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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라이야기 Dec 14. 2021

20대, 엉덩이의 비애

 취업난 이야기는 오늘, 내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취업난이 미세먼지처럼 일상이 된 듯하다. 그리고 뉴스에서는 취업난을 미끼로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보도된다. 그런 뉴스를 보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아마 20대, 경험한 엉덩이의 비애 때문일 것이다.


 군 제대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전문대 졸업을 언급했다. 그래서 어머니의 설득으로 전문대를 졸업하기로 했다. 하지만 재입학까지 아직 7개월 정도의 기간이 남았다. 시간이 아까워, 소일거리를 하며 돈을 벌기로 했다.


 무더운 여름날이라 에어컨이 불티나게 팔렸다. 구인구직 소식지를 보니 에어컨 만드는 공장에서 사람들을 대거 채용하고 있었다. 물론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이었다. 나는 에어컨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기로 했다. 내가 전화로 문의를 하니, 사장이 쉬는 날이며 급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고 나는 급여 부분이 마음에 들어 일을 하기로 했다. 내가 일하기로 한 곳은 대기업 내, 물량을 받아 제조를 하는 업체였다.


 라인 공정이었다. 라인 옆에 나란히 서서 라인을 타며 내려오는 제품에, 각자 주어진 일만 반복해서 했다. 어떤 사람은 나사를 조이고, 어떤 사람은 조립을 했다. 그리하면 맨 끝 쪽 라인에는 에어컨 완제품이 완성되었다. 완성된 제품은 또 라인을 타며 포장이 되었고 포장이 완료된 제품은 팔레트에 쌓였다. 에어컨이 쌓인 팔레트를 지게차가 와서 차에 실거나 창고로 옮겼다. 나는 라인 옆에 서서 단품을 결합 했는데, 처음에는 잘 되질 않아 손목이 아프고 불편했지만, 며칠 작업하고 나니 적응이 되었다.


 일을 하다 라인이 멈추면, 문제가 발생한 곳에 설치된 빨간 등에 불이 지고 반장이 뛰어왔다. 반장이 달려와서 허겁지겁 문제를 해결했고 그러면 라인이 또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희한하게 그곳에 라인이 잘 돌아갈 수 있도록 감시, 관리하는 “반장”이라는 사람은 대기업 소속의 정규직이라고 했다.


 라인 작업을 하는 그곳에서는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화장실을 갈 수가 없었다. 라인을 세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볼일이 급해 화장실에 꼭 가야 한다면 옆에 일하는 동료에게 본인의 일을 잠시 맡기고, 빨리 달려 나가 볼일을 보고 와야 했다. 그러다 라인이 서면 반장에게 야단을 맞았다. 그런 작업환경 때문일까? 젊은 사람들보다 가정이 있는 중년층이 많아 보였다.


 내가 일하는 라인 옆에도 가정이 있어 보이는 어떤 아줌마가 일하고 있었다. 내가 속한 외주업체의 사장이 간혹 가다 현장을 돌아다녔다. 와서는 직원들의 일하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친한 사람에게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쉬는 시간에 사장이 나를 지나, 내 옆에 있던 아줌마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아줌마가 짜증을 내었다.


- 지금 뭐 하는 거야?
- 어허, 사장이 격려 차원에서 직원을 다독거리는 건데, 뭘 그리 발끈하고 난리야?


나는 아줌마 옆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줌마가 사장에게 화를 내거나 뭐라고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멱살을 잡거나 대들기라도 한다면 기꺼이 아줌마의 편을 들어줄 참이었다. 근데 아줌마는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또다시 일을 할 준비를 했다. 사장이 멀찌감치 떨어지자 욕을 내뱉었다.


- 미친 새끼.


한 순간에 발생한 일이었다. 사장의 돌발행동에 황당함을 느꼈지만, 참고 지나가는 아줌마도 의아했다. 소란을 일으키기 싫은 것인지 아니면 불쾌함을 드러내 봤자 본인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황당한 일에 대해 여러 의문들이 생각날 때쯤 다시 라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인 작업으로 인해 그 기억을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에어컨을 만드는 공장에서도 2달 정도 일하고 그만두었다. 사장이 바쁘다며 주∙야간 업무를 반강제적으로 권유했다. 그래서 한주는 주간, 한주는 야간으로 일을 했는데 생체리듬이 깨져서인지, 잠도 제대로 오지 않고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질 않았다. 그리고 계속 피곤했다. 게다가 무더위까지 겹치니 몸이 견디지를 못하는 듯했다. 다시 전문대에 복학할 예정이고, 목을 매고 일을 해야 할 상황도 아니기에 일을 그만둔 것이다.


 2주 정도 쉬고 나니 몸이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백화점 내, 옷을 파는 샵에서 일하기로 했다. 9월이라 날씨가 매우 더웠다. 가만히 서 있어도 가슴팍에서 땀이 저절로 배어 나왔다.

