잡히면 어떤 소리를 내는지 적나라하게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처음에 내던 소리가 점점 사라지면서 죽어가고 있구나 하는 소리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척 피곤했던 탓에 밤새 천장에서 낑낑거리며 덫에서 벗어나고자 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신음 소리만 들렸다.
집에 찾아온 직원은 지붕 사이 공간으로 올라가서 쥐가 잡힌 판을 양손에 들고 내려왔다. 얼핏 보아 다섯 마리 정도 되는 시체가 온몸에 끈끈이로 샤워한 채 누워있었다. 똑바로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했지만 얼른 휴대폰을 꺼내 고개를 돌린 채 사진을 찍고 다시 열어보진 않았다. 남편이 줌미팅을 하는 중이라 사진으로 보여줘야 했다. 게다가 직원이 Massanger로 판에 누운 쥐들의 사진과 영상까지 보내왔고, 그제야 찬찬히 크기가 얼마나 큰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징그럽지만 크기는 늘 궁금했다. '고양이 만한 쥐'라는 말을 들었던 터라 진짜 그렇게 큰 쥐가 우리 집에 있는지 믿고 싶지 않았다. 직원은 쥐들이 더 올 거라고, 더 있을 거라고 더 잡히면 3일 뒤에 오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남아공에서도 몸이 무거워 뛰기 조차 힘든 쥐도 봤고, 사역지에서 숨바꼭질까지 했던 작은 쥐들도 많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쥐가 쑥대밭을 만들었던 살다 살다 처음이다. 원하지 않은 동거에 돈도 안 내고 똥과 소음으로 집을 어지럽혀 놓는 세입자는 반갑지 않다. 나는 집을 깨끗이 쓰는 세입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평온한 삶을 살기 위해서 치러야 할 과정이 많다는 사실에 그 간의 평안한 했던 삶에 감사가 절로 나온다.
오늘 밤도 기대가 된다. 무슨 소리가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