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항해하는 성장

불안과 믿음 사이

by 노는여자 채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믿고 기다려주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다.”

— 루소 (Jean-Jacques Rousseau)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믿음과 기다림이다.”

— 프리드리히 프로벨 (유치원 교육의 창시자)


“믿음은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토양이다.”

— 심리학자 하임 기노트 (Haim Ginott)


중학교 입학을 코앞에 둔 시점, 부모의 마음은 조급함으로 가득 차기 마련입니다. 교육의 본질이 장기적인 안목에서 아이가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꾸려나가도록 돕는 것임을 알면서도, 현실의 대한민국에서 '입시'와 '교육'은 같은 말이 아님을 알기에 모든 부모는 입시의 그림자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입학과 동시에 코로나가 창궐했지만, 초등학교 시절을 즐겁게 뛰어놀며 보냈던 아이. 하지만 입시가 가까워지는 학년이 되면서 아이는 자기 주장을 갖게 되었고, 부모의 고민은 깊어졌습니다. 육아와 교육, 그리고 입시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한 사람은 한 우주이며, '아이'와 '부모'라는 서로 다른 객체가 만나 한 팀을 이루고 각자의 방향을 찾아 나아가는데 어찌 정답이 있을까요? 수백만 가지의 경우의 수가 있을 뿐입니다.


다만, 대다수의 입시가 성적으로 결정되고, 그 숫자에 유리한 성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현실 또한 외면할 수 없습니다. 특별한 미래를 굽어볼 수 없다면, 이 구조적 틀에 맞게 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안타깝지만 인정하게 되지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입시에 맞게 잘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는 선뜻 답하기 어렵습니다.


최소한 아이가 스스로 달리고 싶을 때, 혹은 어느 날 '마중물'을 만났을 때 스퍼트를 낼 힘을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학원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에서는 "이제 달려야 해. 미리 안 해두면 나중에 후회한다", "공부는 결국 학원에서 하는 거야", "학교는 단지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라는 수많은 말을 쏟아냅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이 고민 앞에서, 저 또한 이 길이 맞는지 백번 마음을 잡아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저 부모로서 아이와 대화하며 가장 맞는 길을 찾는 조력자로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지금의 모습이 성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 또한 아니기에 말입니다.


중학교를 앞두고 아이와 학원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학년 때 축구하며 놀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주변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면서 수학, 영어 학원을 기본으로 다니며 늦은 시간까지 학원에서 보냅니다.


"호박아, 친구들은 영어하고 수학 학원은 기본으로 다니던데, 너도 영어 학원 레벨 테스트를 한번 봐보는 것은 어때?"


"영어는 학원 안 다녀도 돼."


"테스트만 한번 봐보자는 거지. 네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잖아."


직진법을 쓰는 제 서툰 스킬 때문이었을까요, 아이는 끝내 넘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슬픈 눈망울로 제게 가장 뼈아픈 답을 건넸습니다.


"엄마는 나 못 믿어? 엄마가 나를 못 믿는 것 같아서 호박이는 정말 속상해."


"그렇게 느꼈어? 아니야. 엄만 호박이를 믿어."


"그리고 나는 지금 수학 학원 다니는 것도 너무 힘들단 말이야."


"아, 그렇구나."


그렇습니다. 모두에게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 없듯이, 학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는 훈련된 것도, 성향도, 심지어 어릴 때 키워온 방향도 다릅니다. 입시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섣불리 방향 선회를 할 수 없음에도 저는 조급했습니다. 제 불안을 그대로 아이에게 전달해 버린 것입니다. 저는 대화하면서도 안 될 것을 알고 있었고, 아이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보낼 의지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혹시라도 '선택하지 않은 결과'가 좋지 않을까 봐,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했던 나의 불안한 마음이 이런 대화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되돌아봅니다.


제가 가장 좋아했던 문구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마음에 새겼던 말입니다.


"사람은 믿어주는 만큼 자라고, 아껴주는 만큼 여물고 인정받는 만큼 성장한다."


이 문구대로 해보자고 다짐했지만, 돌이켜보면 반대로 가지 않았음 다행일 정도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육아서를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이 의식을 이겨내지 못하고 팽팽하게 줄다리기 중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바로 이 문구와 반대되는 답을 제게 주었습니다. "엄마 나 못 믿어? 엄마가 나를 믿지 않아서 나는 참 속상해."


"호박아, 엄마는 네가 어떤 경우라도 엄마가 너를 믿어줬으면 좋겠구나?"


"응, 우리 엄마잖아."


그렇습니다. 저는 아이의 엄마입니다. 누가 뭐라든 믿어줘야 할 의무가 있는, 서로에게 참으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앞으로는 "엄마 나 못 믿어?"가 아닌, "나는 엄마가 나를 믿어줘서 참 좋아."라는 말이 귓가에 들리도록 함께 이 길을 헤쳐나가고 싶습니다.


우리라는 배가 함께 항해하는 동안, 저는 아이의 항해사이자 조력자로서 함께 성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식도 말입니다.


"우리 함께 성장해보자. 학원 아니여도 다른방법도 찾아보고." 믿음은 이상이지만 현실은 현실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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