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편지 두 통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박사과정 그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by 작가김덩이

무척이나 더웠던 그 해 여름, 자주 밤잠을 설쳤다. "여기 선선하고 하늘이 넘 예뻐요"라고 전해준 홈메이트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가족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혼자 오른 델타 항공기는 대한항공 보다 추웠던 것 같다. 그때의 김덩이는 앞으로 경험하게 될 미국산 에어컨 냉기의 위엄은 상상하지도 못한 채 설렜다.

참고로 이 책 등장하는 김덩이(씨)는 작가 본인이다. 현재 홈메이트인 배우자님은 나를 "김덩이"로 부른다. 상황에 따라 가운데 글자에 디귿이 더해지고 모음이 아래로 내려가기도 한다.

그때 나의 가방 속에는 소중한 편지 두 통이 있었다.

하나는 엄마와 아빠가 쓴 사랑과 응원의 편지 또 하나는 나의 첫 지도교수님께서 써주신 박사유학을 앞둔 제자에게 세 가지를 당부하며 격려하는 편지였다. 남의 나라에서 박사과정을 보내는 일은 때때로 즐겁고 가끔 희열을 느끼면서도, 종종 외롭다. 그렇게 아무런 연고 없이 외딴곳에서 시작한 나의 30대는 언제나 나를 응원하는 가족들의 사랑과 자신의 제자가 동료 학자로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스승의 마음에 기대어 무탈하게, 신나게, 잘 지나갔다.


돌아보면 그 두 통의 편지는 새로운 시스템을 탐색하고 낯선 곳에서의 삶을 살아내는 데 힘을 주었던 멘토링과도 같았다. 특히, 미국 유학생활을 하셨던 교수님이 덩이에게 당부하셨던 말씀은 지금 봐도 주옥같은 글이다.


멘토링 노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사 졸업 전 첫 구직 인터뷰 때 가장 당황스러원던 질문은 "어떻게 지도학생과 대학원생을 멘토링할 것이냐"였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박사논문제안서를 성공적으로 발표하고 나면, 구직시장에 가담할 수 있다)

아직 학생인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고. 교수나 시켜주고 묻던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썩소 모드로 급 전환, 그날의 김덩이씨는 공손하게 "네.. 제가 받아왔던 훌륭한 멘토링 경험에 비추어..." 떠듬떠듬 온전치 못한 영어 문장으로 얼버무렸다.

그날의 인터뷰는 폭싹 망했다.


하지만, 나름 회복탄력성이 좋았던 30대의 김덩이는

다음 인터뷰를 위해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을 써보았다. 내 경험에 비추어, 어떤 때, 어떤 정보와 격려가 좋았는지, 어떤 멘토가 내 주변에 있었는지 되돌아보았다.

물론, 학생 때에도 다양한 플랫폼에서 멘토링 요청을 받는다. 만약 누군가가 졸업 전 구직에 성공했거나, 논문을 출판했거나, 단체의 리더십 포지션에 있다면 이래 저래 tip을 전해달라며 여러분을 신나게 불러댈 것이다.

교수가 되어보니 정년/승진 심사 평가 항목에도 학생을 위한 멘토링 명시되어 있었다.

멘토링은 교수의 평가 항목에서 티칭(teaching) 범주에 포함이 되기도 하고, 서비스(service) 범주에 속하기도 한다. 참고로 나는 교수의 직무 중 서비스를 학교와 학계에 "기여"하는 "잡다"한 "무보수" 노동이라 정의한다.

그래서 멘토링은 논문을 쓰고, 수업을 하는 그 이상으로 교수직에 요구되는, 잡다하게 여겨질 수 있는 직무이지만, 학계라는 생태계를 유지해 가는 주요 축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구직에 성공한 김덩이씨는 나름 다양한 멘토링을 해왔다.

학회차원에서 제공하는 공식적인 플랫폼은 물론, 다른 교수들이 본인의 학생이나 주니어 연구자를 연결해 주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상황에 따라서 이 "기회"는 "떠밀기"가 되기도 한다), 때때로 수업 듣는 학생들이나 다른 학교 학생들이 진로나 연구, 국제학생으로서의 고충, 인종차별, 지도교수와의 이슈 등과 관련하여 1:1 미팅을 요청하기도 한다. 상황과 메모가 쌓이다 보니, 한번쯤은 글로 정리하고 싶어졌다.


그 해 8월, 기내 담요와 함께 두 통의 편지를 꺼내보던 그때의 김덩이가 알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누군가 먼저 손 내밀어 가르쳐 주지 않는 미국 대학원과 학계에서, 어떤 멘토를 만나고, 어떤 멘토링을 받았는지는 너의 학자적 삶을 일구어 가는 토대가 될 수도 있다고.

[미리보기] 나의 스승님은 편지에서 세 가지를 강조하셨다.


첫째, 건강한 생활, 운동은 권장하지만 "위험한 스포츠는 피하세요."
- 살아보니 미국에서 병원가는 일 그 자체가 스트레스다.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다.


둘째, 미국대학의 민주적인 분위기와 다양한 자원을 잘 활용하되, 한국 학계를 무시하거나 미국에서 배운 것이 더 좋다는 시각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 국뽕도 미제 찬양도 아닌, 균형잡힌 비판적 시각을 스승님은 이미 강조해 주셨다. 김덩이씨는 비교교육 수업을 가르치다 그분의 가르침을 다시 떠올린다.


셋째, 박사과정 이후의 진로는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졸업 후 정착할 곳이 어디인지 미리 고민하고 탐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두근두근 박사지도교수와의 첫 면담, 덩이씨의 지도교수님은 물어보셨다. "Do you wanna pursue your career in the US or Korea?" 우리 스승님은 예지력이 있으셨나보다 했다.


사랑이 가득한 부모님의 편지와 스승님의 편지는 단순한 글이 아니라, 나를 아끼는 그들의 마음에 기대어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자존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야생을 헤쳐나갈 비기(秘技)와도 같았고.


다음 글은 "건강한 생활"에 관해 쓰려고 한다.

신체적 건강 뿐만 아니라 정신과 마음 건강을 포함해서.

우리, 목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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