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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현 Nov 25. 2022

스쿼시를 치다가

열등생의 다짐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스쿼시를 치고 있다.

9월부터 시작했으니 배운 지 3개월 정도 된 셈이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야근도 수업 일정에 맞추어 잡고 만나는 사람마다 스쿼시를 권할 만큼 매력에 흠뻑 빠져있다. 잘 치고 싶은 마음에 주말에 스쿼시장을 예약해 혼자 연습을 하기도 한다. 이런 마음과는 반대로 몸은 잘 따라주지 않는다.


 나는 원래 알아주는 몸치로 운동신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다. 중학교 시절 체육시간에 달리는 나를 보고 체육선생님은 혀를 끌끌 차며 거북이도 너보다는 빠르겠다고 말했다. 달리기나 구기 종목은 학창 시절 내내 해본 적이 없고 어쩌다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무슨 핑계라도 대서 빠지려 했다. 경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데다 모두의 비웃음을 살 게 뻔했기 때문이다.  


 순발력뿐 아니라 유연성도 전혀 없어 요가 같은 운동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허리를 숙이면 손끝은 바닥이 아닌 무릎쯤에 닿고 다리를 좌우로 벌리는 동작은 지금도 전혀 되지 않는다. 내가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을 보면 과장하지 말라던 사람들도 입을 쩍 벌리고 할 말을 잃는다.


 그럼에도 도전은 참 많이도 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로 이어졌다. 바다에서 멋지게 수영하고 싶은 마음에 등록했던 수영장은 같이 수강 신청을 했던 동료들은 이미 500m 코스를 킥보드를 가지고 거뜬히 오가는 모습을 홀로 뒤편에서 발차기만 3주를 연습하며 쳐다보다 그만두었다. 

 자세교정을 위해 시작한 필라테스도 마찬가지였다. 개인교습과 그룹수업 모두 받아보았지만 선생님들은 몸을 쓰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얼마간 자세도 봐주고 교정도 해주다가는 결국 포기했다.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내 몸은 제어 장치가 고장 난 기계처럼 제멋대로 움직였고 처음에는 친절하게 알려주던 선생님들도 점차 안 되겠다 싶었는지 내가 틀린 동작을 해도 가만히 두었다. 그런 상태로 나는 필라테스를 3년이나 해냈다.


 나는 운동 DNA가 아예 없다고 해야 할 사람이었다. 지금도 몸을 쓰는 일 모두에 자신감이 없다. 그래서 항상 체육관에 가면 주눅이 든다. 


 스쿼시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척척 공을 받아내고 공이 오는 방향으로 달려갔지만 내 몸은 몇 번이고 코치님의 설명을 들어도 나아지지 않는다. 다행인 것은 이번 스쿼시 선생님은 10번이고 똑같은 말을 해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또다시 11번째 설명을 해준다는 점이었다. 용기를 좀 더 내보기로 했다. 10번 해서 되지 않으면 20번 하면 언젠가는 되겠지란 마음으로 참아보기로 했다. 국가대표로 나갈 것도 아닌데 잘 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실력에도 불구하고 스쿼시가 너무 재미있었다. 조그만 고무공이 라켓에 탱하고 맞을 때 울리는 소리가 좋다. 그냥 경기를 보고만 있어도 하루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비 오듯 흐르지만 그 느낌이 너무 상쾌하다.


 좋아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스쿼시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라 두 명이서 공을 주고받으며 치는 라켓스포츠이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상태인 내가 민폐인 경우가 많다. 개인교습이 아니기에 대부분 수강생들과 상대로 공을 치는데 랠리가 되지 않으니 내 상대는 오래 공을 칠 수가 없고 좋은 공으로 연습할 수도 없다. 혼자 열심히 하는 것은 괜찮은데 남에게 민폐인 이 상황이 견디기가 힘들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게 된다.


 다행히 같이 수업을 듣는 모두가 이런 나를 배려를 많이 해준다. 파이팅이라고 외쳐주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공을 더 잘 칠 수 있는지 조언도 해준다. 배려 깊은 선생님 역시 서브를 넣으려는 내게 항상 파이팅을 외쳐준다.


 하지만 몇 달째 배우지만 똑같은 지적을 받는 수강생. 열심히는 하는 것 같은데 도통 늘지 않고 그대로인 수강생. 그게 나다.

 가끔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배려를 해준다고 해도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괜스레 우울한 마음이 들어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제 역시 그런 기분이었다. 2명씩 짝을 지어 수업을 진행하려는데 그때 항상 걸림돌은 나다. 선생님은 나를 누구와 짝지어주어야 그나마 경기가 가능할지 항상 고민한다. 같이 짝이 된 사람도 표정이 좋지 않다.

 왜 내가 눈치를 봐야 하나 싶어 때려치울까 생각을 하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법 공부도 제대로 하고 가지 않은 외국어 생활 처음의 30대 학생인 나는 거기서도 주눅이 들어 있었다.

 항상 틀린 대답을 하고 선생님의 설명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기말고사 점수는 항상 낮았다.

 하지만 나는 스페인어를 그만두지 않았다. 내 실력을 인정하고 그래서 더 열심히 배우려고 했다. 이해할 때까지 질문하고 말도 안 되는 문장이라도 말해보려 했다. 

 반 아이들은 그런 나를 은연중 무시하는 듯했다. 두 달 정도 지났을 때 선생님이 낸 문제를 반 아이들 모두가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내가 정답을 맞혔다. 그러자 상위권의 실력을 가진 싱가포르에서 온 아이가 내게 큰 소리로 물었다.


 "네가 저걸 어떻게 알아?"


 기분 나쁜 말이었다. 나는 정답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이미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에게 따뜻했던 선생님 산티아고 그 학생을 저지했다. 


 "왜 네가 모르는 것을 로사리아가 알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수업 시간에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로사리아야. 오늘은 로사리아가 제일 잘하는 분야가 나온 것이고 사람마다 잘하는 분야는 다른 법이야. "


 그 아이는 무안해하며 끝내 내게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런 것으로 주눅 들기에 스페인에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내게 짧고 소중했다.

 진부하고 닭살 돋는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답답해도 계속했다. 몸치에 시간이 오래 걸린 다는 것이 내 크나 큰 단점이지만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내 장점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그 아이는 두 달 남짓 수업을 듣고 방학이 끝나자 본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 뒤로도 계속 수업을 들으며 현지인과 얼추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이 되었다.


 꼭 스쿼시가 아니더라도 모든 일이 그렇다. 포기하지만 않으면 실패는 없다.

 자괴감에 자존심에 그만둔다면 나는 좋은 취미를 잃고 영원히 못하는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

 그 경험이 있기에 나는 믿는다. 뭐든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실패는 아니라고 언젠가 무라도 썰 날이 올 거라고 말이다. 다만 내가 스쿼시를 잘 치는 데는 시간이 조금 더 많이 걸릴 것 같아서 인내심도 같이 길러야 할 것 같다. 경험이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는 사실을 오늘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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