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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삼삼팔 Jul 06. 2022

한 마리 화려한 구피 같아

* 사진출처: bluehand/shutterstock


체크무늬가 들어간, 얇아서 하늘하늘거리는 긴치마를 입을 때면 내 모습이 어딘가에 비쳐 보일 때마다 항상 생각한다. '구피 같다.' 그리고는 곧 물고기가 된 것 같아 은근히 기분도 하늘하늘해진다. 그래서 괜히 한번 더 치마도 펄럭여보고.


내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여러 번 바뀐 우리 집 어항 속에, 그래도 항상 있던 녀석들은 구피였다. 새끼를 얼마나 많이 낳는지 나중에는 그 수가 감당이 안되어서 여기저기 나누어주기도 했다. 구피는 거의 모든 동물들이 그렇듯 암컷들은 튀지 않는 색에 꼬리도 적당한 물고기 꼬리였는데 수컷의 꼬리는 화려함 그 자체였다. 작고 가는 몸통을 가졌지만 꼬리는 달랐다. 주황색에 검은 점박이가 가득한, 제 몸보다 훨씬 큰 그것을 가벼이 흔들며 물속을 유영하는 모습이 참 예쁘고 신비로웠다.


그 모습이 예뻐서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아울렛에서 엄마가 사 준 4만 원짜리 이 치마를 입을 때면 항상 매번 빼놓지 않고 구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괜히 나도 화려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가짜는 겉이 화려하고 진짜는 속이 화려하다는데, 나는 자꾸만 겉을 화려하게 꾸미고만 싶다. 손톱도 더 밝게 여러 보석을 붙여서 반짝반짝 과하게, 목걸이도 반짝반짝, 옷도 하늘하늘.


내가 들여다본 내 속은 오늘도 푸석푸석하고 텅 빈 듯해서. 겉이라도, 이렇게라도 잠시나마 몸뚱이에 주렁주렁 붙이고 걸친 보석들에 닿은 빛이 반사되어 들어가기를. 닿은 빛이 밖으로 튕겨나가는 것이 당연지사겠지마는 아주 가느다란 빛이라도, 그 잔 빛이라도 내 안에 비치기를 바란다.


제 몸에 비해 과하게 밝고 큰 꼬리를 가져 언발란스한 구피 녀석도 언뜻 보면 그저 화려해 보이니까. 예뻐 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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