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정은의 아침은 엄마 전화로 시작된다. 그리고 짧게는 한시간, 길어지는 날은 두시간 가까이 숨막히는 넋두리를 듣는다. 통화한지 채 하루도 못 되었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할 말이 많을까. 어제와 같은 말이 하나도 없다. 식은땀이 나고 어지럽다가 이부자리 안으로 들어가면 곧장 나아진다는 것, 이러다 죽을까 두려워 입맛이 없는데도 라면 국물을 끝까지 먹었다는 것, 아버지 영정사진이 어제는 웃었다가 오늘은 슬퍼보인다는 것, AI챗봇이 해준 꿈 해몽이 일리가 있다는 것 등. 71세 1인 가구의 오전 뉴스 콘텐츠가 6천만 인구 한반도 하루 뉴스보다 풍성하다.
숨은 언제 쉬는지 걱정이 될 정도로 찰지게 쏟아내는 말에 현기증이 날 때 쯤되면 정은이 슬슬 핑계를 대면서 마무리를 시도 한다. 그러면 엄마는 ‘그래, 끊자’ 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대화를 다시 시작한다.
“밥은 먹었어? 퇴근은 몇 시에 하려고? 어디 가?”
그럼 다시 5분이고 10분이고 질문이 이어진다. 끈질기고 집요한 질문과 단답.
“미용실.”
“그럼 나도 좀 데려가. 나도 머리해야 하는데 동네는 가기 싫어. 어딜 가야될지 모르겠어.”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주변에 알리기 싫어했다. 특히 동네 사람들이 아는 것이 싫다나.
“나 친구랑 같이 갈건데..”
“괜찮아. 어디로 갈건데?”
엄마는 쉽게 물러서는 법이 없다. 오늘도 정은의 소심한 거절을 가볍게 무시하고 한발을 들여놓았다.
“당분간 어디 다닐 때 엄마도 좀 데리고 다녀.”
즉답이 없자 홀로된 핸디캡을 십분 이용해 압박해왔다. 그냥 같이 가야되나.
정은은 같은 미용실을 일년 이상 다닌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늘 머리가 길기도 했고 굳이 대단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도 아닌데 미용실을 자주 옮기는 유일한 이유는 그녀의 엄마였다. 엄마는 여느 아줌마들처럼 짧은 파마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꽤 자주 미용실에 가야했는데 머리를 하고 오면 매번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머리도 잘 못 하는 곳을 싼맛에 다녔더니 가격을 올렸다던가, 염색을 너무 어둡게 해서 시골할매 같다고 울상이었다. 그러다가는 곧 정은이 다니는 미용실을 묻고는 거기를 다녀야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달이면 어김없이 엄마가 같은 미용실에 앉아 있었다.
“여기 샴푸를 너무 건성으로 하더라, 다른 집은 마사지도 해주던데.”
“커피가 식어서 못 먹겠네. 커피 맛도 너무 밍밍해. 다른 것 뭐 없어요?”
불편함은 정은의 몫이었다.
“엄마, 미용실 갔다와서 이렇다 저렇다 뒷말 안 할거면 가.”
엄마는 펄쩍 뛰었다. 예스맨이었던 큰 딸이 근래들어 자꾸 토를 다니 섭섭한 모양이다.
“엄마 늘 그러잖아. 이게 별로고 저게 별로고 짜증이 난다고. 그럼 다니는 나는 뭐가 돼. 청국장 잘 먹고 있는 사람 앞에서 자꾸 똥내 난다고 하면 좋겠어?”
엄마가 숨도 안 쉬고 쏘아 붙였다.
“그럼 맘에 안 드는 걸 말도 못 하냐!”
“그러니까 그걸 왜 나한테 말하냐고!”
이번에는 정은도 지지 않았다. 엄마의 뻔뻔함에 진절머리가 났다. 이제 정말 나가야한다고 윽박질러 겨우 전화를 끊었다.
출퇴근 시간만 줄여도 삶의 질이 달라진다. 두 시간 거리의 엄마집에서 출퇴근하던 정은에게는 매일 아침이 전쟁이었다. 집에서 버스 정거장까지 걸어 내려와서 경기버스를 타고 북적이는 잠실역에 도착해서도 매일 아침 마주하는 우악스러운 사람들의 손길을 뿌리치며 발디딜 틈없는 지하철에 몸를 쑤셔 넣어야 했다. 그 아수라장을 피하려고 저녁엔 야근을 자청하고 막차를 탔다. 그러다가 회사 근처 집으로 독립한 후 신세계가 열렸다. 길어야 20분 거리의 집에서 회사까지 택시비는 경기버스에 지하철, 마을버스비를 합친 것과 비슷했다. 비슷한 돈을 주고 중형차 뒷좌석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출근하는 여유라니. 매달 나가는 월세가 아깝지 않았다.
모닝콜의 여파인지 출근길부터 피곤이 몰려와 택시에 게으른 몸을 실었다. 잠시 눈을 감았는데 전화가 다시 울렸다. 정은은 잠깐 벨이 울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너 집에 두루마리 휴지 있어? 아빠가 없으니까 휴지를 스무개씩 사놓을 수가 없어. 근데 한 두개씩 파는 데가 있어야 말이지. 나 혼자 그거 언제 다 쓰겠어? 니네 집에 들러서 몇개 가져가게 없으면 좀 시켜놔.”
“엄마 그거 알아? 난 어릴 때 엄마가 참 싫었다?”
감정도 없이 말이 먼저 튀어나가 버렸다.
“그래. 너 어릴 때 일기장에 엄마 욕을 그렇게 써 놓았잖아. 엄마가 설거지도 한번 시킨 적이 없는데 엄마는 맨날 청소키고 설거지 시키고 구박한다고 거짓말을 있는대로 써놔서 내가 얼마나 창피했다고. 선생이 나를 뭘로 봤을까.”
엄마도 기억하고 있었다. 거짓말하는 딸아이 때문에 억울하고 난처했던 일로. 몇마디 더 거들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의 대화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아침에도 정은은 엄마가 싫었다.
옛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