 전화로 문의를 하고 면접을 보러 갔다. 사장은 없고 샵매니저라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나보다 한두 살 많은 것 같았다.


- 사장님이 여기 상주 안 하셔. 간혹 가다가 들리곤 하지. 내일부터 일하러 와. 옷은 아무 옷이나 입고와도 돼, 대신 깔끔하게 입고 와. 일은 내가 시키는 거 하면 돼.


전에 공장에서 일했다면, 이제는 백화점이다. 백화점이기에 옷을 잘 입어야 될 것 같다. 백화점에 일하러 가는 첫날, 반팔 셔츠에, 밝은 색 청바지를 입었다. 멋을 내기 위해 몸에 착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입었다. 군 시절, 제대를 앞두고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한 보람이 있는 것 같다. 엉덩이가 사과처럼 튀어나왔다. 옷을 파는 가게에서 이 정도 옷걸이면 많은 손님을 확보하지 않을까? 하며 스스로 거들먹거렸다.


 백화점에 가서, 나는 샵매니저의 지시대로 일을 했다. 하는 일은 손님이 오면 옷에 대해 설명하고 ‘옷이 잘 어울린다.’며 호응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러다 손님이 원하는 치수의 옷이 없으면 샵매니저가 알려주는 대로 지하창고로 내려가 옷을 가지고 오는 것이었다.


 어느 날은 손님이 거울을 보며 옷을 본인의 몸에 맞는지 대어보고 두고 간 옷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정리해야 할 옷들이 많았다. 열심히 옷을 곱게 접어, 정리하고 있는데 누가 내 엉덩이를 살짝 꼬집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 날씨에, 할 것도 많아 짜증이 순간 폭발했다. 그리고 아직도 말년병장의 기세가 남아있었나 보다.


- 이런 신발끈.


쌍욕을 내뱉으며 내 엉덩이를 꼬집은 사람을 노려보았다.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중년의 남자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 나 이 가게 사장인데.


사장은 헛기침을 하더니, 놀란 표정이 근엄하게 바뀌었고 나를 훈계하기 시작했다.


- 내가 지나가다 젊은 사람이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리고 또 잘해보라고 친밀감을 표시한 것인데 말이야. 젊은 사람이 그렇게 화를 내서야 되겠어? 그런 다혈질 성격으로 어떻게 손님을 맞이하겠어?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그러면 못 써. 그런 성격으로 아무 일도 못해.


사장이라는 사람은 혀를 차며 나의 곁에서 멀어졌다. “사장”이라는 말에 나는 ‘아차 실수했다.’라고 생각했다. 사장에게 너무 화를 낸 것 같았다. 그래도 초면에 인사도 없이 아르바이트생의 엉덩이를 꼬집은 사장의 잘못도 있기에 당연히 없었던 일로 무마가 될 줄 알았다.


 그날 저녁, 일을 마무리하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샵매니저가 나를 불렀다.


- 사장한테 밉보였어? 사장이 너보고 내일부터 나오지 말래. 오늘 일당 챙겨주고 보내라는데? 사장이 너한테 왜 이래? 무슨 일 있었어?
- 모르겠는데요.


황당함을 느꼈고 어이가 없었다. 설명하기도 귀찮고 설명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었기에 그냥 ‘모른다.’라고만 했다. 샵매니저에게 돈을 받고 귀가했다.


 ‘일하는 사람 목숨이 참 파리 목숨 같다.’라는 생각을 했다. ‘다른 일자리를 찾아보면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에어컨을 만드는 제조공장에서 라인을 따라 일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사장이 본인의 엉덩이를 만지고도 별 대응 없었던 아줌마가 생각났다. ‘나도 가만히 있어야만 했나?’라는 생각을 했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아줌마와 나는 처지가 달랐다. 그 아줌마는 자식이 딸린 가정이 있을 것이고 그 가정을 지키기 위해 직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나와 같이 발끈하여 소란을 피워 사장 눈밖에 벗어나면 불합리한 대우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줌마는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야만 했기에 사장이 엉덩이를 살짝 만지는 일 따위는 대충 넘어간 것이다.


 이번엔 나를 생각했다. 나는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고 당장 돈이 시급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훗날 그 아줌마처럼 가정을 가지게 되고 직장생활로 돈을 벌어야 될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가족의 생계를 볼모로 잡혀, 내 자존심은 버리고, 가벼운 불합리는 못 본 척 넘어가야 되나? 불합리한 대우도 견뎌야 하고 행여 사장한테 밉보여 따귀라도 맞으면 참아야 되는 것인가? 그런 의문을 하고 상상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20대 시절, 엉덩이의 비애 사건은 아직도 생생하다. 취업난으로 힘들어하는 20, 30대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엉덩이의 비애”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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