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잘할것인가, 소통을 잘할것인가
우리는 누구나 기대를 품고 살아간다. 기대는 좋은 것이다. 어떤 일을 앞두고 설레게 하고, 그 일이 이루어졌을 때 만족감을 준다. 그러나 기대는 동시에 나쁜 것이기도 하다.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안과 화, 서운함과 섭섭함이 쌓여 결국 미움으로 자라난다.
문제는 기대를 선택할 수 있느냐에 있다. 내가 지금 어떤 기대를 품고 있는지 인지한다면 그 기대를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기대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결국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상대를 미워하게 된다. 그 미움에 사로잡혀 감정이 관계를 끌고 가는 상태가 된다. 나는 이 상태를 ‘감정의 신’이라 부른다. 그 순간 내 감정은 틀림없다고 믿고, 내 생각은 왜곡되지 않았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때 내 안의 감정은 벽이 된다. 그 벽은 어떤 틈도 허락하지 않는다. 미움이라는 감정은 결국 내가 만든 생각의 방에 갇혀 있는 상태다. 그 방은 내가 상대방에게 기대했던 역할이 무너져 제로로 돌아간 상태를 의미한다. 역할 기대가 많았던 사람일수록 좌절을 자주 경험하고, 그 좌절은 분노와 억눔으로 쌓여 결국 미움으로 굳어진다.
부부, 연인, 부모와 자식, 직장 동료 등 관계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역할 기대를 갖는다. 예를 들어 아내로서, 엄마로서, 연인으로서, 딸이나 아들로서 기대하는 행동들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무의식적 역할 기대다. 이해받고 싶고, 공감받고 싶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 어린 시절 부모에게 품었던 기대 같은 것들이다. 관계란 결국 나와 너가 하나로 융합되기를 바라는 본능적 기대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서로의 기대를 무시하거나 모른 척하며 살아간다. 그것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가? 사실 다 의식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자기 생각방식에 빠져 있고 그 생각에 빠져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신 과잉된 자기의식을 가지고 살며, 그 자기의식은 자기비난의 소리로 가득 차 있다. 그 소리에 묻혀 다른 소리를 들을 여유가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주체성이다. 내 감정은 누가 대신 해결해줄 수 없다. 미움이라는 감정은 내가 스스로 탈출구를 찾아야 한다. 방법은 간단하다.
먼저 내가 상대에게 원하는 역할 기대를 적어보는 것이다. 많을수록 좌절도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다음으로는 상대가 나에게 원하는 역할 기대를 적어보는 것이다. 서로의 기대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미움에서 벗어나 다시 도로 위에서 만난 우리가 된다. 바로 그 자리에서 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미움을 다르게 보는 방식은 단순한 상상의 탈출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내 감정을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기대가 충족되지 않아 생긴 미움에 대해서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데가 아니라, 미움을 밉구나. 감정을 수용하는 단계이다.
그래야 내가 스스로 인지하고 벗어날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 바로 내 감정을 내가 경청해주는 시간이다. 이래 이래 이래서 밉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내가 상대에게 받고 싶었던 역할기대에 대한 항목이 있었고, 내가 원했던 마음이 있던 자리이다.
인간이에게 인간의 본능적 기대가 있다. 하지만 나만큼 상대도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소통이 시작할수 있다. 미움의 감정에서 자라난 나만의 역사를 이해하는길이 자기돌봄 자기내면관리가된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모든 내용을 잊더라도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내 마음과 내가 원하는 행동의 융합은 자기 나다움을 회복하는 길이다. 반대로 내 마음과 타인에게 원하는 행동만의 융합을 추구하는 길은 지속적인 좌절과 미움의 길이다. 어떤 길을 선택하고 결정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