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illebotte 전시회,Art Institute of Chicago
토요일 오후, 미술수업을 마치고 혼자 시카고 미술관 (Art Institute of Chicago)을 찾았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Caillebotte의 전시가 막 오픈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 LA의 게티 뮤지엄, 그리고 시카고 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대규모 프로젝트였기에 더욱더 기대가 됐다.
최근 다녀온 전시 중 가장 인상 깊었기에, 그 감동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 이렇게 글로 남긴다. 이 글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환해지는 그림들을 (비록 실물을 영접했을 때의 전율만큼은 아닐지라도) 언제든 다시 꺼내볼 수 있는 나만의 작은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
1838 프랑스에서 태어난 카유보트는 법학 학사 과정을 마친 뒤 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1870년대에 예술가의 길을 선택한다. 그는 부유한 파리지앵 가정 출신으로 생계를 위해 작품을 판매할 필요가 없었기에, 오롯이 자신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었다.
카유보트는 자신의 삶과 주변에서 모든 영감을 얻었다. 19세기 인상주의(Impressionism)에 속하는 그는, 특히 일상 속 부르주아 계급의 친구들과 친척들을 자주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그의 회화는 인물보다는, '스토리'에 초점을 맞추며, 사진처럼 정확한 구도와 시점을 통해 관객을 장면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런 스토리텔링은 당시 19세기 파리의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선사했다.
이번 전시는 카유보트의 인간관계와, 그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그의 남성성에 대한 관점을 중심으로 작품을 소개했다.
젊은 시절의 카유보트는 파리 남쪽 Yerres에 있는 가족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냈다. 이곳에서 그는 수상 스포츠에 깊이 빠져들었고, 이후 그의 작품들에서는 낚시, 수영, 로잉을 즐기는 젊은 남성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로잉을 소재로 한 작품은 당시에도 흔했지만, 많은 인상파 화가들은 이를 남녀가 어울리며 사교를 나누는 풍경으로 묘사했다. 반면, 카유보트는 남성들만의 활동이자, 육체적 경쟁이 필요한 스포츠로 바라보았고, 그의 작품들은 로잉의 신체적 에너지와 역동성을 강조한다.
1876년 독립 인상파 전시회에서 드디어 데뷔한 카유보트. 그는 가족의 집을 벗어나, 파리의 거리와 이웃 풍경으로 시선을 확장하기 시작한다. 그는 실물 크기에 가까운 인물들을 둥심으로 대형 캔버스를 구성해, 관람객이 마치 장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을 유도한다. 특히 과장된 대각선 구도와 원근법을 활용해, 아파트 건물, 넓은 대로, 깊이감 있는 원경 등 현대 파리의 도시적 특성을 강조한다.
그는 이런 도시 풍경들을 1877년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했고, 당시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으며 여러 언론에 소개되기 시작한다.
카유보트가 성장한 시기, 파리는 대규모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폴레옹 3세의 도시 재개발 프로젝트는 파리를 더 안전하고 깨끗하며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추진됐다. 그의 가족도 이 변화의 한복판인 8구에 이사했고, 카유보트는 이 새로운 동네를 매일 산책하며 파리의 일상을 그림으로 담았다. 산책 중에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며 예술적 자극을 받기도 했다.
1878년 카유보트는 남동생과 함께 막 완공된 Opera Garnier 근처의 아파트로 이사한다. 새 보금자리는 4층에 위치해 있었고, 그는 발코니에서 파리의 거리를 내려다보며 새로운 시각으로 도시를 바라보게 된다.
카유보트는 이 발코니에서 자주 친구들을 초대해 시간을 보내며 영감을 얻는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거리의 움직임, 건물의 구조, 사람들의 흐름은 그의 도시 풍경화에 새로운 구도를 부여한다.
