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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삼삼팔 Oct 13. 2023

N의 탁한 머릿속

나에게 집중하길 원하는 시간, 아주 긴 의자의 양 끝에 앉은 나와 당신. 얼굴도 모르는 당신이 마주 앉은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정확히는 당신이 입을 열어 이야기를 주도할 때마다 정신없이 떠는 다리가 정말 싫은 시간이 계속 흐른다. 다음 생에는 꼭 ESTP로 태어나야지, 지금 나와는 아주 반대의 모습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친 E와 S와 T와 P로 태어나서 조금은 편하게 살아봐야지 다짐한다. 그런 성격이었다면, 많은 것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지나 보낼 수 있었다면 저 끝에 앉은 당신이 계속해서 떨고 있는 다리가, 그렇게 해서 나까지 함께 정신이 사나워지는 이 상황이 불편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어쩌면 내가 그런 행동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머릿속은 항상 복잡하다. 극 N의 특성인지 가만히 있어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퐁퐁 솟아난다. 물론 심각한 생각이 아니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금방 잊어버릴 정도의 쓸데없는 잡생각에 가깝다. 근데 그런 생각들에 머릿속은 항상 지저분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집중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쉬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고 더 조급하고 지치는 걸 보면 이 생각들이 내 시간과 감정을 잡아먹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유가 필요한 게 아니었다. 


며칠 전에 본 유튜브 영상에선 N과 S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더라, '카페에서 여러 음료를 쟁반에 담아 자리로 가고 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합니까?'. 반사적으로 든 생각은 '넘어지지 말아야지. 음료를 다 쏟으면 어떻게 치우지, 너무 죄송스러운데. 음료는 새로 사야겠지, 그냥 해주시려나. 그럴 리가 없지.'였다. 대부분의 N들은 '넘어지지 말아야지, 쏟지 말아야지, 조심히 가져가야지'라는 생각을 하더라. 그럼 대부분의 S들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무슨 생각을 해요..? 잘 가져가야지..? 맛있겠다..?' 그래, 그게 바로 내가 부러워하는 포인트다. 부럽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게, 부럽다. 


거의 대부분 멀티로 무언가를 하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히려 내가 패닉상태가 될 때도 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경우다.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듀얼 모니터로 유튜브를 함께 틀어놓은 경우, 유튜브를 보면서 샤워를 하는 경우, 티비를 보면서 핸드폰을 하는 경우.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있는 건 좋은 능력인데 그 능력이 없는 나는 지켜보면서 에너지가 소모된다. 나에게 멀티는 쥐약이다. 그래서 운전을 배워놓고도 내비게이션을 함께 보지 못해 앞만 보고 가는 건지도 모른다. 전국의 길을 다 외우지 않는 한 나란 사람이 운전을 맘 놓고 편하게 할 수 있을 날이 올런지 모르겠다. 


밖에 나와서도 동시에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함께 에너지가 쭉쭉 닳는다. 신경 쓰지 않으면 되는데 신경이 쓰이고 자꾸 눈에 밟힌다. 왜 대체, 다리를 떨지 않으면 생각을 할 수 없는 걸까. 왜 대체, 다리를 떨지 않으면서 말을 할 수는 없는 걸까. 결국 긴 의자의 끝에 앉은 당신의 산만함이 나의 시간을 방해하고 있다. 당신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지도 못했을 행동이 내 에너지를 고갈시키고 있다. 


아마 당신은 이 카페를 걸어 나가면서도, 걸어 나가서도, 당신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생각을 할 때마다 고민을 할 때마다 다리를 떨었다는 사실 자체도 인지하지 못할 확률이 크다. 문제는 당신의 행동이 던진 돌에 맞아 죽어가는 나다. 내 성격이 나를 좀먹는다는 건 이런 뜻이다. 당신 탓이 아닌 당신의 행동에 영향을 받은 내 탓이다. 늘 그랬듯이 내가 나를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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