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침반 Jun 20. 2023

수거함

2023.06.19

2023.06.12


이미 2년 전의 일이다.


5년의 여정을 끝으로 박사과정을 마치지 않고 학교에서 나오기로 결정했었다. 그 사이에 석사학위 수여 요건은 충족했으니 석사 졸업장이 발급될 거라는 안내도 받았다.


앞으로 어디에서 지낼지가 확실치 않던 상황이었어서 형의 집 주소로 졸업장 수신지를 입력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 보니 잘 도착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정신이 없던 걸까, 굳이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던 걸까.)


대학원 졸업식 날을 얼마 남기지 않고 모든 절차가 급박하게 진행되었던 터라 부모님이 오시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었다. 아직 코로나 상황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학과에서 석사 졸업생을 위한 행사를 별도로 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졸업식 당일 아침에는 그 해에 학위를 마치는 친구들과 기념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졸업식 가운이나 모자 대여를 미리 신청하지 못했고, 상황을 괜히 복잡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절대 그럴 수 없다며 전날 저녁에 학교 기념품점 앞에 놓인 수거함을 뒤져서 기어이 사이즈가 맞는 가운과 모자를 찾아준 친구들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덕분에 기념 촬영도 함께 할 수 있었고, 그날의 추억을 사진으로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그 5년의 시간에 마침표를 끝내 찍지 못했을 것 같다. 그 고마움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있을까.


갑작스러운 소식에도 진심을 다해서 축하해 주고, 결국에는 멀리 이사를 가야만 하는 진로를 선택했는데도 변함없이 응원을 해주던 그 마음들.


오늘 올라온 올해 졸업식 사진들을 보며 수거함 속의 검은색 가운이 문득 떠오른 건, 아마 그 마음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여전히 짙게 남았기 때문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원근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