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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이머 Jan 31. 2024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가시나무_시인과촌장@1988 (2018 한동근ver.)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람들로 당신의 편한 곳 없네


나의 반려인에게 전하고 싶은 고백이다. 오랜 친구이자 평생의 연인이지만 아껴주고 사랑해주지 못한 송구함이 먼저인 짝꿍. 


언제부터인지 신곡보다는 리메이크곡이 더 좋다. 새로움보다 익숙함이, 설레임보다는 편안함이 더 좋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결같은 반려인에게만은 처음 만난 설레임과 더 깊어진 마음을 기대한다. 신곡은 안 좋아한다면서 옛 노래 원곡보다는 리메이크를 더 좋아하는 이중성처럼.


결혼전에는 동성친구들과 만나면 미래 반려인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그리고 결혼한 후로는 현재 반려인 욕하느라 입에 침이 마른다. 대화 내용은 단순하다. 케이스는 다양하지만 결론은 반려인들의 한결같음이 답답하고 서운한 마음이다. 설거지 한번 안 하는 무심함이 섭섭하고 주말 늦잠의 여유도 야속하기만 하다. 이제 커가는 아이들과 복작거리는 워킹맘들은 손 하나 덜어줬으면 하는 소박한 기대를 털어놓으면서 한숨을 내쉰다. 나는 그 중에도 가장 선구적인 불평론자로 누구보다 소박한 바램들이지만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욕구들을 찾아내 일행들을 일깨우곤 한다. '난 서방한테 꽃 한 송이 받아보는 게 소원이야', '데이트는 커녕 애들이랑 나가서 손이라도 잡고 걸어주면 면좋겠다.' '야, 우리집은 애들이 엄마 껌딱지라 나가면 애들 챙기느라 정신없어. 그럼 서방은 뒷짐지고 앞서 걸어가잖아. 하하하하하.' 이를 테면 이런 대화가 헤어질 때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와는 관계가 소원하다. 서운한 마음을 크게 내비치지도 않고 속깊은 대화도 없다. 40년 쯤 전에 우리 부모님 대화에 준하는 정도의 소통도 길게 하기 어렵다. '밥은?', '애들은?', '자자.' 겉도는 대화를 최장 20분 정도 하고나면 각자 디지털 세계로 빠져서 방황하다가 따로 잠드는 부부. 그 사이에 서운함과 억울함, 배신감 같은 복잡한 감정들을 느낀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그렇게 매일 속으로만, 속으로만 생각하는 원망과 갈등이 쌓인 관계가 되어간다. 내가 느끼는 것, 내가 답답한 것,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서운한 것.

내 속에 뾰족한 나만 이렇게 꽉 들어차 있으니 당신이 숨쉴 틈이 있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sQZO0I09Xnc&pp=ygUW6rCA7Iuc64KY66y0IO2VnOuPmeq3vA%3D%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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