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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족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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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Jan 15. 2024

넘지 말아야 할 선

누구나 감추고 싶고 보호받고픈 선이 있다.

책상에 선을 긋고 넘어오지 말라고 했던 초등학교 시절 경험은 누구나 있다. 책상이 좁으니 책은 나눠보고 공책에 필기를 했다면 그런 선이 필요했을까.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갖지 못한 내 공간에 대한 애착과 책과 공책을 펴고 수업에 집중하고픈 열정이 컸다. 한글을 떼지 못한 부끄러움을 숨기고픈 수치심에 선을 그었는지도 모르겠다. 낯선 공간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전략이었다. 누구나 감추고 싶고 보호받고픈 선이 있다.


속초로 가을 여행을 갔다. 아버지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는 가족 여행이었다. 식당을 정하고 일정을 잡는 것도 아버지를 먼저 생각했다. 날이 맑았으면 좋았지만 비가 왔다. 일정대로 아침을 먹고 소화시키기 위해 바닷가를 걸었다. 우중 바닷가는 생각보다 운치 있었다. 따뜻한 바다가 우리를 반겼다.


부산 사나이답게 아버지는 바다를 좋아했다. 모래사장에서 자식과 손자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흐뭇해하였다. 숙소 체크인 시간이 남았지만 몸을 녹이기 위해 숙소 로비에서 따뜻하게 몸을 녹였다. 점심시간이 애매하여 어머니가 준비한 간식으로 요기를 했다.


저녁은 제철인 홍게찜을 무한리필로 먹었다. 위암수술과 당뇨가 있는 아버지들은 단독 세트를 시켜드릴까 했는데, 끝까지 맛있게 드셨다. 마지막에 손질하는 우리에게 먹으라며 손을 놓았다. 홍게로 배를 채우고 숙소에서 작은 생일파티를 열었다. 아버지와 조카의 생일파티. 늦은 시간이고 저녁을 과식했기에 생일파티 후 아버지는 주무시길 바랐지만 우리와 있는 걸 원했다. 앞에 먹는 게 있으니 아버지는 자꾸 손이 갔다.


부모님은 끼니를 거르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챙겨드려야 했는데 그걸 놓쳤다. 저녁을 많이 먹기 위해 간식으로 점심을 드리고 홍게를 많이 먹었다는 이유로 밥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다. 그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늦은 시간 먹는 것을 자제하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화를 냈다. 적당한 양을 챙겨드리며 그것만 드시라고 해도 되는데 난 늦은 시간 자제 못하는 아버지를 탓했다. 아버지를 위한 여행이었는데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그 순간을 참지 못했다. 여행을 다녀오고 오빠가 통화하며 그 이야기를 자연스레 꺼냈다. 두 살 차이라 철없다고 생각한 오빠가 어른처럼 보였다. 나의 잘못을 돌려 이야기해 주었고 그런 상황에서 서운하지 않게 행동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난 그동안 마음속으로 반성하던 마음을 용기 내어 이야기했다. 내가 잘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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