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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Sep 20. 2022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나요?

아시시에서 만난 사람

여행에서 우연히 마주한 인연이 평생의 삶을 바꿔주기도 합니다.

그런 여행을 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제게 묻는다면 2012년에 갔던 아시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름조차 몰랐던 도시인 아시시가 제 인생의 중요한 여행지가 된 것은 민박집에서 우연히 만난 여행객의 소개 덕분이었습니다. 첫 해외여행으로 서유럽 일주를 하던 23살의 저는 영국에서 독일을 거쳐 로마로 막 들어와 테르미니 역 근처 민박집에서 묵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민박집에 사업차 10여 년간 이탈리아와 한국을 왕래했다는 아저씨 한 분도 묵고 계셨습니다. 로마 통이었던 아저씨는 해외여행이 처음인 우리에게 로마 시내 가이드 투어를 해주기도 하고 로마에서 가장 맛있다는 카푸치노 집에 데려가 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먹었던 카푸치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로마에 묵은지 3일째 되던 날 아저씨는 로마 근교의 고즈넉하고 좋은 도시가 있는데 한번 가보지 않겠냐며 저희를 아시시로 데려갔습니다. 이름도 처음 듣는 도시였던 아시시의 첫인상은 솔직히 그렇게 인상 깊지는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 지방 스바지오 산의 언덕 위에 있는 도시인 아시시는 기차를 갈아타고 버스에 내려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산 위의 도시였습니다.



 화려한 모습의 유적들만 보다 고요하고 소박한 산간마을에 오니 색달랐지만 해외여행이 처음인 20 초반의 초보 여행자에게 아시시는 조금 심심한 도시였습니다. 아시시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따른 지금의 교황님 덕에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지만 당시 아시시는 아는 사람만 아는 로마 근교의 소도시였습니다.


 흙먼지가 가득한 도로도 불편했고 무엇보다 레스토랑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념품 가게에서 이탈리아 특색이 보이는 마그넷을 사고 그 지방의 이름난 음식을 먹어줘야 여행을 하는 것 같은데 조용한 성당과 작은 집들이 모인 도시에는 사람들도 잘 보이지 않고 흰 수단을 입은 수도자들만 성당 주위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분위기를 가진 도시였습니다. 종교 벽화나 성당, 그리고 곳곳에 걸린 프란치스코 성인의 그림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건축물들과 멀리 보이는 산아래 전원 풍경 그리고 그곳을 조용하게 거니는 수도자들까지 도시 전체가 수도원 같았습니다.

 그 분위기를 모두가 느꼈던 것인지 같이 갔던 일행 모두가 말이 없어졌습니다. 오는 기차 안에서 내내 수다를 떨며 즐거워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저마다의 생각을 하나씩 품은 채 도시를 걸었습니다. 성당 안에 들어온 듯 큰 소리도 내면 안될 것 같은 마음에 마을 입구로 돌아올 때까지 웃음소리도 한번 내지 않았습니다.




  보름 이상 지속된 여행으로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불편한 야간열차를 타고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돌아다니며 피곤이 쌓였고 동행자들과의 불편한 감정들도  해외여행을 망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모른  해왔던 것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나도 모르고 있던  피로와 불편한 감정들은 마을을  바퀴 돌고 나니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마법이라도 부린 것일까 싶을 만큼 마음이 평안해졌습니다. 산아래서 불어오는 바람이 머리에 흐른 땀과 함께 모두 날려버린  같습니다.


단순히 그 경험만으로 아시시가 제 인생의 영향을 끼친 여행지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청년 때문에 죽을 때까지 아시시를 잊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청년을  것이 프란치스코 대성당이었는지 키아라 성당이었는지 루피노 대성당에서였는지는 솔직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15년도  지난 지금도  청년의 얼굴 표정과 자세는 또렷이 기억납니다. 성당 내부의 벽화와 십자고상을 구경하며 나오던 길이었습니다. 유명하고 화려한 십자가도 아니고 입구에 놓은 작은 예수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청년이 있었습니다. 우측에는 누나쯤  보이는 여성이 청년의 어깨에 손을 얹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청년의 간절함이 멀리서도 보였습니다. 특별히 특이한 자세를 취하지도 않았는데 머리카락에서까지  간절함이 뿜어져 나오듯 온몸으로 기도하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는 지금도 저는 전율이 느껴집니다. 지금껏 어떤 종교 화보다 인상 깊었던 모습이었습니다.


 '저렇게까지 기도하는 데 들어주시지 않는 신은 없을 거야. 내가 하느님이라도 저건 들어주지 않을 수 없어'


 일행들이 성당을 빠져나간 후에도 저는 한참을 그 청년을 바라보고 서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초등학교 이후 해본 적이 없던 기도를 했습니다.

 

 '  사람의 기도를 제발 들어주세요. 들어주시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말씀은 거짓말일 거예요. 저렇게 간절한데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한참을 저는 성당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신앙의 원천에는 항상 그 청년이 있었습니다.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항상 스스로에게 묻고는 했습니다.


내가  사람처럼 간절히 기도했던가?

간절히 원했던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청년을 떠올리며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만큼 간절했는지. 그 기간이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항상 저는 그만큼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청년에게 힘들 때마다 항상 혼자 안부를 물었습니다. 기도는 이루어지셨는지. 잘 지내고 계신지 말이죠.


제 공무원 시험의 목표는 꼭 합격해서 다시 한번 아시시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 청년을 만나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시험에 합격하고 바로 저는 이탈리아로 향했습니다. 다시 간 아시시는 많은 것이 변해있었습니다. 도로는 더 깔끔해지고 좋은 레스토랑도 많이 생겼고 관광객도 몇 배로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그 청년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도가 이루어져서 그가 다시 이곳에  일이 없는  같아 기뻤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그를 떠올리며 그가 행복하기를 빕니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 앞에 가면 세상에 패배한 것처럼 고개를 떨구고 말을 타고 있는 '패잔병 프란치스코' 동상이 있습니다. 페루지아 전쟁터에 나갔던 23세의 청년 프란치스코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아시시로 귀환하던 날을 표현한 동상이라고 합니다. 분명 프란치스코 성인은 세상에 패배하고 아시시로 돌아왔지만 그 도시는 그분을 안아주었고 치유해주었을 것입니다.  


 데이비드 보위는 아시시를 일컬어 '지상에서 본 천국'이라고 했다는 데 제게 아시시는 '지상의 수도원'이었습니다. 산 위에 요새로 만들어진 작은 마을은 세상에서 받은 상처를 모두 다 치유해줄 것 같은 고요와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년도 아씨씨에 왔던 것일까요. 패잔병의 모습으로 아시시에 왔을지도 모르는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제게 치유와 인내를 선물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제 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이 하나 더 있었네요. 로마 테르미니역 민박집에서 만났던 그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맛있다던 카푸치노도 맛보지 못했을 것이고 이렇게 아시시를 그리워할 일도 없었을 겁니다. 어떤 우연과 인연이 제 인생을 어떻게 바꾸어놓을지 몰라 오늘도 저는 여행을 꿈꿉니다. 다음 여행지에서 저는 누구를 만나 또 어떻게 변해있을까요?



덧, 본문에 사용된 사진은 모두 올해 8월에 촬영된 아시시의 모습입니다.


ⓒ 사진: 허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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