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바로 지구에서’라는 책의 제목은 책을 보는 순간 긴장하게 만들었다. 여기 바로 지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맞다. 우리가 많이 이야기하는 지구의 환경오염, 기후변화, 그런 지구의 문제들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이론책이나, 전문가의 구구절절한 설명이 아니라 지구 곳곳을 다니면서 직접 지구에서 살아가기 어려워지는 동물들을 만났던 피디의 글이라서 마음이 더 많이 흔들리고 복닦였던 것 같다.
왕관을 잃어버린 곰, 사라진 꿀벌들, 북극에 갈 수 없는 북극곰 등 딱 보는 순간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조금 상상이 간다. 그런 작은 상상으로 접한 작가의 글은 훨씬 마음을 많이 흔든다. 작가가 만난 진짜 곰들, 그리고 꿀벌들, 토끼, 원주민들, 북극곰이나 반달곰들은 흔히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동물들이라서 더 그런 것 같다. 멸종위기의 희귀 동물들이라기보다 살 곳을 잃어가고, 발 디디고 살았던 곳이 사라져 가는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문제가 되는 고라니가 전 세계적으로는 멸종위기종이라는 것도 새로웠고, 판다가 왜 쓰촨에만 살고 있는지,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북극곰이 살기 어려워지는 북극의 얼음이 녹아가는 모습을 본 후, 남극은 그러면 아직 버틸만할까 하는 나의 생각을 그대로 읽은 듯 나오는 남극 문제도 그랬다.
완전한 다큐처럼 환경의 문제들을 나열하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직접 촬영하면서 지나간 작가의 여정과, 그 속에서 만난 동물들의 삶의 터전, 그리고 그들의 위기를 맞닥뜨리는 것이 사실 불편하기도 했다. 어쩌면 작가도 우리의 불편함을 의도하고 쓴 책이 아닐까? 동물들의 예쁜 모습을 상상하면서 웃다가도, 그들이 살기 어려워지는 환경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내가 인간인 것이 미안해졌으니 말이다.
인간이 사라진다고 바로 모든 것이 원상 회복되고, 생태계가 균형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닛코산과 매쿼리섬을 통해 알 수 있다. 인간의 탐욕은 생태계에 깊은 생채기를 남긴다. 하지만 더 늦었다면, 그 상처는 영영 낫지 못했을 수도 있다.
환경을 훼손하는 것도 인간이지만, 더 늦기 전에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다. 지구의 환경이 돌이킬 수 없는,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 우리는 진정한 반성과 최선의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점은 바로, 지금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이 오래 머릿속에 머물렀다. 그냥 연구하는 글이나 생각은 머리에만 머물기 마련인데, 작가의 글이 오랫동안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직접 동물을 만난 경험이 마음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인가보다.
환경은 귀찮고 불편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도전해야 하는 기회다. 우리가 기업과 정부를 예리하게 지켜보고 냉정하게 판단하면서 더 나은 친환경 삶을 준비한다면, 기후변화를 해결할 방법에 분명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얼지 않는 북극해 앞에서 굶주린 북극곰에게도, 불타는 유칼립투스 원시림 속에서 공포에 떠는 코알라에게도, 서식지를 가로막은 거대한 빙산 앞에서 망연자실 서 있는 아델리펭귄에게도, 타는 목마름으로 몸부림치는 코끼리에게도 조금씩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사라지고 있는 지구의 주인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이 많은 사람람들에게 생각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