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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Oct 18. 2023

[brunch]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소유적 기록 VS. 존재적 기록

2023년 2월, 내 글이 에세이 매거진에 실렸다.

소유적 기록 vs 존재적 기록소유적 기록 vs 존재적 기록

약 일 년 전, 지겹도록 잔잔한 풀타임 재택근무와 끝없는 회사 업무량 속에서 매일 허우적대고 있었다. 당시 내 심기를 명확히 보여주는 내가 브런치에 발행한 글들의 제목은 이랬다: 콰이어트 퀴팅: 퇴직 아닌 퇴직하기 / '번아웃 증후군' 증상이 보일 때 (2022년 9월)

소유적 기록 vs 존재적 기록

퇴근 후 침대에 누워 넋이 나간 채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한 이메일이 내 눈길을 사로잡는다.


"[brunch]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하였습니다!"


신기하고 짜릿했다.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지 일 년 채 안 됐었고, 브런치를 통해 내 글을 공유하기 시작한 지는 6개월이었다. 글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 싶다가도 한순간에 주눅 들어버리고, 또다시 용기 내서 거침없이 쓰다가도 얼마 안 가서 다시 망설이게 되는 시기였다. 


예상치 못하게 받은 에세이 청탁은 회사와 일상에 지쳐있던 나에게 원동력을 주었고, 아무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한 내 글들을 누군가가 읽고 연락해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다행스럽게도 타이밍은 완벽했다. 편집장님이 요청하신 원고 마감일이 내가 휴가를 내고 한국에 가는 기간과 겹쳤던 것이다. 머릿속에서 회사일을 지운 채, 온전히 나 자신에 집중하며 스스로의 현주소와 지금까지의 성장과정을 성찰하고 기록할 수 있는 값진 기회였다.




나의 창작물을 누군가에게 공개하겠다는 결심은 굉장한 용기를 요구한다.


어떻게 보면 나의 개인적인 공간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겠다는 선택이기도 하면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글에 대한 냉정한 평가 혹은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망설임과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마인드컨트롤을 마친 후에만 자신의 삶, 그리고 내면의 생각들을 재료로 이용하며 창작한 작품들을 공개할 수 있다.


처음으로 일기 외의 글을 네이버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 누구에게도 블로그에 대한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그저 나 혼자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라는 멋있는 이유를 당당하게 대고 싶다. 하지만 조금 더 솔직해지자. 나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지나치게 의식했던 못난 모습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당시의 나는, 행여 아는 사람들이 내 글을 읽고, "에? 그정도는 아닌데?"라고 수군거리지 않을까 두려웠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쓴다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세뇌시켰지만, 남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내 안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불필요한 망설임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나의 찌질한 모습은 이때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소심하게 지원서를 준비할 때였다. 마치 대단한 비밀스러운 일을 꾸미는 것처럼.


조금이라도 더 잘 쓰인 글 샘플들을 제출하고 싶다는 마음에, 같은 글을 쓰고 지우고를 수없이 반복했다. 이렇게 완벽함만을 추구하다가는 시작조차 못하겠다는 생각도 자주 들었다.


그래도 나는 '완벽주의자'이니까 더 잘할 수 있었기에 지우고, 추가하고, 수정하기를 무한반복했다. 내 기준에서 완벽하지 않으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기에. 이제 와서 보면 글의 모든 버전이 다 거기서 거기였지만, 원서를 끝까지 작성해놓고 '한 번만 더' 리뷰 한다고 몇 주동안이나 잡고 있었는지.


어느 하루 친구들과 술 한잔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벽 세시쯤까지 잠이 안 왔고, 무언가에 홀린 듯이 브런치에 로그인을 했다. 그리고 작가의 서랍에서 원고를 끄집어내 세상 무덤덤하게 브런치 작가 지원서를 바로 제출해버렸다.


"이게 되네?" 한 번에 브런치 작가 합격 후 든 생각이었다.


이로써 나는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자칭하는 것은 절대 자랑거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는다.


나는 '완벽주의자'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멋지게 포장한 채, 만약의 실패할 가능성에 나 자신을 대비시키고 있었다. 쓸데없이 높았던 나의 자존심을 방어하고 합리화 할 수 있는 적절한 이유와 명분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 결심,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실행력이었다.


나이키의 모토인 "just do it"처럼. 아무리 완벽한 결과물을 뽑아냈다 해도, 마지막 스텝인 '지원하기', '전송하기', '공유하기'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나의 존재를 알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얼마 전 읽은 김익한 교수의 <거인의 노트>에서 나온 기록에 대한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소유적 행위에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존재적 기록을 지향해야 한다. 기록은 결국 내 안에 내재화된 모든 지식과 경험을 타인과 나누는 체험이기 때문이다." <거인의 노트>

오늘 오랜만에 글을 쓴다.


사실 방금 전, 오랜만에 대학교 친구와 근황토크를 하면서, 그 친구가 블로그에 쓴 글들을 읽게 됐다. 잘 쓰인 글을 읽으며 스스로 자극도 받고 반성도 하며,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 영향을 많이 받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나 자신을 바깥세상으로 끄집어내며, 자극받을 만한 스티뮬런트를 자발적으로 아주 열심히 찾아야 한다.


최근에 내가 지향하던 라이프스타일과 삶의 목표점에 대한 의지력이 느슨해지고 흐려졌다는 것을 스스로 인지하게 됐다. 내 브런치 '작가에 서랍'에도 몇 마디로 시작만 해놓고 '발행'버튼은 누르지 못한 글들만 수십 개다.


갑자기 불타올라서 마구 지르다가, 그 열정은 쥐도 새도 모르게 금방 식어버리는 패턴의 결과물이다. 갑자기 필 받아서 와다다다 주저리주저리 써 놓고, 결국 마무리는 하나도 안 해버리는 패턴의 결과물.


나에겐 새로운 도전을 하는 용기보다 꾸준한 습관을 기르는 능력이 더욱더 중요하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나태해진 나를 따끔하게 깨우는 계기를 준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너무 고민하지 않고 이 글을 발행해 본다.


에라 모르겠다. Just d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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