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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오도라 Nov 01. 2023

현타온 음악가들 - 블루보틀 창업자 & 나

철학가, 음악가였던 그가 커피 창업을 하게 되기까지 - 나도...?

현재 난 실리콘밸리 팔로알토 다운타운에 있는 블루보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2015년에 오픈한 팔로알토 지점은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5분 거리에 있으며, 실리콘밸리 벤처기업들의 허브인 팔로알토 다운타운에 위치해 있다. 수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성장과 함께하며 이 지역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품고 있는 아이코닉한 공간이다.


오늘은 일요일 오후. 내 앞에는 코딩을 하는 엔지니어들, 계획서 피티를 만드는 사업가들, 그리고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앉아있다.



블루보틀과 실리콘밸리

블루보틀의 기업 철학은 실리콘밸리의 'laid-back' &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블루보틀은 정성 들여 천천히 만든 '완벽한' 커피를 제공하고자 하기에, 주문을 하고 커피가 나올 때까지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단순히 카페인이 필요해 '커피수혈'을 원하거나 빠른 고객 서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신, 완벽한 커피 한잔을 위해서라면 충분한 시간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장소다. 주로 마음적 여유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커피마니아들이 자주 찾는듯하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대부분 빠른 시간 내에 커피가 나오길 원한다. 편리성을 원하는 고객은 스타벅스를 가지만, 블루보틀에 가는 고객은 15분이 걸리더라도 양질의 커피를 받고 싶어 하는 이들이다.” -블루보틀 창업자, 프리먼


또한, 블루보틀의 깔끔하고 심플한 브랜딩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실리콘밸리인들을 취향저격한다. 넓은 공간과 충분한 워크스페이스들을 제공하는 부분 또한, 여유롭게 할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실리콘밸리인들에게 적합하다.

실시간 팔로알토 블루보틀 (이 사진 찍고 제목 바꿈)

블루보틀은 약 20년 전 로컬 파머스 마켓에서 소박하게 탄생하며, 샌프란시스코의 젊은 창업가들과 벤처기업인들이 단골손님이 되며 관심을 받기 시작하고, 곧이어 대규모 기업들에게 큰 투자금을 받는다. 2017년에 네슬레(Nestle)의 적극적인 지원까지 받게 되며, 블루보틀의 정체성은 그대로 지킨 채 하나의 대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한다.


사실 느린 서비스와 넓은 매장 공간은 회전율을 낮추는 요소들이기에, 매출적인 부분에서는 좋은 비즈니스 디자인이 아니다. 그래도 블루보틀은 처음 창업한 순간부터 고집스럽게 지켜오던 '완벽한 커피'만을 제공함에 대한 기업 철학을 유지하고 있다. '성공'을 이룬 후에도 끊임없는 도전을 하며 일관성 있는 철학과 신념을 유지하는 기업 뒤에는 창업가 제임스 프리먼이 있다.



음악인의 삶: 프리먼

블루보틀의 창업자 James Freeman과 나는 공통점이 있다: 전직 뮤지션이라는 것이다.


프리먼은 캘리포니아의 산타크루즈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 후, 샌프란시스코 음대에서 클라리넷으로 학사를 받았다. 그 후로 약 10년간 샌프란시스코 지역 오케스트라들에서 프리랜스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음악가의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그가 오케스트라 곡인 Holst의 "The Planet"을 6개월 동안 3개의 다른 오케스트라와 세 번이나 연주를 하게 되면서 음악인의 삶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다. 그는 "한 번만 더 연주하라고 했다면 나는 미쳐 날뛰며 클라리넷으로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후려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한다. 말 그대로 음악에 대한 '현타'가 온 것이다.


따라서 프리먼은 플랜 B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커피를 좋아했던 그는 집에서 직접 커피빈을 로스팅해, 커피빈백에 로스팅 날짜를 당당하게 표시한 후, 로컬 파머스 마켓에서 팔기 시작한다. 그의 소박한 창업은 오늘의 블루보틀이 되었다.


