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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라이야기 Sep 25. 2021

나는 후진 아파트에 사는 것이 두렵다

 회사에 출근할 때 자전거를 이용한다. 축지법을 쓰는 듯 한 빠른 속도감과 허벅지 운동에 좋아서 일석이조이다. 예전에는 회사가 멀어, 통근버스를 이용했다. 그때는 시간 제약이 많아 불편했다. 지금,  이사를 가까운 곳에 오니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회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아파트를 샀다. 오직 내 분수에 맞는 가격대에 아파트를 매매한 것이다.


 전세가 아닌 매매로 온 이유는 어릴 적, 학생 때의 기억 때문이다. 학생 때, 주말에 TV를 보고 있으면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간다.”라며 TV를 꺼버리던 아버지. 추운 겨울에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 보일러 기름 값 많이 나간다며 투덜대던 아버지, 주말에 쉬고 있으면 멀쩡한 지붕을 수리하겠다며 같이 하자고 명령하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 때문에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내 집에서 독립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주택 2층에 전세로 살 당시, 조금만 뛰면 밑에서 올라오는 집주인 아저씨의 꾸지람에 기가 많이 죽었다. 이런 어릴 적 기억과 함께 사소한 것이라도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 나의 명의로 아파트를 구입하고 싶었다.


 결혼 후, 나의 "내 집 마련 꿈"은 더욱더 커졌다. 결혼 초기에는 월세와 전세로 살았다. 알뜰하게 살며 몇 년 동안 돈을 모았다. 돈이 모이자 내 집 마련 꿈을 현실화시키기로 결심했다. 내 눈에 회사 근처, 공장이 밀집해 있는 지역의 도로변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20년 된 후진 아파트다. 은행에 대출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었고 회사와 거리가 가까웠다. 그래서 일하며 모은 돈과 은행 담보대출을 끌어다 후진 아파트를 샀다. 공장지대에 위치해 창문을 제대로 열 수 없었다. 창틀에 쌓인 시커먼 먼지가 창문을 오랜 시간 열어두면 어찌 될지를 말해주었다. 후진 아파트를 살 때 아내는 결사적으로 반대를 했다. 내가 대기업에 다녀 “신용도가 높다.”며 은행에 돈을 더 빌려서,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자고 했다. 아내의 말도 일리는 있지만 난 그러기가 싫었다. 은행에 돈을 너무 많이 빌리면 왠지 꺼림칙했다.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고, 매달 나가는 이자와 원금이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내를 조심스럽게 설득했다.


- 요새 TV 보니깐 젊은 사람들이 오래된 아파트를 구입해서 인테리어 예쁘게 해서 살더라. 집값이 너무 비싸서, 현실적인 방안을 선택한 것이지. 우리도 그렇게 하자. 그리고 집값이 언제 떨어질지도 몰라. 내가 책에서 읽었는데, 일본은 집값이 확 떨어졌대. 인구는 줄어드는데, 공급에 비해 수요가 없어서 그런 것이지. 은행 빚 많으면 한 달 이자는 어떻고? 아깝잖아. 차라리 은행 대출 비용을 아껴서 우리 맛 나는 거 사 먹고 간혹 제주도나 놀러 가자.


나는 이런 식으로 아내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조금 오래된 아파트에 살면서 질적으로 높은 삶을 영위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나의 끈질긴 주장과 설득에 결국 아내도 내 말에 동의했다. 그리하여 회사와 가까운 후진 아파트를 2억이 넘는 금액에 매매할 수 있었다. 대신 인테리어는 아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집을 사고 인테리어까지 다해서 살고 있는데, 아내가 또 걱정을 했다.


- 우리 아파트가 공장과 너무 가까워 걱정이야. 우리가 좋은 환경에 살아야 우리 아이도 건강하게 자라지.


나는 또 아내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 내가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거주지 지역에 새가 살면 그 지역의 환경오염은 그리 심한 곳은 아니래. 참새나 까치, 까마귀 같은 조류는 환경오염에 대게 민감해서 그런 거야. 근데 우리 아파트를 봐. 아침에 매일 참새 떼들이 시끄럽게 지저귀잖아. 여기 환경오염이 심하면 들이 못살아. 그러니깐 안심해.


말로도 안심을 시키고 행동으로도 실천했다. 공기청정기 2대, 건조기 한 대를 구입했다. 그리고 인테리어를 할 때 외부로 연결되는 모든 창문은 이중창으로 설치했다. 집 안에 공기정화에 좋다는 관엽식물도 구입을 하거나 지인에게 부탁해서 집에 많이 들여다 놓았다.  


 시간이 지나 코로나가 터졌다. 그러면서 집값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아파트의 가격도 내려갔다. 나는 아내에게 내가 예측한 대로 되었다며 자랑했다.


- 봐! 내 말 맞지? 지금은 투자보다는 안전하게 가는 것이 최고야. 투자할 때가 아니라고. 집값은 더 내려갈 거야.


