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동생의 강의는 계속되었다. 자다 깬 상태에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느껴지긴 했지만, 한 번 물어보면 끝까지 대답해주었다. 입장을 바꿔 동생이 잠든 나를 깨워 물어봤다면 이렇게까지 알려주었을까 싶어 반성하기도 했다. 이제는 정말 동생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동생에게 부탁해 입었던 옷을 본 대학교 친구들은 무슨 일 생긴 거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전역하고 보는 것이니 사람이 달라졌겠다 싶으면서도 이렇게까지 달라졌을 거라곤 예상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부끄럽기도 했다. 그 앞에서 동생이 골라준 옷이라고 이야기하기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내 모습을 꾸미는 것에 동생이라는 치트키를 쓴 것이다. 이제는 나 스스로 꾸며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장르가 그렇듯 하루아침에 완벽해질 수는 없다. 아무리 동생이 설명하는 대로 듣고 입어본다 하더라도 어떻게 혼자 시도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사실 몇 번 시도해봤는데, 그러고 나간 내 모습은 너무나도 이상해 거울 보기가 싫었다. 하루는 날을 잡고 동생에게 부탁해 집에 있는 모든 옷을 꺼냈다. 셔츠, 바지, 재킷 가릴 것 없이 거실에 펼쳐두고 하나하나 입어보고 어떠냐고 물어봤다. 안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면 왜 안 어울리는지 물어봤다. 그제야 나는 내 체형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나는 여태 동생이 골라준 대로만 입었다. 따라 하기만 했기 때문에 옷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체형을 알기 시작한 후로는 같은 옷이라도 왜 동생이 입었을 때와 내가 입었을 때가 다른지, 반대로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이 조금이나마 어떤 형태일지 알 수 있었다. 그러다 동생은 옷 핏을 위해 10kg을 감량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냥 뺀 줄 알았는데 그게 옷 때문이었다니. 한 번 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동생은 몇몇 패션 유튜버를 알려줬다. 아주 기본적인 내용을 이야기하는 유튜버들부터 조금은 깊은 이야기를 해주는 유튜버들까지. 지금은 몇십만의 구독자를 가진 대기업 유튜버들도 그 당시에는 구독자 수가 몇 만 명에 불과했다. 그들이 추천하는 옷을 다 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보고 또 봤다. 동생은 거기에 더해 몇 개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줬다. 내가 도전해보고 싶은 옷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로, 많은 팔로워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유튜브는 그나마 말로 설명이라도 해주니까 이해가 됐는데 이 사람들은 자기들 옷 사진을 올리는 게 전부가 아닌가? 나한테 도대체 이들을 왜 보라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됐다. 동생은 같은 바지라도 상의와 신발을 어떻게 다르게 매치했는지, 모자를 썼는지 벗었는지 어떤 안경을 썼는지와 같은 것들을 유심히 보라고 말했다. 그런 연출 하나하나가 사람마다 스타일마다 다른 것이며, 그 한 끝 차이가 완전히 새로운 무드를 만들어낸다고 설명했다. 그때부터 패션에 대한 생각이 또 한층 달라졌다. 그냥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면 이제는 취미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