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인정
이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시험 성적부터 취업까지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 일에 끝판왕은 인간관계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까지. 나 자신 하나 온전히 컨트롤하는 것도 힘든데, 다른 사람을 내 생각대로 컨트롤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머리'로는 정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왠지 상대방을 바꿀 수 있을 것 같고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힘든 이유는 바로 이 머리와 마음의 불일치 때문이다.
'난 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넌 나를 왜 이해하지 못하니?'
이 두 문장은 연인끼리 다툴 때 정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연인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도 많이 쓰인다. 이런 충돌이 발생하는 이유는 인간관계를 '이해'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해한다'라는 말은 멋있어 보이고 쿨해 보인다.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고, 자신이 항상 이성에 근거하여 생각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우선 상대방의 말이 타당한 지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타당하다는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이 있고, 이 기준에 맞춰 판단한다. 서로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나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이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한다. 인간관계가 공개토론이라면 그들의 방식은 합리적이다. 하지만 사람 사이는 합리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려는 사람들은 이해하려는 사람들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대한다. 그들은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간에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틀렸다고 말하지도 않으며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자신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어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때 그들은 그 관계를 포기한다. 이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선택이다.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어떻게 보면 오만으로 비칠 수 있다. 자신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긍정적인 태도일 수도 있지만, 상대방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부터가 관계를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인정'하려는 노력은 이를 넘어서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것과 어쩔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며, 이를 구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남의 생각이 아닌 나의 태도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인정하고자 할 때, 상대방도 나의 생각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자신을 되돌아볼 것이다. 나그네의 망토를 벗긴 것은 강력한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빛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