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행시 Sep 13. 2023

마스크 걸 - 나나

토요일 밤에

 사십 중반쯤 되었을 때 친구의 유일한 취미가 '주말에 드라마 몰아보기'라는 말을 들었다. 그 비슷한 시기에 다른 모임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들었는데 남성들도 꽤 많았다. 대부분 드라마는 중년이상의 여성분들이나 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상황 변화가 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까지도 철이 없던 나는 그런 류의 취미를 발설하는 사람들을 의심했다. 그렇게나 주말에 할 일이 없을까? 동네 뒷산이라도 가고 영화관에라도 가면 얼마나 좋은데 구석에 틀어박혀 TV나 보고 있다니... 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한심하게만 생각했던 '드라마 몰아보기'가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도 도착했다.  동료들과 이런저런 생활 이야기를 하면서 자주 드라마 얘기가 나왔다. 일상의 대화도 사회생활을 구성하는 요소인 만큼 유행하는 드라마 정도는 알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이런 변화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잘 짜인 드라마 한 편이 눈과 귀를 호강시키는 최고의 타임킬러(Time Killer) 임을 인정했다.


 토요일, 아침을 먹고 나면 커다란 머그잔에 커피를 가득 담아 소파에 몸을 던졌다. 복잡한 생각 없이 그저 눈으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법. 그러니 내가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서 남을 비난하기는 얼마나 어쭙잖고 비루한 일인지.  연신 채널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눌러대며 예전의 오만했던 나를 화면 밖으로 내던졌다. 물론 개중에는 남들은 핫하다고 해도 내게는 좀 아니다 싶은 것도 많았다.   


 이번에 몰아본 것은 '마스크걸'이었다. 고현정, 나나, 이한별이라는 세 사람을 같은 배역으로 설정하는 특이한 구조의 7부작 시리즈였다. 초반부인 1, 2화만 보려고 했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일요일까지 밥상만 치우면 TV를 켰다.  이런 몰입은 처음이었다. 마지막화까지 챙겨보았기에 모든 관심이 종료된 줄 알았다.


 며칠 후 나는 자연스럽게 유튜브로 '마스크걸'의 한 장면을 찾고 있었다. 가수 손담비의 2009년 발표된 '토요일 밤에'를 주인공인 나나와 한재이라는 배우가 파트를 나눠서 부르는 장면이었다. 완벽한 미모의 두 여인이 밝고 경쾌한 리듬을 타고 화려한 춤솜씨를 뽐냈다. 아무리 드라마를 위해서라지만 얼마나 연습했길래 저런 포즈와 춤 실력이 나오는지 궁금했다.


 배우 나나는 원래 '애프터스쿨'이라는 걸그룹의 멤버였다고 한다. 그 그룹이라면 가끔 주말드라마 주인공으로 나오는 배우 '유이'가 있었다. 하지만 '유이'는 올해 새로 시작하는 주말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될 만큼 이미 안방극장의 단골 배우로 각인된 지 오래다. 그런데 '나나'라는 배우는 잘 몰랐다. 그와 같은 그룹의 멤버였다니. 저렇게 멋지고 아름다운 여인이 왜 지금에서야 스포트라이트를 받을까? 물론 중간에 '오렌지캬라멜'이란 걸그룹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다고는 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의 잠재력에 비해 인지도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다.(이것은 백 퍼센트 나의 관점이다.)


  '나나'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저런 연기는 한 두 달 연습한다고 나오는 것은 아닐 텐데 뭐지? 그 이유를 한 인터뷰에서 알았다. 나나는 연습생 시절 당시 인기를 누리고 있던 손담비를 노래를 따라 하며 춤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때 가장 많이 했던 곡이 '토요일 밤에'였다. 사회자를 통해 받은 질문의 답이었지만  '이걸 얘기해도 되나?'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숨은 끼를 발설해야 될지를 짧은 순간에도 고민하는 순수함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그녀는 '우리의 삶이 선택'에 의해 진행되고 있음을 생각한다고 쑥스럽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이 그 어떤 화보보다 빛났다.


 우연한 기회였지만 나나는 12년 후 자신의 노력이 화려한 연기 실전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순간마다 선택을 고민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선택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모든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인문학자 고미숙 님의 말대로 '용신'을 제대로 쓴 것이다. 사주명리학의 입문서로로 알려진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에 보면 나의 존재성을 '탈영토화'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때 용신에 해당하는 세 가지 '①몸을 쓴다 ②재물과 능력을 쓴다 ③(감정, 자의식, 신념, 명분등으로 이루어진) 마음을 비운다.'를 잘하면 좋은 기운이 깃든다는 얘기다. 


  갑자기 웬 운타령이냐고?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대충 살아서는 내가 기대하는 행운이 오지 않는다.  끊임없이 뭔가를 추구해야 한다. 다만 그 추구하는 대상이 순수하고 정직해야 원하는 이상적 삶에 도달할 수 있다.

정말로 대박을 맞고 싶다면 무엇보다 뻔한 것 같지만 자기 삶에 실천하기는 어려운 이 과정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하다. 산다는 건 절대 공짜가 아니다. 평생 돈과 재산, 커리어를 일구어야 한고 주기적으로 고난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만약 이 모든 것을 대충 피해 간다면 그건 사실 살아가는 의미를 알기 어렵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순간까지도 타인에 대한 비난과 불평만을 일삼을 것이다.


 어쩌다 내가 드라마줌마가 되었지만 배우 나나가 다시 전성기를 맞이할 운명은 아닌지 생각했다. 각자의 인생에서 '존재감'이 발현되는 시기는 각자 다르다. 일찍 발현되는 사람이 있고, 환갑을 넘어 늦은 나이에 발현되는 사람도 있다. 늘 서녘 하늘 끝에 가장 먼저 빛을 뿜어내는 금성 같은 이는 거의 드물다고 한다. 이 세상 삼라만상은 원래 평등과 균형의 질서를 존중하므로 아무리 뛰어나도 영원한 특혜는 주지 않는다고, 그래서

나 자신도 늦은 나이 발현되는 별은 아닐지, 우습지만 기대하게 된다.


 참고로 나는 여기에 거론한 나나, 유이, 애프터스쿨, 오렌지캬라멜 등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냥 단순한 생활글이니 순수하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다만 마스크걸 장면중 나나가 감옥에서  '한 놈만 패는 씬'은 명장면 중에 명장면이니 한 번 보시기를 권한다.



작가의 이전글 퇴직의 정석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