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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족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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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Jan 23. 2024

대화는 숙제다

아들처럼 남편과 즐겁게 대화하는 건 나에게 숙제다.

문자에 익숙해졌다. 보낸 사람의 시간과 상관없이 내가 읽고 싶을 때 확인할 수 있다. 전하고 싶은 내용을 상세히 남기면 난 읽고 궁금한 부분만 질문하면 답변이 왔다. 그렇게 2년 간 길들여진 탓일까. 전화보다 문자가 편했다. 그렇게 나의 일방적인 대화는 시작되었다. 상대가 원하든 말든 나의 관심 영상을 공유했고 상대도 그 영상을 같이 보고 이야기 나누길 바랐다. 기다림 속에 피로가 쌓였고 혼잣말은 허공을 맴돌았다. 전화에서 문자로, 문자에서 무반응으로.


친할수록 무거운 이야기는 돌려서 해야 한다. 무거운 기분은 살짝 숨기고 해맑은 표정으로 맛있는 차와 함께. 좋은 분위기에 좋은 이야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이야기가 분위기 깨는 걸 원치 않기에. 하고 싶은 말이 생각 주머니를 거치지 않고 불쑥 나와 나를 당황스럽게 하는 일이 잦아지자 서서히 말을 끊었다.


저녁 설거지를 하는데 아들이 다가와 사진을 내밀었다. 그동안 찍은 인생 네 컷 사진이라며.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올 겨울방학 롯데월드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아들 책상 정리 때 본 사진이지만 설명을 들으니 인생 네 컷이 달리 보였다. 사진 중 여자 친구가 있다는 말에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봤지만 눈에 들어오는 여자 아이는 없었다. 아들은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사진으로 외모만 보는 내 말과 행동에 마음이 상했다.


아차 싶었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은 아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고 이야기하던 아이였다. 요즘 표정이 밝고 전화통화가 잦으며 뭔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언제 만났는지, 어떤 점이 좋은지 슬쩍 물으니 통상적인 답변만 했다. 자신의 감정보다 여자친구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어떻게 감정을 숨길 수 있을까.


난 기분이 그대로 드러난다. 좋을 땐 해맑게, 화날 땐 난폭하게. 가깝다는 이유로 가족에게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가족이니깐 솔직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다 아들은 아빠 이야기를 꺼냈다. 말다툼을 하고 기분이 상하면 침대에 누워 자거나 도서관으로 가는 엄마와 달리 집안일을 하며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던 아빠 이야기를 했다. 두 분이 왜 싸우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아빠를 보며 배우고 있다고. 얼굴이 뜨겁고 부끄러웠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 당황스러웠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여자를 대하는 방법을 아빠를 보며 배우고 있었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리라. 그것도 멋진 방법이지만 상대는 표현하지 않으면 네 마음을 모를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들과 대화를 나누는 건 즐겁다. 고민을 대화에 녹여 이야기하다 보면 대화 속에 답을 찾곤 한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아들은 내가 잔소리하는 태도에 대해 지적했다. 말이 적은 남편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남편의 속마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기에. 자기는 말보다 행동이 편하다고. 아들처럼 남편과 즐겁게 대화하는 건 나에게 숙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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