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삼삼팔 Mar 30. 2022

찌그러진 봄


오지 않을 것 같계절이 다시 왔고, 다시 맡지 못할 것 같계절의 냄새도 풍겨오기 시작했다. 쌓이지 않을 것 같은 나의 브런치에도 글이 쌓이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정해진 주제는 없다.


생각해보면 매년 봄에는 이리저리 바빴다. 회사에서 업무가 막 시작되는 시즌이기도 하고 예전에는 더더욱 열정이 넘쳤던 터라 매일이 야근이어서 봄을 봄처럼 즐기지 못했다. 대학교 때는 여기저기 꽃을 보러 다녔는데 회사에 다니고부터는 한 정거장 뒤에 있는 역까지 걷는 길이 그저 꽃구경하는 길이었다.


길마다 그득그득 피어있던 벚꽃들을 저녁에만 볼 수 있어 아쉬웠지만, 겨울의 캄캄한 밤하늘과는 또 다르게 봄의 밤하늘은 푸르스름해서 벚꽃과 참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 길에는 유독 벚꽃이 많았다.


저 아래 지방에는 이미 벚꽃이 피었으려나. 여기 내 눈앞에는 아직이다. 봄에는 봄내음이 나서 좋지만 생각이 많아지고, 봄에는 벚꽃이 참 예뻐서 좋지만 나는 벚꽃처럼 예쁜 아이가 아니라서 슬프다.


내 봄은 항상 한 귀퉁이가 찌그러진 모양이다.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고들 말하지만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김없이 매번 나를 할퀴고 상처 낸다. 잊을만하면 할퀴고 잊을만하면 물어뜯고 잊을만하면 찢어버리는 것 같다. 결국 내가 나를 할퀴고 물어뜯고 찢는 모양새가 되는데 나는 이걸 멈추는 게 퍽이나 어렵다. 너도 나만큼이나 힘들게 만들겠다는 어리석고 무서운 마음을 품고 사니 내가 나로 사는 게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좋은 마음만으로 사는 게, 나 말고 다른 것들에는 관심 끄고 사는 게 잘 안 된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잊으면 안 되니까. 무엇이든 나를 힘들게 나를 비참하게 나를 안타깝게 나를 슬프게 만든 것들은 절대로 잊으면 안 되니까. 잊으면 안 되니까. 절대.  잊지 않을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꾸만 미안한 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