나는 의기양양해졌다. 하지만 딱 그때뿐이었다. 코로나가 터지고 6개월이 지나자, 집값이 다시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여러 규제와 부동산 법을 만들 때, 나는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하지만 부동산은 더 멀리 뛰기 위해 한 걸음 뒤로 빼는 개구리처럼 엄청나게 상승했다. 아내 보기가 민망해졌다.


- 이게 뭐야? 내 말대로 이 후진 아파트 사지 말고 큰 도로 건너 아파트 샀으면 지금 몇 억 벌었을 거 아니야! 지금 큰 도로 건너에 있는 아파트는 3억 가까이 뛰었어. 그놈의 은행 대출이 무서워서 거절하더니. 아이고, 배야.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의 상황판단으로 기회를 놓친 것이다. 큰 도로 맞은편 아파트를 구입했다면 3억 넘게 버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의 신용도라면 은행에 대출해, 구입할 수 있었다. 속이 쓰리고 뒤틀리는 심정이다.


 회사에 출근할 맛이 나질 않는다. 공장에서 쇠가 빠지게 용접하고, 그라인더 작업으로 쇳가루를 뒤집어쓰며 일한다. 근로소득이 자본소득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자각하자 의욕이 더욱더 생기질 않는다. 그래도 비정규직으로 일할 때를 생각하며 맡은 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퇴근을 하려고 보니,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빠져있다. 나는 자전거 가게에 들려, 자전거를 고치고 귀가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전거를 고치고 가겠다.”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단골로 가는 자전거 가게는 오래된 자전거 가게로, 할머니가 운영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회사와 거리가 가까워 이용하게 되었는데, 할머니 사장님이 마음에 들어 단골이 되었다. 할머니 사장이 이런저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기 때문이다.


- 총각, 부모님 살아계시지?

- 네. 근데 총각은 아닌데요.

- 워낙 동안이라 총각인 줄 알았지. 부모님께 항상 잘해드려. 부모님께 용돈은 드리나?

- 네. 근데 저도 가정을 꾸리며 살아야 하기에 많이는 못 드리고, 명절이나 생신 때만 챙겨드립니다.

- 요 앞, 대기업에 다니지?

- 네.

- 그래. 총각 참 성실하구먼. 나이 들면 돈 많이 들어. 젊었을 때 고생을 많이 해서 병원도 자주 가야 되지. 자식들한테 손 벌리기 싫어서 내색도 못하지. 그러니깐 부모님께 용돈 많이 챙겨드려야 돼. 그게 효도야.


 “부모님 용돈 챙겨드리고 효도하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타인에게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도 없는데, 용기 내서 해주니 참 고마운 것이다. 할머니 사장은 마음이 따뜻한 좋은 사람이 것 같다.


 자전거를 새롭게 장만한다면 이 가게에서 자전거를 살 것이다. 내게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 사장의 훈훈한 정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 사장님. 제 자전거가 오래되어서 새 자전거를 하나 살려고 하는데, 어느 것이 좋을까요? 하나 추천해주세요.

- 아직 탈만 하구만. 뭐 하러 쓸데없이 돈을 써. 지금 타고 있는 자전거 부품만 교환하면 돼. 어차피 이 자전거는 출∙퇴근용이잖아. 돈 아껴야지.


나의 지갑을 고려해 충고해주는 모습에 감동을 느꼈다. 보통 장사하는 사람이라면 손님들에게 구매를 독려할 것이다. 근데 이 사장님은 본인의 이익은 저 멀리 던져버리고 손님의 알뜰한 소비지출을 권했다. 손님 입장에서 더욱더 신뢰가 깊어졌다.


 나는 할머니 사장의 말대로 자전거의 오래된 부품을 교환하기로 했다.


- 사장님, 그럼 사장님이 보시고 오래된 부품을 새 부품으로 교환해주세요.

- 총각, 잘 생각했어.


할머니 사장은 빨간 장갑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자전거를 풀고 조립하는 과정에서 나의 거주지에 대해 물었다.


- 총각, 자전거 타고 다니는 거 보니깐 이 근방에 사나 봐. 집이 어디야?

- 여기 큰 도로 지나서 후진 아파트에 살아요. 공장 몰려 있는 데 있잖아요. 그래서 가격이 저렴한....... 더 이상 물어보지 마세요. 아파트가 오래되어서 자랑할 게 못됩니다.

- 자가야?

- 네.

- 열심히 돈 모아서 더 좋은 데 가면 되지 뭐. 근데 부모님 도움 좀 안 받았어?

- 네. 제 돈으로 구매했습니다.

- 대단하네. 젊은 사람이 부모님한테 손도 안 벌리고.

- 그리해도 자랑할 게 못 됩니다. 옆에 공장이고 오래된 아파트라.......

- 돈 모아서, 나중에 더 좋은 데 가면 되지. 아직 시간이 많잖아.


역시 할머니 사장은 나의 편이었다. 후진 아파트를 산지 얼마 되지 않아, 아파트 가격이 오른 터라 상심이 컸다. 그런데 지금 할머니 사장이 나의 상처를 다독여 주는 듯하다. 할머니 사장은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 요 며칠 전에 어떤 젊은 년이 총각 사는 아파트에 산대. 그런데 그 오래된 아파트를, 4천만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인테리어 해서 살고 있다네. 그거 완전 미친년 아니야? 그 돈이면 차라리 빚 더 내어서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가면 될 것을. 약간 모자란 년이야.


