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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의 허기

쉼표를 앞세우고

by 송영희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십 년이 넘었고

손님도 많지 않아 며느리 데리고

간단하게 제사 모실 거라면서

힘드니 오지 말란다.

30년을 넘게 명절이면 막내며느리로서

제사에 쓰일 각종과일을 사갔는데

갑자기 끈 떨어진 낚시 바늘처럼

마음이 붕 떴다.

십 년 전만 해도 시댁은 종갓집이라

명절이면 찾아오는 손님도 많았고

아버님이 교직에 계셔서 제자들도

많이 와 하루 종일 30번도 넘게

상을 차린 것 같았다.

그러나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형님이 위로 3명이나 계셨고

모두 다 나보다 일을 잘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큰 형님의 지휘아래

시키는 일만 한 나였지만

형님은 그 많은 손님과 친척을

치러내시느라 허리가 휘었으리라

고생한 형님을 생각하면 고개 숙여진다.



추석날 하루 전에 모두 모여 앉아

부치개를 부치고

송편을 빚고

잡채를 하고

식혜를 하고

가마솥에 늦은 옥수수를 쪄서

친척끼리 모여 앉아

먹었던 그 시끄럽던 명절이 못내 아쉽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탈한 마음에 긴 연휴는 가슴까지

시리게 했다.

딸이 이럴 땐 가족 여행이 딱이라며

가족여행을 주선했다

반려견과 같이 갈 수 있는 곳

홍천 반스빌 리조트였다.

마침 한 곳이 비어있어서 갈 수 있었는데

도심을 빠져나와

나 만을 위한 나 만의 공간에서

휴식은 메마른 땅을 적시는 단비 같았다.



그곳에서 지은 시


쉼표 하나 찍었을 뿐인데



오늘은 나를 꺼내 가방에 넣는다

해야 할 일

알람 소리 놓아둔 채

홍천 반스빌 리조트에 왔다


나보다 먼저 와 있는 나

이제야 나와 닿고 있다


새소리보다 내 숨소리가

더 크게 들리고

시간마저 머문 이곳에

나를 내려놓고 멈춰 있다


크로아티아 한 귀퉁이를 보는 듯한

건물과 코 끝을 스치는 풀내음

마음 한 구석에 쌓인 피로를 데려가고

시간은 발끝부터 풀려 빗줄기 속에

흘려보낸다


나를 따라온 생각들이 물처럼 맑아지고

책 한 권

커피 한 잔

멍 때리는 지금이 나의 전부다


고요함은 나를 적시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은

참 오래 걸려 내게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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