음악인의 삶: 나

나도 예전에 음악가의 삶을 살아봤다. 프리먼이 철학에서 음악으로, 그리고 창업으로 전환한 파격적인 커리어 체인지를 겪은 것처럼, 나 또한 음악에서 뇌과학 전공으로, 그리고 현재 IT 컨설팅펌에 입사하기까지의 과정이 있었다.

미국의 어느 콩쿠르에서 연주하는 나

가까이 살던 플룻티스트인 이모에게 레슨을 받으며 8살의 나이에 플루트를 시작한 나는, 당시 나이 때에 비해서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 절대음감이 있어서인지 습듭력이 높아, 가르치는 양에 비해 성장하는 속도가 빠르다고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플룻티스트들에게 마스터 클래스를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았고, 더욱더 큰 음악 세계에 눈을 뜨고 꿈을 키워간다.


중고등학생 때의 일상은 오디션, 콩쿠르, 공연들로 빽빽이 차 있었다. 최연소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유럽 투어도 함께하게 되고, 15살의 나이에 카네기홀 데뷔도 한다. 다른 음악가들에게 인정받는 기분은 짜릿했고, 음악과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나와 음악 사이의 갈등은 대학교에 플루트 전공 음대생으로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존경하는 플루트 교수님과 매주 개인 레슨을 받고 열정적으로 음악 수업들을 들으며 엔도르핀이 솟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음악 세계는 꽤나 잔인했다. 음악이 나의 전공이 되고 나의 본업이 되니, 수시로 평가받고 비교하는 과정의 연속은 부담으로 바뀌게 된다. 내가 순수하게 사랑했던 음악은 어느새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주요 요소가 되어있었고, 얼마 가지 못해 서서히 음악에서 멀어지게 된다.

카네기홀에서 공연하기 전 한 컷

사실 중간에 음악을 포기한 프리먼과 나는, 음악가들 사이에서 그저 음악을 포기한 ‘그저 그런’ 전직 음악인 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한 분야의 꼭짓점까지 찍어본 사람들이라는 강점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철학 전공자였던 프리먼이 음악을 공부하러 음대에 진학하겠다는 결정은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도 흔치 않은 발상일 것이다. 그 후에도 요식업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 또다시 도전장을 내민다. 이 두 번의 ‘비정상적인’ 커리어 체인지는 그가 음악과 커피에 대해 가졌던 애정을 보여주고, 그의 용기와 추진력을 보여준다.


프리먼의 10년 이상의 음악가의 삶에서 터득한 스킬들이 블루보틀의 성장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결국 삶에서 필요 없는 경험은 없기 때문이다.



벨기에 와플을 먹겠다는 다짐

고백을 하나 하자면, 사실 나는 산미 있는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나에겐 달콤 쌉쌀한 이탈리안 커피빈에서 나오는 고소한 향기가 더 매력적이다. 블루보틀의 커피는 대체적으로 산미가 들어가 있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싱글오리진 푸어오버도 마찬가지다.

산미 있는 커피를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블루보틀을 가끔 찾는 이유는 기업의 브랜딩과 공간에 대한 끌림이다. 귀염뽀짝한 로고가 그려있는 컵을 들고 다니면 왠지 모르게 '힙'해진 느낌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유럽느낌의 공간에서 선선한 바람과 함께 사람구경을 하고 있으면 창의력이 활성화되며 머릿속이 맑아진다.

결정적으로 난 블루보틀의 벨기에 와플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주 얇게 캐러멜라이징 된 와플을 베물면 따스한 습기가 은은하게 반겨주며, 와플의 촉촉한 속살이 나온다. 달콤함을 밸런스아웃 해줄 쌉쌀한 푸어오버 커피 한입까지 마신다. 아, 정말 환상의 맛이다!


오늘은 와플이 벌써 다 팔리고 없었다. 어찌나 아쉽던지, 나도 모르게 주문을 받던 점원에게 세상 다 잃은 표정을 지으며 "오우 노우..."를 외쳤다.


나는 다음에는 조금 더 이른 시간에 방문해 블루보틀의 벨기에 와플을 먹을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나도 프리먼처럼 내가 애정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그 커리어 체인지가 행여 ‘비정상적‘이고 파격적인 변화일지더라도, 과감하게 도전해보며 후회 없는 삶을 살겠다고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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