카유보트는 친구들이 많았던 인싸였다! 그는 주로 자신과 비슷한 사회적 배경을 지닌 미혼의 남성 친구들을 모델로 삼아 수많은 초상화를 남겼다. 그는 자신의 집이나 카페와 같은 익숙한 장소에 친구에게 포즈를 취하라고 하며, 이를 통해 현대 파리지앙 남성들의 일상적인 순간들을 작품에 담아낸다.
"He has friends whom he loves and who love him: he seats them on strange sofas, in fantastic poses" - Bertall, critique
그의 그림 속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공간은 그의 집과 작업실이다. 파란 회색빛 벽, 금빛 장식의 가구, 꽃무늬 소파 등으로 꾸며진 배경은 그의 생활공간이자 예술의 무대가 된다.
하지만 그는 특정 인물 또는 상황에 집중하기보다는, 파리 사회에서 일반화된 인물 유형 (댄디한 신사 또는 술꾼)을 표현하려 했다. 때로는 인물을 구체적인 배경에서 완전히 떼어내기도 하며, 오직 의상과 자세만으로 이야기의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카유보트가 남성 인물들을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실내 공간'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19세기 후반, 남성의 정체성은 사교 클럽, 스포츠 경기장, 거리와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 형상되었다. 그런 시대적 맥락 속에서, 그의 작품들은 당시의 젠더 규범을 흔드는 행위였다.
이런 경향은 1880년대 초 제작된 세 점의 누드화에서 정점에 이른다. 한 점은 여성의 나체를, 다른 두 점은 남성의 나체를 묘사한 대형 작품으로, 이는 당시 파격적인 시도였다. 19세기 후반의 누드화는 대부분 신화나 역사 속에서 이상화된 여성의 몸을 묘사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카유보트의 누드화는 자신의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인물들이 목욕을 하거나 옷을 갈아입는 가장 나약하고도 사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관객은 마치 열린 문틈 너머로 그 장면을 훔쳐보는 위치에 놓이며, 작품 전체에 묘한 긴장감이 형성된다.
물론 Degas와 같은 동시대 인상주의 화가들도 여성의 세면 장면을 종종 그렸지만, 남성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내밀한 공간에 배치한 사례는 드물었고, 당시에는 거의 금기에 가까운 행위였다. 특히 두 점의 남성 누드화는 당시 사회의 규범을 깨뜨린다. 특히 카유보트의 개인적 사생활에 대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점은 이런 작품들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1881년, 카유보트는 파리 서쪽 세느 강변의 Petit Gennevilliers라는 마을에 저택을 구입하며 파리를 떠난다. 이곳은 그가 회원으로 활동하던 파리 요트 클럽의 본부가 가까이 위치한 곳으로, 수상 스포츠와 자연을 사랑하던 그에게 완벽한 안식처였다. 함께 저택을 구매한 형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카유보트는 연인과 함께 함께 파리를 완전히 떠나 이곳에 정착한다. 당시 화가들 사이의 갈등과 내분으로 인해 그는 점차 전시 활동에서 멀어지게 되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삶의 방향을 택한다.
새로운 곳에서의 삶은 단순한 은둔이 아닌, 자신만의 속도로 그의 삶을 다시 그려 나간 예술가의 마지막 실험장이었다. 정원 가꾸기, 요트 설계와 레이스, 그리고 자연 속에서의 en plain air(야외 회화)는 그의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그의 저택은 때때로 지역 친구들, 그리고 옛 파리 시절 지인들이 방문하는 사교와 예술의 공간이 된다.
카유보트는 이곳에서 평화롭고 조용한 삶을 즐기다가, 1894년, 45세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으로, 그의 작품들 속에 숨어있는 귀여운 강아지들. 너무 귀엽다.
미국 3대 미술관 중 하나인 시카고 미술관 근처에 산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인 듯하다. 멋진 작품들 한가운데에 서있으면 마음이 웅장해지면서 예술을 통해서 느끼는 행복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껴진다. 앞으로도 여유가 생길 때마다 산책하듯 미술관을 찾아서 순수한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시간을 자주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