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에 가끔 몇 년 전 오늘이라는 알람이 뜬다.
네이버 mybox를 설치해놓았더니 저장했던 사진을 기반으로 몇 년 전 그 날짜에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사진이 튀어나오면 그게 벌써 그렇게 오래전이었어란 세월의 체감과 함께 추억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10년 전 오늘을 확인하세요'라는 알람에 앱을 실행해보니 사진이 몇 장 뜬다.
높은 사다리를 타고 벽면서가에 책을 꽂고 있는 모습이다.
오늘 뜬 사진은 평소와 달리 추억 필터에 보정된 그리운 기억만은 아니다.
정확히도 10년 전에 나는 저기에 있었다. 입사 한지 딱 1년 정도 지난 9급 신규 사서였다.
뭣도 모른 채 서울의 대표도서관을 건립하게 됐다는 자부심과 신규의 미숙함 그리고 열정만 가지고 저곳에 던져졌다.
과장님(사무관)을 포함하여 정확히 8명의 사서가 저 큰 도서관 개관을 맡았다. 말 그대로 건물 하나와 책만 덩그렇게 던져주고 개관을 해내라고 했다. 나와 내 동기는 입사 1년 차 신규였고 자료실은 4개나 되었다. 보통 규모의 도서관도 아니었다. 우리는 힘든지도 모르고 닥치는 일을 하느라 바빴다. 모두가 개관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날짜는 정해졌고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서울도서관 사업소가 설립되고 팀이 꾸려진 것이 9월 28일이다. 개관은 10월 26일로 정해졌다. 책의 날 행사가 서울광장에서 한다는 이유였다.
지금이라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잘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부족한데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았다. 자료실을 어떻게 구성할 지부터 인테리어 배치, 도서관 전산기기 및 프로그램, 홈페이지 구성, 도서 배치 같은 일부터 규정을 만들고 예산을 따오고 집행하는 일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를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
게다가 모든 일은 한 달만에 해야 했고. 건물은 애초에 도서관으로 건립된 건물이 아니었다.
팀원들 중 공공도서관에서 일한 경험이 없는 사서들이 대부분이었다.
옛시청사를 도서관으로 꾸민다는 것은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유서 깊고 낭만 있는 일이었지만 도서관을 꾸려야 하는 사서에게는 아니었다. 악조건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유명해진 저 벽면서가를 어떻게 채울지가 그 당시 나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매일 고민했지만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고 결국 개관 열흘 전에야 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벽면에 구역을 나누어 색지를 붙이고 책을 꽂기로 했다. 당연히 인력은 없었고 사서들이 직접 나서서 사다리를 타고 책을 꽂았다. 저날 10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저 사다리에 올라가 계신 사서분은 아직도 서울도서관에 계신다. 그리고 우리가 꽂았던 저 책들과 가구, 북트럭 모두 그대로 여전히 자리에 남아 있다. 세월의 흔적은 더해지고 조금씩 나아지긴 했지만 내게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인 곳이다.
그때의 열정과 괴로움, 미숙함이 떠올라 사진을 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진 한 장에 세월이 담겨있다고 말하고 싶다. 2D의 사진에 담긴 시간들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해졌다.
개관 후 첫 일주일에만 방문자가 3만 명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개관 전날까지 서가에 책은 다 꽂히지 못했고 밤을 새워서 직접 모두가 서가에 책을 꽂아야 했다.
서울광장 중심에 옛 구청사에 도서관이 개관했다는 소식에 서울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회원증을 발급받았다. 그 인력을 감당하며 우리는 밤에 남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했다. 언젠가 유튜브 인터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결국 나는 일을 하다 탈이나 응급실에 실려갔다. 하지만 자료실을 지킬 사람이 없어 나는 다음날 회복하지도 못하고 출근을 했다. 내 27은 모두 저곳에 들어가있다.
2012년 10월 24일 개관했으니 올해가 딱 서울도서관 개관 10주년이 되는 해다.
딱 1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그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금 나는 그곳에 없다. 10주년 행사를 어떤 것을 준비했을지 누구보다 궁금한 이용자가 되었다.
서울도서관 개관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내 추억이자 업적이다. 지금까지 처럼 쭉 사랑받는 도서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