할머니 사장 말투가 다소 거칠다. 사회생활하다 보면, 남자든 여자든 경쟁 속에서 부딪히며 살아가다 보니 성격적으로 모가 날 수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든, 더 좋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든, 그것은 본인의 선택인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미친년”이라고 욕을 하다니. 할머니 사장의 의외의 모습에 다소 놀랐다.


- 총각, 다 되었어. 오만 원이야.


나는 할머니 사장을 생각해서 현금으로 계산했다. 깍듯이 인사를 하고 가게 밖으로 나왔다.


 부품을 몇 개 바꾸었을 뿐인데, 새 자전거가 된 것 같다. 페달을 밟는데, 앞으로 쭉
 쭉 뻗어나갔다. 그 탓에 기분마저 상쾌하다. 집으로 가는 길에 바람을 맞으니, 각 세포들이 깨어나는 듯하다. 그러다 문득 할머니 사장이 말한 “미친년”이 문득 생각났다. 인테리어. 후진 우리 아파트. 미친년.


 설마 내 아내의 이야기가 아닐까? 우리는 후진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거금을 들여, 인테리어를 싹 뜯어고쳤다. 그리고 한 달 전, 아내가 이 근처에 자전거 방이 어디냐고 물었던 것이 생각났다. 아내는 처녀 때 타던 자전거를 아직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졌기에 고치러 갈 것이라고 했다. 추상적인 의문의 조각들이 맞춰져 하나의 확신이 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를  찾았다.


- 여보, 며칠 전에 할머니가 사장으로 있는 자전거 방 갔다 왔어?

- 응.

- 자전거 방에서 우리 아파트로 오기 전, 4천만 원 들여 인테리어 한 것을 이야기했어?

- 응. 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화를 억누르며 자전거 방 할머니 사장이 말 한 “미친년”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연히 아내는 기분 나빠했다.


 자전거 방을 찾아가서 따지고 싶었다. “후진 아파트”에 4천만 원 들여 인테리어 하면 미친 사람인지 물어보고 싶다. 아내와 나는 화를 누그러뜨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서 따진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서로 관계만 어색해질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은 들을 수 있을 것이다.


 4천만 원 들여 인테리어 한 것이 못마땅한 것은 본인의 생각이다. 본인의 생각을 다소 과격하게 이야기한 것을 가지고 싸우는 것도 우습다. 찾아가서 따지는 것을 포기했다. 나는 아내에게 "다시는 타인에게 우리의 상황을 자세히 이야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 에휴. 우리가 후진 아파트에 이사 온 게 죄지. 뭐.


아내의 푸념이 귓속에 박히는 듯하다. 여기로 이사 오자고 한 것은 나다. 아내는 은행에 대출을 더 당겨서 더 좋은 아파트를 사자고 했다. 돌이켜보면 나 때문에 아내가  “미친년” 취급을 받은 것이다.


 자전거 방 할머니 사장이 미워졌다. 그리고 할머니 사장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도 180도 달라졌다. 본인이 뭔데 우리 부모님 용돈을 많이 주라며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한단 말인가? 자전거만 고쳐주면 될 것을. 그리고 왜 나의 거주지를 알려고 하고 경제력을 가늠하려는 것인가? 쓸데없는 오지랖이 참 넓다. 나의 자전거는 누가 봐도 오래되었다. 체인과 각 연결된 쇠 부품이 녹슬어, 타기에도 불안해 보였다. 그렇게 오래된 자전거를 바꾸려고 하는데, 부품 몇 개 바꿔서 다시 타라고?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쩔 것인가? 고객을 생각해주는 척하며 선심 쓰는 듯 하지만 고객의 안전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그 뒤로 우리 집은 그 자전거 방을 가지 않았다. 자전거 바퀴에 달린 부품 몇 개를 새로 바꾼다고 자전거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니 다시 페달을 밟아도 뻑뻑한 것이 잘 나가질 않는다. 체인과 각 연결 부분에 기름칠을 하여도, 바퀴를 굴릴 때 마찰음이 심하게 들린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호감 가는 자전거 가게를 찾았다. 그곳에서 비싼 가격의 전기자전거를 구매했다. 아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사실 나 때문에 욕먹은 아내를 위해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내가 나에게 전기자전거를 권유했다. 고마움을 느꼈다.


 오래되고 후진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에게 욕을 먹는다는 것이 당황스럽고 화가 난다. 하지만 그보다 "아내의 다음 "을 듣고서는 황당함과 분노보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 조금 있으면 우리 아들 초등학교 가는데, 큰일이야. 줌마렐라(정보공유 사이트) 들어가서 보니깐 초등학생 사이에서 아파트로 그 친구를 평가한다네. 그래서 후진 아파트 사는 애들을 왕따 시키는 일도 더러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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