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이는 어려서부터 '제발 그만 읽자'라고 할 때까지 책을 읽었다. 아줌마들의 어마무시한 수다밭에서도 묵묵히 두어 시간 너끈히 책을 읽던 앵글이었다. 그래서인지 글을 읽고 빠르게 요약하는 능력은 탁월했다. 그것이 꼭 책 읽기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 부분 다독이 준 선물이라 여겨진다.
아이를 한 명만 낳아 키웠다면 세상 모든 아이들이 다 앵글이 같으리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 한글을 떼고, 책을 읽고, 학교에 다니는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 잘 해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자신했겠지만, 전혀 다른 또 다른 아이는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렸다.
한글에 대한 관심보다는 산책로의 풀과, 벌레, 꽃, 자연의 흐름, 날씨, 변화무쌍한 구름, 돌멩이 같은 것들에 무한 집중력을 보여줬던 동글이였다. 동면을 깨고 피어난 민들레가 꽃을 피우고, 솜사탕 같은 홀씨 뭉치를 만들어 휘휘 날리는 모습을 세심히 관찰하며 가끔은 깜짝 놀랄만한 표현력을 보여주던 동글이를 키우며 신기하고 기특했던 나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높아지면서 아이의 창의성과 풍성한 표현력보다 수학문제 하나 맞고 틀리고 가 더 중요해졌다.
요즘 수학 문제는 왜 이리 어려운지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엄마가 설명해 주기 어렵다. 오히려 아이가 풀어낸 게 신기하고 기특할 정도다. 이러니 '사교육 도움 없이 아이 혼자 공부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생각되니 아쉽고 안타깝다.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논술학원에 보내게 되었다. 숙제라는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책을 읽어야 하고, 그 주의 주제에 맞춰 토론 준비를 하게 되는 과정이 동글이에게 필요하다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재미있어하고, 재촉하지 않아도 꼬박꼬박 숙제를 해 간다. 앵글이의 말에 의하면 '엄마는 동글이에 대한 기대치가 참 낮은 것 같아. 당연한 것을 하는데도 기특해하고, 야단맞을 상황 같은데도 그냥 넘어가.'란다. 하나를 키워봐서 두 번째 겪는 일에는 좀 여유로워져 그런가 보다. 사실 별로 화가 나지 않는다. 이 시기가 지나가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움직일 날이 올 거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려나.
논술 숙제는 잘 보여주지 않는 동글이인데 등교 후 동글이 책상에 어젯밤 해 놓은 노트가 펼쳐져 있었다. 이번주는 [종이책]에 대한 디베이트를 할 모양이다. 스마트기기에 익숙한 동글이라서 전자책을 선호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종이책에 대해 긍정적으로 적어 놓았다. 동글이의 생각이 내 생각과 같아서 내심 반가웠다. 아이는 생각보다 더 빨리 자라고, 제 나이에 맞게 성장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