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을 함께한 ‘알미’가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평생을 집의 막내로 사랑을 독차지한 예쁜 강아지입니다. 알미는 어디를 가나 가족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특히, 냉장고 문을 열 때면 슬며시 다가와 발등에 얼굴을 비비며 애교를 부렸습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몰래 간식을 챙겨주곤 했습니다.
알미가 13살이 되던 해, 아이는 꽤나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오랜 폐렴으로 밤새 기침을 하는 날이 잦았습니다. 병원에 다녀도 별다른 방도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보내줄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합니다.
26년간 한 번도 주변의 죽음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기에, 알미가 가족의 곁을 떠난다는 것이 쉽게 상상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겨울날, 가족 모두가 잠든 새벽에 아이는 조용히 숨을 거뒀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다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봅니다. 여전히 알미가 따라와 금방이라도 발등을 간지럽히며 애교를 부릴 것만 같습니다. 가족 모두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저마다 알미의 빈자리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별의 잔상은 오래 남습니다. 때론 잔상이 너무나 뚜렷해 그 대상이 눈앞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옵니다. 시간이 약이라지만 마음의 시계는 고장 난 듯 더디게 움직입니다.
얼마 전 물리학자인 김상욱 박사가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물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죽음’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보통 죽음을 기이한 현상으로 생각하는데, 사실 물리학자의 눈으로 이 우주를 보면 이 우주에는 죽음이 자연스러운 거예요. 오히려 산다는 것, 생명이 더 이상한 거예요. 지구의 물과 돌과 땅과 바닷물 다 죽어 있어요. 즉 우주는 죽음으로 충만하고, 죽음이 가장 우주의 자연스러운 상태인 것 같아요.
원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죽은 상태로 있다가, 이유는 모르지만 갑자기 우연한 이유로 모여서 생명이 되고, 생명이라는 정말 이상한 상태로 잠깐 머물다가 죽음이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거죠. 그래서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나면, 내가 살아있다는 이 찰나의 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게 돼요.
원자는 영원불멸해요, 원자는 지금 내 몸을 이루고 있지만, 죽으면 다시 뿔뿔이 흩어져서 나무가 되거나 지구를 떠나 별의 일부가 될 수도 있어요. 우린 원자의 형태로 영생할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원자 형태로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들은 위안을 주더라고요.”
정말 죽음을 받아들이는 다양한 생각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죽음은 ‘영원불멸한 원자의 형태로 되돌아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무심코 바라본 나무, 바위, 심지어 밤하늘의 별에도 우리가 이별한 생명들이 원자의 형태로 녹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알미는 온 우주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원자’ 상태로 돌아갔습니다. 이제는 알겠습니다. 내가 숨 쉬고, 보고, 듣는 모든 것에서 그 아이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요.
더 이상 알미의 잔상이 가슴을 무겁게 하지 않습니다. 언제든 그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아름다운 형태로 우리 가족과 함께할 테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